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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앝 Feb 07. 2021

깜빡이를 켜기 전

영화 <기생충>, 클럽하우스에서 마이크를 켜보며

 "이거 하려고 중고 아이폰 샀어요.", "일론 머스크, 저커버그와 음성채팅?", "초대장 없으면 가입 못 하는 인싸 어플, 초대장 100만 원에 판다는 글도" 폐쇄형 음성 SNS <클럽하우스>를 주제로 한 기사 일부다. 프리챌로 시작해 싸이월드,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까지. SNS의 역사에서 내 아이디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30년 남짓한 짧은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인싸인 적 없던 나는 지금, 기사에 따르면 인싸 언저리에 있다. 며칠 전 친구 녀석이 클럽하우스 초대장을 보내왔다. 인싸는 못되어도 인싸 친구를 두면 이런 특혜가 있다. 고맙다 친구야. 처음으로 인싸라는걸 해봐.

 겁 많고 소심한 내향인 김 씨는 개발자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만나면 뇌가 조각모음을 시작하며 꼼짝 못한다. 팀장님이 이 사실을 모르길 바란다. 무능해 보이고 싶지 않다. 애플리케이션에 눈알이 달린 것도 아닌데 낯가림 때문에 친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엄지손가락과 스크린 사이의 1센티 간격을 없애기까지 머뭇거릴 이유가 최소 3가지 정도는 있어 줘야 한다. 갑자기 내 소리가 전달되면 어떡하지. 카메라가 켜지면 어떡하지. 나 지금 발가벗고 화장실에 있는데. 클럽하우스 초대장을 받은 날도 그랬다. 일하면서는 도무지 구경하기 어려워서 퇴근 후에야 차근차근 둘러봤다.

 세상엔 인싸가 참 많다. 대화를 듣자 하니 이 이도 저 이도 모르는 사이인 것 같은데 랜선 마을에서 처음 만나 '미래에는 무슨 테크가 흥하게 될까', '미술 시장의 현주소', 'LGBT에 관한 짧은 단상', '노래로 말해요'에 호응하기 위해 마이크 켜기를 주저않는다. 클럽하우스에서 말을 하려면 무려 '손들기'라는 버튼을 눌러야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에게 손들기는 지구를 들어 올릴 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인싸들의 세계에선 손을 들지 않고는 못 배길 때가 더 많나 보다. 여기까지 왔는데 손 한번 안 들어보고 떠날 수는 없다며 그나마 가장 입이 열릴만한 방을 찾아 나섰다. "영화 기생충 - 선에 관하...(생략) with 김시선" 대한민국 사람 중에 기생충으로 안 떠들어본 사람이 어딨어. 너로 정했다.

 영화 <기생충>에서 이선균 배우가 맡은 박 사장 역은 대사가 많지 않다. 어쩌면 영화 내내 하나의 대사만 반복한다고도 볼 수 있다. 영화 초반, 기택(송강호 분)네 가족이 내쫓은 가정부 문광(이정은 분)을 아쉬워하며 자동차 오른쪽 뒷자리 상석에 앉아 박사장은 말한다.

 "상당히 괜찮은 아줌마였거든 그 양반이. 집 안 구석구석 관리도 잘하고, 그리고 매사에 선을 딱 잘 지켜. 내가 원래 선을 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데..."

 그리고 영화 중반을 넘어서서도 박 사장은 시종일관 선을 언급한다.

 "김기사 그 양반. 선을 넘을 듯, 말 듯 하면서 절대 넘지 않아. 근데, 냄새가 선을 넘지."

 박 사장에게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르는 기준은 '선'인 셈이다. 박 사장이 자주 등장하는 무대인 차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운전이 제법 익숙해졌다. 작년 6월 생애 첫  차 "알베르토 애니웨어"를 데려왔다. <걸어가는 사람>(알베르토 자코메티 作)이었던 나를 '어디든지' 데려다 줄 너. 부모님은 이왕 살 거 외제 차를 추천하셨고 나는 예산을 언급하며 국산 차를 고집했다. 초보에, 더구나 여자가 작은 국산 차를 몰면 도로에서 치이기 일쑤라며 반복되는 회유에 "그럼 엄빠가 보태줄 거야?"라고 물었다. 부모님은 '요즘 국산 차도 잘 나오긴 하지'라며 선을 그으셨다.

 운전을 시작하고 대중교통 이용하는 횟수가 확연히 줄었다. 지난 애인에게 자주 묻던 말이 있다.

 "지하철로 20분이면 도착하는데 왜 한 시간씩 운전해서 가는 거야?"

 그는 이게 편하다고 했다. 나야 네가 태워다 주니 고마운데, 양옆에서 살벌하게 레이싱이 펼쳐지는 이 도로가 너도 정말 편할까. 부동산 가치가 보석보다 귀한 서울에서 주차는 또 어떻고. 매번 의뭉스러웠던 나는 요즘, 시간이 허락한다면 운전석에 앉기를 선택한다. 좋아하는 팟캐스트를 틀고 익숙한 목소리와 홀로 맞장구를 치다 보면 어느새 내비게이션 언니가 알려준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가끔은 기름이 닳아 자동차 바퀴를 굴린 게 아니라 나를 충전해 준 것 같을 때도 있다. 대중교통 안에서 의식 없이 적잖은 에너지를 소모해왔다는 걸 의식한다. 붐비는 출퇴근 시간, 지하철 안은 사람들로 포개어져 종이 한 장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여름이면 드러난 살갗으로 뒷사람 체온이 느껴진다. 체구가 작은 나는 운 좋게 앉아서도 옆 사람에게 내게 허락된 엉덩이 모양마저 침범당할 때가 잦다. 난 그저 우산 한 칸 만큼만 혼자 있고 싶었다. 2인용 책상 위에 금을 긋고 이거 넘으면 다 내 거라고 우기던 어린 시절처럼 선이 확실하면 자기주장이라도 할 수 있으련만, 앞사람 헤드폰에서 새어 나오는 헤비메탈 볼륨은 내가 간섭해도 되는 영역인지 한 번 더 고민하게 된다. 그래서 에어팟 프로의 노이즈 캔슬링은 한동안 내게 공간 혁신이었다. 듣고 싶은 소리만 들을 수 있는 자유를 얻자 공간이 넓어진 듯한 행복한 착각에 빠졌다. 소리나 냄새처럼 공기를 타고 스미는 것들은 공간 욕심이 많다. 경계 없이 다가와 마음을 혼란케 한다. 그래서 선을 자주 침범당하는 사람들은 목소리가 크다. 시장은 친근하지만 시끄럽고 백화점은 차갑지만 조용하다.

 도로가 편한 건 양옆으로는 차선이, 앞뒤로는 안전거리 확보라는 자동차 법이 명확하게 경계를 그어줘서인지 모른다. 선을 넘고 싶을 땐 깜빡이를 켜서 양해를 구하고, 넘어선 후엔 비상등을 눌러 고맙다고 인사하면 되니까. 그가 말했던 편안하다는 것은 이 '예측 가능함'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니 너와 내가 만나 '사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관계가 되기까지 우리는 무수히 많은 선을 고쳐 긋는다. 삼각형도 사각형도 아닌 난생처음 그리는 다각형을 완성하기 위해 다가서고 물러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선 긋기는 너와 나 사이에 어떤 명찰을 붙이고 뗄 때까지 계속된다. 그 피로를 감당할 가치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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