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관리자들>
책 제목부터가 회사 이야기 같지 않나. 회사 생활에 몰입하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 피로감이 한순간에 팍 들었던 건 사실. 그래도 묘하게 끌리는 이 책은 역시나 아주 부조리가 고스란히 담긴 책이라 허허허 재미있게, 그리고 단숨에 읽었다.
회사에서의 개인이 생존하려면 소속감과 안정감을 지켜내는 게 필수다.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들이 여럿 발생한다. 단적인 예로, 퇴사자가 생겼을 때 남은 사람들은 더 똘똘 뭉치게 된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나간 노동자의 빈자리를 새로운 사람으로 채우거나, 또는 채우기 위해 에너지를 쓴다.
권력이 강한 사람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굽히게 된다.
119p. 이게 크든 작든 결국 다 조직이거든요. 관리자 입장이란 게 참 곤란하고 난감할 때가 많아요. 그런 대화를 하면서 같이 풀어나가는 거죠. (중략) 반장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늘 노력했습니다. 듣고 이해하고 같이 공감하려고요.
관리자는 강력한 윗 선에서의 지시에 따라 아랫사람들을 다독이는 역할이다. 윗 선에서 상식 밖의 지시 사항이 내려온다면 '상식이 통하는 인간'으로서 고민이 따른다. 사실상 반장은 대화로 푸는 게 아닌 거절을 두려워하는 명령자일뿐이다.
122p. 소장의 말로 선길은 어리석기 때문에 끝내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구제불능의 인간, 누구나 엮이게 될까 두렵고 끔찍한 인간이 됐다. 사정은 딱하지만 내심으로는 그럴만하다 싶은.
선길은 약자이자, 회사에서 불행한 상황으로 몰린 인물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선택이라거나 구제불능이라거나. 이것은 회사의 입장에서 선택된 단어다.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는 자들은 선길과 엮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남은 자들은 내일도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123p. 선길은 이제 이곳에 없다는 사실이 던져 놓은 자신의 책임을 지우려. 다른 주요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책임을 미루고 떠넘기려 했다. 소장의 말과 행동은, 구제불능의 인간이 된 선길은 좋은 구실이 됐다.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갈 만한 사람이 간 것이라고 추스르고 서로 의지하며 도와야 할 것은 남들 자신들이라고 은연중에 의기투합했고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소장에 대한 선의와 약자에 대한 공감을 말했다.
책임이라는 말이 꽤나 무겁고 무섭게 들린다. 그저 인정하고, 빠르게 앞으로 나가야 하는 일인데, 인권과 생존 앞에서는 어려운 단어가 되는 것이다. 의기투합. 그러니까 남은 자들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방식이 그런 것.
135p. 목 씨: 선길인 갔어. 갔고 다시 못 와. 산 사람은 살 수밖에 없는 거고. 누가 얼마를, 뭘 받든 받지 않든.
산 사람은 살 수밖에 없다는 말은, 살아남기 위해 남은 사람들은 동아줄을 잡고 있다는 것으로 들렸다.
155p. 만나야 할 사람은 모두 만났고 건네야 할 것도 모두 건넸다. 모두 마무리가 된 것이다. 불안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요컨대, 아까 한 그 말처럼 산 사람에게 착할 것이냐, 죽은 사람에게 착할 것이냐 모두 그 문제였다.
산 사람들은 살아내야 한다. 퇴사자는 빨리 나가야 하고, 남은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빈자리를 메꿔야 한다. 산 사람들은 그래야만 사니까.
193p. 현경이 개의 얇고 따스한 뱃가죽을 만질 때 떠올린 것은 연약함이었다. 우리는 모두 그같이 얇고 따스하게, 희망이라는 단어처럼 연약하게 살아 있다. 이 이야기는 그 연약함과 희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보전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연약함은 나약함에 불과한 것인지, 희망은 욕망에 그쳐야 하는지, 인간에게는 나약함과 욕망뿐인지.
그러니까 연약한 개인이 조직에 들어갔을 때, 살아남은 자로서 어떻게 버텨내야 하는지 단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문장이다.
이 책은 소설이긴 하지만, 실화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상황이 단적으로 치달았을 뿐. 충분히 있을 법한 상황이라서 너무나 몰입해서 읽었다. 드라마로 만들어져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 책. 하이퍼리얼리즘 오피스 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