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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Apr 05. 2017

트랜스젠더 인권변호사를 꿈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상 속에서 차별받는 트랜스젠더들이 있어요”

[인터뷰] 로스쿨 졸업생 트랜스젠더 한희

 변호사시험을 치고 나오면 받을 수 있는 법전 굿즈. 한희가 친 시험의 합격 발표는 아직 나지 않았고 4월 중순 이후 발표 예정이다. ©QiC

어릴 때부터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던 한희는 공대에 입학했다. 남자의 모습으로 말이다. 한희는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건설회사에 취직했다. 이번에도 남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점점 남자로 연기하고 살기가 힘이 들었다.


“남자 정장을 입고 회사생활을 2년 하니까 생활하는 거 자체가 힘들기도 했고 둘째로는 내가 혹시라도 회사에서 아우팅을 당해서 어떤 불이익을 겪어도 사기업에선 잘리면 그만이니까 전문 자격증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왕 전문직 공부할 거면 저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자격증을 찾아보자 싶었고 정신과 의사랑 변호사 두 가지를 생각하다가 의대는 위계도 심하고 변호사가 더 적성에 맞을 것 같아서 로스쿨을 택했죠. 성소수자들 중에 저 같은 이유로 로스쿨에 가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


로스쿨을 통해 인권변호사가 되는 과정


“로스쿨은 학부 졸업생들이 입학해서 공부하는 3년 대학원 전문 석사과정입니다. 졸업하면 법학전문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어요. 졸업 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면 변호사 자격이 주어집니다. 시험 합격 후엔 6개월 정도 인권변호사 사무소나 로펌 등 자신이 선택한 개별 기관에서 연수를 받고 연수가 끝나면 변호사 사무소를 차리거나 로펌, 인권 변호사 단체 등에 취직해 일하게 됩니다.”


2017년 12월 31일부터 사법고시가 폐지될 예정이다. 사법고시 폐지 이후엔 검사가 되려면 검찰이 로스쿨 3학년 대상으로 시행하는 공개채용에 응시해야 한다. 채용 대상이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면 바로 검찰에서 일하게 된다. 판사는 최소 10년의 법조경력이 있어야 지원 자격이 생긴다. 한희는 몇 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머리를 기른 상태에서 로스쿨에 입학했다. 저 사람은 일반 남자는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있어서였는지 로스쿨 친구들은 한희의 커밍아웃을 쉽게 받아들였다.

한희의 책장. 변호사 시험을 공부한 흔적이 빼곡하다. 버릴 건 다 버리고 정리한 게 이 정도라고 하니 공부량이 어마어마하다. ©한희 제공

트랜스젠더의 일자리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


생각해보라. 크로스드레서가 아닌 남성이 매일 치마를 입고 스타킹과 하이힐을 신고 출근해야 한다면 어떻겠는가? 부치가 아닌 여성이 짧은 머리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해야 한다면? 게다가 볼일을 볼 때마다 남자 화장실로 가야 한다면 그의 심정이 어떨까. 한희는 트랜스젠더들이 회사 생활에서 힘들어하는 대표적인 문제가 화장실과 복장 규정이라고 했다.


또한 트랜스젠더들은 화장실과 복장 규정까지 가기 전에 구직 과정에서부터 차별을 겪는다. 트랜지션을 한다고 해도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바뀌지 않는 한 채용과정에서 왜 주민등록번호와 생김새가 다르냐며 차별을 받고 탈락하게 된다.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신분증이 필요 없는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요. 트랜스여성 중에 유흥업 종사자가 많은 이유도 여성으로 대우받으며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이기 때문이에요. 아니면 입사할 때부터 커밍아웃하고 입사하거나, 속이고 입사해서 호르몬을 맞기 시작하는 거죠. 주중엔 회사원으로 살고 주말엔 커뮤니티에 놀러 다니고요. 나이 있으신 분 중엔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내가 사장이니까 눈치를 안 봐도 되는 게 큰 장점이죠.


지금 이 순간에도 트랜스젠더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채용 과정에서, 일상 속에서 차별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2014)에 따르면 한 트랜스젠더는 구직 활동 중 자기소개서에 트랜스젠더임을 밝혔는데 면접을 보러 갔더니 면접관이 “트랜스젠더가 뭔지 궁금해서 불러봤다”라고 말하고 떨어뜨린 경우도 있다. 또 업계가 좁은 경우엔 아우팅을 시켜 이직을 못 하게 막는 경우도 있다.


“자기 성별의 화장실을 못 쓴다고 생각해보세요. 다른 직원들이 불편해하니까 우리 층, 우리 건물의 화장실은 쓰지 말라고 대놓고 말하는 회사가 많아요. 1박 2일 사내 워크숍을 갈 때도 그래요. 남자 방, 여자 방으로 나뉘는데 트랜스여성을 남자 방에 넣는다거나 하는 식이죠.”

한희가 사용 중인 컴퓨터. 퀴어, 페미니스트 관련 스티커들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한 눈에 보여준다. ©QiC

커밍아웃을 앞둔 트랜스젠더의 딜레마


“저 같은 경우 처음 커밍아웃하려고 할 때 고민한 게 있어요. 보통 트랜스젠더들은 어릴 때 성별을 정정하고 커밍아웃하면 성별 정정 전의 경력은 다 지워버려요. 수술하고, 성별 정정하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는 거죠. 처음부터 시스젠더(Cisgender, 자신의 신체적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동일하다고 느끼는 사람) 여성이었던 것처럼 혹은 남성이었던 것처럼요. 저는 28살 때까지 회사에 다니다가 29살에 로스쿨에 입학했는데 제가 그렇게 하면 30살에 경력 없는 여자가 되는 거예요. 그건 굶어 죽으란 소리나 마찬가지니까 결국 그렇겐 커밍아웃 못 하고 트랜스여성으로 커밍아웃하게 됐죠.”


트랜스젠더 대부분은 20대 때 첫 커밍아웃을 한다. 트랜지션을 위한 비용을 모으는데 평균적으로 2~3년이 필요하다. 트랜지션 이후 과거를 지우는 삶을 택한다면 경력단절을 겪게 되고, 그렇다고 과거를 지우지 않고 트랜스젠더임을 밝히면 트랜스젠더라서 차별을 받는다.


게다가 트랜스여성은 트랜스남성보다 외모 기준이 더 크게 작용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더 쉽게, 자주 성적 대상화가 되기 때문이다. 한희는 “트랜스 여성의 외모가 예쁠 경우 ‘진짜 여자 같다’ ‘여자보다 더 예쁘다’라는 말을 듣는다”며 “심지어 트랜지션 후의 외모가 예쁘지 않다면 ‘어떻게 저러면서 여자라고 할 수 있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한희의 책가방에 달린 트랜스젠더를 상징하는 로고모양 배지. ©QiC

트랜스젠더의 다양성


“사람들이 트랜스젠더를 볼 때 쟤는 트랜스여성이니까 남자 좋아하겠지, 쟤는 트랜스남성이니까 여자 좋아하겠지 이렇게 생각하기도 하고. 거꾸로 ‘동성애를 하니까 트랜지션 한 거 아냐?’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는데 여성이든 남성이든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성적 지향(Sexeul Orientation)’이고, 자신의 성별이 여성, 남성인지 혹은 젠더 퀴어인지 생각하는 건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이에요. 이 두 개가 일치할 필요는 없죠.


국내에서 트랜스젠더의 의미는 보통 의학적 용어인 MTF, FTM으로 쓰이는데 넓게 보면 성별 정정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트랜스여성과 남성, 젠더퀴어까지 트랜스젠더에 포함된다. 한희는 외국에선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젠더퀴어까지 포함하는 큰 의미로 쓰이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한희에게 조심스럽게 트랜지션을 앞둔 트랜스젠더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한희는 “트랜지션을 앞둔 사람에겐 그게 전부인데, 지금 당장 트랜지션을 하지 않으면 화장실 갈 때마다 죽을 것 같고, 내 몸을 보는 게 싫어서 불을 끈 상태로 샤워하는 사람도 있는데 제가 감히 조언할 수는 없다”라고 답했다.

    

‘너, 트랜지션 이후의 일도 생각해’라는 건 건방진 소리일 수도 있어요. 내가 트랜지션을 앞둔 사람에게 조언하기보다는 그냥 트랜지션을 하고 잘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계속 드러내고 얘기하면 십 대들도 ‘아 나도 저렇게 살 수 있구나’하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트랜스젠더 욕구조사 질문 중에 내 기대수명을 묻는 게 있었어요. 한 20대 응답자가 자신의 기대 수명을 40세 미만으로 적었더라고요. 그를 그렇게 만든 건 40대 50대 트랜스젠더 롤모델이 없기 때문이니까, 내가 오래오래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연재 계획
제 주변 성소수자들 중 퀴어인컴퍼니 프로젝트에 관심 있는 지인들을 한 분 한 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모은 인터뷰이들은 5명입니다. 앞으로 연재될 인터뷰들을 읽어주시고, 인터뷰이로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싶으신 퀴어 독자가 계신다면 이메일(queerincompany@gmail.com)이나 QiC 트위터 공식계정(@queerincompany)으로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퀴어인컴퍼니(Queer in Company, QiC) / 우리 회사에 성소수자가 다닌다

직장인 성소수자 드러내기 프로젝트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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