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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앝 Mar 08. 2021

카페, 한 켠

 고흐의 해바라기 학원을 끝까지 다니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미술관 가기를 좋아한다 말하지만 아마 나는 영원히 그림을 제대로 보지 못할 것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포착한 순간과, 망막에 맺힌 상을 캔버스로 옮겨오는 찰나에 했을 고민과, 칠하기  고개를 들어 아로새긴 풍경을 절대로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감는 날까지 그림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림 그릴  모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 하교  집에 돌아와 책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호되게 혼이 났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 말씀  들었냐는 질문과 함께 설거지할 수저통을 찾던 엄마가 가방을 열자마자 사냥꾼 눈을 하고 물었다.
 "준비물이  그대로야?"
 당시 미술 시간은 보통 2시간 연달아 붙어있었는데, 그날 2시간 동안 무얼 하면서 멀뚱멀뚱 시간만 보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한다는 이유로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  불성실한 태도라는 훈육을 받으며 엄마와 공포의 미술 수업을 가졌다는 것만 생생하다.
 "거봐. 하면 되잖아. 예쁘게  만들었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작품을 완성했을  시침은 7 지나고 있었다.

 다음  엄마는  손을 잡고 미술학원에 데려갔다. 고흐의 해바라기 미술학원 상담실엔 수강생들이 그린 개성 넘치는 해바라기 그림이 가득했다. 엄마와 상담하는 동안 선생님은 내게 해바라기 그림을 그리게 했는데,   후면  멋진 해바라기를 그릴  있을 거라고 엄마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번째 해바라기를 그린 기억이 없다. 어른이 되어서 언젠가 엄마에게 미술학원을 갔던 기억은 있는데 그만둔 기억이 없다고 물었다.  태도가 피아노 학원  때와 사뭇 다르고 그림도 나아질 조짐이 없어  이후로 딸에게 그림은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하셨다. 그리고 나는 흔한 컵도 그릴  모르는 어른으로 컸다. 물론 사는데는 아무 지장 없다.

 오늘 2021 3 7 일요일. 카페,  켠이 짙은 녹색 간판에 마지막 불을 켰다. 상도동 국사봉 터널 입구, 세월을 거스른 듯한 후줄근한 동네에서 홀로 반짝이는 카페였다. 걷길 좋아하던 애인이 우리 동네인데도 나보다 먼저 발견한 아늑한 공간이었다. 갈맷빛 배경에 광택 없는 금빛으로 '카페,  ' 이라는 다정한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내가 찾았어."
 애인은 화장실이 깨끗해서 무엇보다 좋았다고 했다. 이도   닦고 툭하면 콧구멍에서 마른 먼짓덩어리들을 찾아 탐험하는 불쌍한 검지 손가락을 가진 주제에 청결한  기가 막히게  알아보던 짝꿍이었다. 과연 화장실에 가보지 않아도   있었다. 마호가니 색의 테이블과 의자, 계산대, 아이팟 스피커 거치대까지 원목 가구에 반질반질 윤이 났다. 왜곡 없이 카페 안을 재생하는 매끄러운 거울 유리와 장식으로 놓인 갈대에도 먼지 하나 없이 정갈했다. 비염쟁이 예민한  코도 별다른 투정이 없었다. 피아노와 콘트라베이스가 어우러진 재즈 앙상블이 카페 안을 포근하게 매만졌다. 편안한 인상의 주인이 카페와  닮아있었다.
 "여기 샌드위치랑 디저트도 맛있어."
 우리는 주말마다 언덕을 넘어 6,500원짜리 샌드위치와 따뜻한 아메리카노  잔을 마시고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다시  치즈 케이크와 스콘을 먹고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시간이고  시간이고 여러 테이블에 손님들이 앉았다 일어나는  지켜봤다. 그리고 2년쯤 흘러 우리는  이상 카페,  켠에 함께 앉을  없는 사이가 됐다.

  이후에도 카페는 종종 내게  켠을 내주었다. 왼쪽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넋을 놓고 앉아 있는 날들이 모여 다시 글을 쓰고 책을 읽을  있게 됐다. 배려심 많은 주인은  혼자 오셨냐고 묻지 않았다. 하지만 카페는 코로나에도 곁을 내주고야 말았다. 내가 자주 가지 못해서였을까? 둘이 써야  테이블을 혼자만 써서였을까?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조급해진 나는 급하게 애정 공세를 퍼부었다. 그리고 때마다 후회했다. 고흐의 해바라기 학원을 끝까지 다녔어야 했어. 내가 느끼는 카페의 감촉을 그대로 종이에 담아내고 싶었다.  일이  된다면 주인에게 선물하고도 싶었다. 이게 당신이 가꿔온 공간이라고.   켠의 정서를 담아내기에 사진은 차가웠다. 무능한 손은 속수무책으로 머뭇거릴 뿐이었다. 고흐의 해바라기 학원을 끝까지 다녔어야 했어.

 네가 찾아낸 카페는 우리가 함께 쓰다가 나의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그림으로 그릴  없다면 글로라도 그릴 밖에. 상도동 국사봉을 뚫어 만든 터널 아래에는, 언덕을 넘어야만 만날  있는 카페가 있었다. 어린이와 학생, 젊은 커플과 엄마, 아빠, 할머니 모두에게  켠을 빌려주는 상냥한 카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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