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를 마치고 예능을 봤다. 10분 앉았는데 등을 기대고 싶어 바닥에 내려왔다. 앉는 도중 아내가 완성해 가는 레고를 쳐서 부품조각이 떨어져 나왔다. 얼른 주워 붙이려 하니 어딘지 찾지 못했고 사방을 둘러봐도 멀쩡했다. 손에 쥔 부품이 나와 한 몸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떨어져 나온 건 레고 조각 하나인데 티 안나는 멀쩡함에 당황스럽다.
손에 쥔 레고의 크기는 손톱보다 작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각들이 5천 개 넘게 바닥에 흩뿌려졌고 형형색색 천차만별 크기의 레고들은 고유의 형태를 가졌다. 각기 다른 형태들이 하나둘 모여 작품을 이루고 또 다른 존재를 탄생하게 만든다. 떨어진 레고를 손에 쥐며 새롭게 변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손바닥 위에 있는 레고와 직장에서 퇴근한 나는 같은 신세였다. 베란다에 비친 내 모습은 직장이라는 하나의 완성품에서 잠깐 분리된 조각인데 레고와 어떻게 다를까
개인의 존재는 레고 조각 하나처럼 고유하다. 조각들이 하나 둘 모여 레고작품을 만든다. 순간 움켜 쥔 모습이 비쳤다. 하나의 거대한 조각처럼 보이고 거실과 베란다로 나가기 위한 유리문은 나와 직장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나눠줬다. 완전한 가름이 아니라 투명한 유리하나를 두고 안과 밖을 서로 공유하며 스스로 돌아보게 만든다. 경계 사이의 존재들은 고유함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그저 받침에서 빛나는 존재인지 맨송맨송하다.
직장에서 약속한 복장을 입고 신분증을 목에 두른다. 직장은 우리 앞을 수식하고 설명한다. 사원, 대리, 책임, 과장, 부장, 주무관, 주사, 사무관, 하사, 중사, 상사 등 직책 직급이 개인을 형용한다. 전화가 울리면 직장명이 먼저 소개되고 담당자 이름이 나온다. 메일 수신여부 또한 귀사, 귀기관의 영광으로 시작하며 출장 중엔 직급 또는 직책에 '님'을 붙여 직장의 한 분야를 대표한다. 서로가 서로의 공적인 일을 할 때는 개인인지 단체인지 헷갈린다.
모호함은 먹고살기 위해 일했던 부모님의 경계마저 무너뜨렸다. 마치 아이스크림이 녹아서 손에 흘러나와 사물이 합쳐졌다. 개인활동은 곧 단체생활의 위협으로 보여 보편적인 삶과 눈에 띄지 않는 생을 택했다. 그 속에서 나는 희생 속에 잉태된 물질적 풍족과 정신적 빈곤함의 가치를 동시에 받아 감사함과 기이한 구조에 의문을 갖는다. 옳고 그름을 떠나 생각할 시간도 없이 기성세대가 걸어온 길을 '정도'라 교육받았고 결여된 성공방정식은 소수의 생각을 말살시켜 수동적인 인간을 만들었다. 일화로 어느 직장상사가 한 말이 생각났다.
"시키는 것만 하면 되죠. 밥 주지, 옷 주지, 기름값 주지 등 하라는 것만 딱 하면 되잖아요."
유독 상사의 말은 나에게 시키는 걸 안 하면 죽는다는 표현처럼 들렸을까? 이걸 벗어나면 안 된다는 강박이 보였고 사회적 소외가 되면 안 된다는 외침으로 들렸다. 지금까지 쌓아 온 삶을 무너뜨리고 윤택함과 안정적인 삶의 균형을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일까? 그가 뱉은 말은 자신을 변호하는 말로 보이기도 하며 현재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지금 이 세상의 법칙인지 모르겠다. 이면엔 직장의 보호를 신의 가호라는 맹목적인 믿음과 지켜준다는 합리화를 통한 자신만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상사를 포함한 직장은 자기가 말속에 갇히고 세상을 구축한다. 세상의 전부인 양 자기 자식은 본인보다 더욱 잘 됐으면 하지만 특별히 잘하는 게 없으면 자신과 비슷한 일을 하면 좋겠다고 넌지시 말한다. 부모의 영향력을 가끔 보면 절대적으로 보일 때가 많고 앞서 혼자로서 딛고 일어날 수 없다는 무력을 가스라이팅으로 포장해 성공방정식의 원칙을 주입하는 듯 보인다. 누가 생각하고 말하는 게 틀렸다고 어떻게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개인의 고유함을 단체의 고유함에 묻거나 자신을 지우는 행위는 무엇이라 설명해야 할까...
레고를 손에 쥐며 베란다 거울과 밖을 보던 나는 갑자기 거울에 비친 아내의 모습에 움찔했다.
"아 진짜! 여기 조각 어디 갔어!"
"미... 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