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는 피하고 결과만 바랐던 비겁함에 대하여
최근 ChatGPT와 대화하다가 문장 하나에 발걸음이 멈췄다.
"너는 지금 방향은 알고 있는데, 리스크는 회피하면서 동시에 큰 결과를 기대하고 있어."
마치 들키고 싶지 않은 속마음을 정교한 알고리즘에 간파당한 기분이었다. 허를 찔린 뒤 찾아오는 서늘한 정적. 나는 한동안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내 안의 비겁함을 그토록 명확하게 정의한 문장은 처음이었으니까.
요즘 나는 유명한 이들의 강의를 공부 삼아 몰아 듣고 있었다. 배울수록 데이터는 쌓여갔지만, 이상하게도 기운은 파삭하게 식어버리는 날이 늘었다. 이제 막 씨앗을 심기 시작한 나의 현재와, 이미 거대한 숲을 이룬 타인의 '빠른 성공'을 비교하는 모드가 제멋대로 작동해 버린 탓이다.
동시 접속자 2,500명을 기록하는 라이브 강연. 그 안에서 노하우를 전하고, 수많은 사람이 기꺼이 지갑을 여는 풍경들. 그들의 성취는 압도적인 산처럼 보였다. 나는 아직 이룬 것도 없는데. 시장에 내놓을 괜찮은 무기 몇 개쯤은 쥐고 있다고 자만했는데, 그것조차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나 싶어 마음이 자꾸만 쪼그라들었다. 생각의 블랙홀에 빠져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다는 마음이 부풀었다가 사그라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정답을 쥐여줄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를 정리하고 다시 움직일 '절대적인 시간'이라는 것을.
운동을 하고 한숨 자고 일어나니, 가라앉았던 마음의 실체가 비로소 선명해졌다.
나는 실패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단숨에 완벽하게 잘해내고 싶다는 강박이 나를 겁먹게 만들고 있었다. 시원한 물 한 컵을 들이키며 정신을 차려본다. 그리고 당분간 내 삶의 문장으로 삼을 세 가지 약속을 적어 내려간다.
첫째, '당장 잘되는 것'은 도둑이다. 요행을 바라지 말자. 잘못된 방향으로 불도저처럼 달렸던 작년의 과오를 벌써 잊은 걸까. 성취 이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절대적인 고립의 시간'을 기꺼이 견뎌내기로 한다.
둘째, 과정의 모호함을 '실패'로 단정 짓지 말자. 결과가 즉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 노력이 증발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애매하고 막막한 시간 또한 나아지기 위한 필수적인 축적의 과정임을,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속삭여주려 한다.
셋째, 마음의 빗장을 풀고 도움을 청하자. 부러운 이들에게 막연한 동경이나 열등감만 품지 말고, 용기 내어 구체적으로 물어보자.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한다는 완벽주의를 내려놓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장의 시작임을 이제야 배운다.
나의 성장판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조금 느리더라도,
이 모호한 계절을 정직하게 통과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