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보때’와 ‘공순이’의 발자취 따라 3시간 여행 코스

금천구 여행

by 시드업리프터

라떼는 구로금천하면 가리봉 마리오 아울렛이 유명했다. 어떤 이유로 유명한 지 패션 산업과 어떤 관련이 있는 지 모른 채로 지금까지 살았는데 ChatGPT의 친구 퍼플렉시티와 대화를 오가면서 역사적 사실을 조금씩 훑어보고 직접 구로공단에 다녀왔던 평일의 짧은 여행에 대해 적었다.


#금천구와 패션산업의 연결고리

1965년에 정부가 계획한 대표적인 수출산업단지 구로공단(구로구 구로동~ 금천구 가산동 일대)이 세워진다. 주로 섬유, 봉제, 가발 등 경공업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많았고 미국과 일본 등에 수출하는 데 총 수출액의 10% 차지할 정도로 주력 산업이었다고 한다. 그 중 국민학교를 졸업한 20세 미만, 35세 이상의 여성 노동자들이 다수였다. 출퇴근할 주거지가 만들어졌고 쪽방에 다닥다닥 붙어살고 줄 서서 공동화장실을 쓰는 ‘벌집촌’이 생겨났다.

구로산업단지가 경제주역이다는 역사적 사실의 이면에는 남아선호사상이 만연했던 그 시절 아들의 진학과 출세를 위해 노동으로 번 돈을 딸들이 노동 현장에 뛰어들어 가정에 보탬이 되야했다. 대우 어패럴 같은 섬유, 봉제, 가발 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과 긴 노동시간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었다. 사람들은 어린 여공들을 무시하고 공순이라고 불렀다.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 ‘순이네 집’(금천구 벛꽃로44길 17)

버스를 타고 내려서 우마길 문화의 거리에 내렸다. 옌볜거리로 불렸다고 한다. 1980년 후반에 구로공단이 쇠퇴하고 기존 벌집촌에 살던 노동자들이 빠져나가면서 저렴한 주거지가 많이 남게 되었고 한중수교(1992년) 이후 중국 조선족들이 대규모로 넘어오면서 중국 조선족들이 싼 방값과 저렴한 거주 환경 때문에 가리봉동에 정착했고 환전소, 음식점, 상점, 휴대폰 대리점을 개업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

중국어 간판과 중국인 교회를 지나 주택 골목에 들어서자 ‘방 있음’이 팻말이 걸린 대문이 많이 보였고 골목 길 끝에 노동자 생활체험관이 있었다. 평일이라 방문객은 나 밖에 없었는데 재미있는 전시 프로그램이 꽤 많았다. 담당자는 AR 체험기기, 낱말퍼즐 체험지, 전시관 리플렛, 펜까지 넘겨주셔서 짐이 가득해졌다. 공동세면장과 비밀의 방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둘러봤다. 실제로 공순이들이 살던 방과 부엌, 신발, 옷과 그 시절의 패션 잡지까지 그대로 재현을 해놨는데, AR 체험기기를 들고서 혼자 그 방에 들어갔더니 너무 무서워서 도망나왔다. (겁이 정말 많은 편) 전시관 담당자님께서 같이 가주셔서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공장의 월급 49,000원인데 방 값이 40,000원으로 턱없이 높았고 돈을 아끼기 위해서 주간 노동자,야간 노동자 끼리 겹치지 않게 생활하면서 최대 6명까지 한 방을 썼다. 요리 공간은 신발장 옆에 있는데 연탄으로 불을 지펴 라면 먹을 뚝배기 정도만 놓여있었는데 환기구가 없었다. 방 마다 화장실도 없어 공동세면장을 쓰는데 오전 5시 30분에 가도 줄서서 써야했다.

그 중 패션방이 눈에 띄었다. 그 시절 유행하던 패션잡지와 비키니 옷장이 놓여있었다. (비키니 처럼 상체, 하체 분리된 옷장이라서 비키니 옷장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비키니가 그 시절 우리 사회에 충격을 준 패션이라 비키니라는 이름이 특이해서 가져다 쓴 것 같다고 하는데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창 미모를 가꿀 나이 20대와 30대 여성 노동자들도 미용이나 패션에 얼마나 관심이 많았을까. 농촌에서 서울로 상경한 그들은 정작 서울의 명동은 발길 들일 기회도, 돈도 없는 데다가 멋 부리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으로 휴식 조차 어려운 현실이었다. 입고 싶은 옷 덜사고, 바르고 싶은 화장품 하나 덜사면서 아끼고 아껴서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야하는 심정은 오죽했을까.


#라보때 컨셉으로 점심 식사

노동자들이 라면으로 보통 때운다 라는 의미로 ‘라보때’라는 말이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든든하게 먹지 못하고 연탄불 올려 끓여먹는 라면이 전부였다. 이보다 더한 사실은 노동자들이 일했던 봉제, 섬유공장은 실먼지 때문에 가루가 날리고 선풍기도 틀지 못해 땀으로 옷이 젖어 하루도 빨래를 미룰 수 없었다.

이 날 점심 무렵 전시관에 들어갔다가 라보때 처럼 식사하는 것도 짧은 여행의 일부라 생각되어 편의점에서 라면을 사 먹었다. 마침 비도 왔고 날이 흐려서 뜨거운 국물은 잘 어울렸다. 여러 메뉴 중에 오늘의 음식으로 라면을 선택한 나와 달리, 삼시세끼 라면을 먹으면서 쉴새 없이 일한다는 것은 정말 비교도 안된다. 라면을 씹고 넘기는 마음이 편치않았다. 순이네 집에 들어갔다가 벌집촌에 혼자 남았을 때 느껴지는 적막감이 계속 떠올랐다. 너무 무서워서 밖으로 뛰쳐나왔는데 라보때 점심까지 똑같이 재현했더니 오후 내내 순이네 집이 주는 여운이 깊게 남았다. (F 감성)


#디지털단지오거리에서 느낀 생경함

벌집촌과 순이네 집에서 걸어나와 디지털단지오거리 횡단보도에 섰다. 예전의 구로공단은 패션 제조와 수출에 주력인 동네였고 2020년도부터 패션 제조, 유통, 창업, 마케팅 까지 IT와 R&D를 접목한 G밸리로 진화했다. 마리오아울렛 쇼핑몰 같은 키가 큰 빌딩과 철거 수준의 물류창고 건물이 크게 대비되었다. 전에는 안보였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는 생경함이 있었다.

어떻게보면 다크투어일 수 있어도 많은 사람들이 순이네 집에 들러 인권 노동이나 구로공단 경제의 숨은 주역들의 과거 생활상을 꼭 접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금천구에서 짧은 여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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