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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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유적 오해와 사실적 편견
시인은
사실을 ㆍ은유ㆍ로 쓰고
ㆍ은유를 사실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아름다운 삶은 ㆍ은유ㆍ를 현실로 가꾸는 것이지만
ㆍ은유적 표현ㆍ은 향미로운 대화의 멋과 즐거움을 주는 반면
때에 따라서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ㆍ시ㆍ도 사실화법ㆍ으로 쓸 때는 정곡을 찌르지 않으면
마땅한 말을 찾기 어려운 경우다
일상의 대화는 간결하면 건조하고
ㆍ미사려구ㆍ가 지나치게 많으면 진실성이 결여되는 듯 보이고 아첨의 소지로도 편견을 짓는.
선승들은 왜 보편적으로 말씀이 짧은가?
그것은 ㆍ직심ㆍ을 유지하는 훈련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상적 대화에서는 말이 지나치게 짧으면, 소통이 용이하지 않고 때에 따라서는 무례한 기분이 들게도 한다.
마치 수박이 익은 줄 알고 속을 열었더니, 씨도 여물지 않고 풋비린내가 나서 먹을 수 없는 상황과 비슷하다.
어느 분야든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격의 씁쓸한 경우가 너무나 많다
절집안에서는 순차를 엄하게 지켜야 하는 규율이 있어왔다.
지금은 그것도 옛말이다.
익지 않은 수박의 배를 갈라 먹으라는 격으로 들이대는 선문답은 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참담하기까지 하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ㆍ은유ㆍ의 향미로움을 만끽하는 것은 시에서는 허용범위가 넖고 크다.
물론, 시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범인들보다는 이해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ㆍ은유ㆍ와 ㆍ추상ㆍ사실ㆍ등의 시적구성은 숙련된 기술과도 같지만, 무엇보다
끊임없이 연마하고 참구 하는 ㆍ시적 정신ㆍ을 잃지 않는 건강한 정진이 가장 중요하다 할 것이다.
선승들의 ㆍ직심수결ㆍ은
언어도단ㆍ의 굳건한 반석아래 ㆍ지혜ㆍ를 얻고
화엄의 입장으로 발전하여 ㆍ 통찰적 지혜의 꽃ㆍ으로서의 장엄세계ㆍ로의 진입이다.
수행은 왜 하는가?
자아발견을 통한 성찰에의 간절한 요구로서의 자기만족을 주기 도하지만,
세계와 나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에의 관심은
ㆍ직심ㆍ을 통한 ㆍ원심회복ㆍ의 진화를 통한
ㆍ통찰적 시야ㆍ에서 오는
ㆍ원만 구족ㆍ의 대발원은 자연발생적인
ㆍ대폭팔ㆍ후에 오는 ㆍ신생지ㆍ다
ㆍ신생지ㆍ는 ㆍ초심ㆍ을 회복하고
땅속과 바닷속 모래 속ㆍ과 바위틈
이 모든 것에 대한 경외심으로 다가오는
마르지 않는 샘물의 근원지를 만나는 일이다
ㆍ유정ㆍ과 ㆍ무정ㆍ의 발아점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choi Won
원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