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7
매번 오던 그 카페에 와서 노트북을 펼쳤다. 좋아하는 카페라서 사장님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할 때쯤이다. 나는 매번 혼자 와서 노트북과 손 글씨로 무언가를 끄적거리고 가는 손님이자 따뜻한 음료 디카페인 음료만 마시는 편으로 라떼 가끔씩 핸드드립을 즐기는 매번 평일에 나타나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매번 1인석에만 앉는 그 손님. 그렇다고 매번 내가 같은 똑같은 일상으로 이 카페를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커피를 찾으러 오고, 어떤 날은 집에 눌러앉기 싫어서 밖으로 나오기 위해 나선 곳이 이곳이고, 대부분의 날은 이직 준비를 위해 노트북 작업을 하러 나오는 것. 그러나, 오늘의 앉음은 달랐다. 정말 모든 게 바뀔 뻔하고 다시 앉게 되어서 어떻게 보면 되게 멀리 돌아서 겨우 앉은 제자리다.
한 달 전에는 예정에 없던 홍콩과 부산을 연달아 다녀오고 나서 나는 한차례 세상의 억까와 부침을 당했다. 마음이 나약해진 상태라서 일단은 남 탓(세상 탓)을 해본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눈에 띄는 갈등이 없는 것이 가장 충격적이었는데, 이별은 시끄러워도 조용해도 불현듯 찾아오는 이 무서운 것 같으니라고.
내가 받은 충격은 나의 세상을 뒤흔들 정도였다. 왜냐면 올해 일시적으로 직업도 없는 상태이고, 당장의 결혼계획도 없어졌고, 미래 계획도 없이 깜깜하고, 여전히 캥거루라서 혼자만의 공간도 없고, 30대 중반인데 내가 이뤄 놓은 모든 것들이 없음. (그러나 빚은 없음) 0이라고 생각하니까 진짜 허허허 너털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결혼이라는 게 내 인생에 있어서는 큰 숙제였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도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자, 내가 독립할 수 있는 계기이기에. 결혼으로 가는 버진로드가 내가 사회적 관계를 맺는 존재로서 유일하게 할 말이었는데 아무것도 나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남자친구 입장에서는 나와의 관계를 끊는 것 하나로 일상을 개운할 수 있는 정도의 결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내 세상 모든 지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만큼 이 관계에 진심이었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했다.
와 너무 웃겼다. 이 세상 새끼가, 나를 얼마나 대단한 사람으로 다져 놓으려고 엿 같이 꼬아버리는 고난을 던져주는 것일까?. 내가 과연 어떤 사람으로 떳떳하게 키워 주려고 이러나? 고작 한 아이의 엄마가 돼서 방에서 오랜 시간 육아로 지치게 할 것이라면 이 정도로 내 사회적 지위를 다 빼앗아갈 수 있나. (아 여기서 남자친구가 사회적 지위라는 의미는 아니다. 비약은 금물. 내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로서 모든 연결 직업, 결혼제도, 캥거루 등등을 모든 사회적 연결고리를 의미함)
한편으로는 분노와 오기가 생겨서 눈에 힘이 빡 들어갔다. 결혼시기에 맞춰 이직 후 그 회사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싶어서 집중했던 일상이, 시간적 제약이 모두 헤어짐으로써 없어졌다. 일시적 해방감 요소이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연애 후 결혼으로 재기하려면 내가 직업을 갖고 수익활동을 해야만 소개팅이든, 선자리든 기본적인 프로필로서 소개가 전해지기 때문에 언제까지나 백수로만 살 수는 없었다.
안 그래도 급한 마음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 급한 마음으로 작용했다. 이로써 회복력과 추진력과 실행력만큼은 내 폭발적인 강점임을 다시금 느꼈다. 정말 사랑했던 남자친구와 12시간 동안 펑펑 울고, 그동안의 사진을 모두 삭제하고, 결혼으로 걸어둔 예약들을 모두 취소해 버렸다. 내가 가장 필요한 건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와 수익생활을 하는 독립된 개체로서 일어서는 것이었다. 어쨌든 남자친구와 만나는 것으로 다시 가닥을 잡았고 24시간 만에 해프닝으로 끝나버렸고 모두 원점이 됐다.
해프닝. 그런데 내 모든 뿌리가 뽑히는 충격이었기 때문에 감정상태는 예전 같을 수는 없었다. 남자친구와 앞으로의 개선점을 이야기했고 서로가 서로에게 약속을 했다. 그리고 이직에 대한 압박감을 굳이 결혼 날짜와 엮지 않기로 했다. 이직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건강한 투자여야 한다. 직장 자체는 맺고 끊어짐이 분명하지만 커리어라는 것은 정원을 가꾸듯이 잡초도 자라고 꽃도 피고 거름도 필요한 것 들이라서 명확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이번 계기로 내가 혼자 삭였던 한숨 속으로 넘겨버렸던 눈물을 펑펑 펑 쏟아냈다. 이별을 계기로 그냥 모든 속상함을 모두. 그리고 부모님께도 솔직하게 세상 한탄을 했다. 매번 의젓하기 위해 애썼던 딸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 편치 않았겠지만 지금으로선 내가 그 상태가 맞으니까. 정말 슬펐고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내가 낙천스러움이 아주 강력해서 지금 가진 게 0이기 때문에 더 이상 잃을 게 없고 희망만 있다는 생각이 아주 깊고 굵게 자리 잡았다. 눈탱이는 밤탱이가 됐고 눈빛에는 독기가 서렸다가 다시 평온해졌다. 이 모든 게 24시간 동안 이뤄진 일이다. 세상이 참으로 미웠다. 아파 뒤지겠으니까. 그런데 충격으로 인해 상처와 교훈이 너무 깊게 자리 잡았다.
ㅡ특히,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안 써지던 글이 써지기 시작했으며, 비공개로 혼자 남겼던 글을 브런치에 공개적으로 올리기로 마음먹었다. 날 것의 일상, 날 것의 글들을 스스로 검열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