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징어 게임 참가자
자신의 삶에 존재하는가?
오징어 게임.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 웹 드라마로 전 세계 열풍과 흥행은 물론 K-콘텐츠, K-드라마의 국위선양을 제대로 보여 준 자랑스러운 작품이다. 456억의 우승 상금을 차지하기 위해 한 사람당 1억이라는 생명수당을 걸고 456명이 참가하는 생존게임이다.
개인적으로 오징어 게임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생각난다. 게임 참가자들의 숙소로 쓰는 침대가 가득한 방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에서 소름이 돋았다. 참가자들이 게임에서 탈락해 침대가 치워지며 나오는 그림. 그 그림은 게임의 종류와 진행 방법이 그려져 있었다.
앞만 보고 경쟁만 하는 참가자들은 가까이 있는 진실을 보지도 못한 채 세상과 이별을 했다. 진실이 그려진 그림이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이 그림은 시청자인 내가 봐도 몰랐으며 처절한 싸움을 보는 눈과 각 캐릭터의 상황을 지켜보느라 마지막화가 다가올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도 VIP들이 등장해 게임을 시청하는 장면 전부터 그들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억지로 게임에 참가하게 만든 게 아니라 자발적인 선택으로 참가하게 만들고, 거액의 돈으로 보상을 했다는 자기 합리화로 자신들의 책임은 정당하다고 보여주는 듯하다.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며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한테 서로 내기를 하는 등 마치 스포츠나 비디오 게임을 보는 듯이 말한다.
'내가 너한테 얼마 걸었는지 알아?'
이 드라마를 끝까지 다 봤지만 여운은 가시지 않고 가끔 생각한다. 어쩌면 오징어 게임은 우리가 이미 참가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월등히 많다. 왜 그렇게 됐을까?
어쩌면 교육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쟁 속의 사회에서 1등이 아니면 의미 없다는 듯한 교육. 학창 시절엔 성적이 곧 존재의 이유이기에 서로 총성 없는 입시전쟁을 하게 된다. 결국 과도한 경쟁이 우리가 알고 있는 공정함을 퇴색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마치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관리자들의 암거래를 도와주고 게임의 정보와 식량을 따로 챙겨 받는 의사처럼 말이다.
이렇게 경쟁의식이 있는 상태로 자라온 우리들은 대학은 물론 취업 활동에선 더욱더 발전된 오징어 게임을 하게 된다. 공무원 시험에서 여러 차례 낙방한 사람들, 취업 실패로 좌절한 사람들, 학자금 대출로 신불자가 된 사람들, 회사에서 낡은 부품을 갈아 끼우듯 권고사직을 하게 되어 실직한 사람들 등 자연스럽게 인생이라는 여정에서 낭떠러지로 향하게 된다.
사람마다 힘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각각 다르지만 OECD 자살 통계가 우리 사회의 암울함을 말해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는 자신의 고귀한 생명까지 버리게 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드라마와 우리 사회를 보면서 무엇을 봐왔던 걸까. 벽 뒤의 그림은 답을 보여주는데 눈앞의 경쟁이 눈을 가려 진실을 못 보게 한다. 결국 나중에 다 끝날 때 알게 된다. 끝에 가서 알아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기에 바꿀 수가 없다. 우리 사회도 어쩌면 알고 있는데 바꾸지 못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