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의 싸움만 있는 게 아니었다.
-터틀킹-
1. 첫 번째 악당: 이리저리님들
그림 by. 터틀킹요즘 독서실에 다닙니다. 작년 이맘때 승진시험을 위해 자발적으로 저를 이곳으로 이끌었습니다. 과감히 포기해 후회되지 않지만 시간과 돈, 다른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진 게 후회가 많이 됩니다. 아! 푸념은 여기까지 해야겠군요.
저는 지금 사방이 칸막이로 둘러싸여 있고, 책상과 의자만 있는 독서실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독서실에서 키보드를 써도 되냐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가능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스터디 카페입니다.
무소음 키보드를 이번에 구입했기에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지 않죠. 키보드의 타건음은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새로 구입한 키보드의 폭신한 타건으로 공부와 글쓰기를 두 가지 다 할 수 있어 아주 좋습니다. 다시 본론으로ㅎ
집에서 주는 편안함이 제 몸을 침대로 향하게 하고 숙면에 이르게 합니다. 그 편안함을 버리고 약간의 불편함을 얻고자 독서실을 택했지만 수많은 위협은 도처에 깔려 있더군요...
그중 손꼽는 몇몇 악당들이 있는데 이분들은 의자에 앉기가 많이 불편하지 아니면 항문 관련 질환이 있는 것인지 10분에 한 번씩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갑니다. ‘뭐 집중을 못하는 거네?’, ‘이어 플러그 끼시면 되잖아요?’ 등 말씀을 해주실 수 있죠. 지금 이어폰을 끼고 조용한 음악을 켜고 제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분들이 나가는 건 좋지만 계속 왔다갔다 하고 문을 여닫을 때 소리가 온 방에 퍼져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이중문으로 설치되어 있지만 이중문이 닫히기까지 시간이 걸려 밖의 문의 충격으로 소리가 납니다. 한두 명이 이리저리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게 아니기에 힘들었습니다.
2. 두 번째 악당: 똑딱님들
그림 by. 터틀킹
이분들은 주위가 산만한지 아니면 집중력이 오래가지 못하는지 볼펜은 필기구인데 악기로 사용을 하더군요. 심지어 리듬까지 있기에 계속 똑딱거립니다. 1~3초에 한 번씩 아주 빠르게 똑딱똑딱 거립니다.
누가 보면 괘종시계인 줄 알겠습니다. 몇 시인지 가끔 보고 싶어 지게 만드네요. 게다가 펜 돌리기 묘기도 하는지 책상에 떨어져 탕탕 떨어지는 소리가 독서실 전체를 울리는 알람 소리 같았습니다. 계속 듣고 있다 보면 최면에 빠질 정도로 일정하게 들려주기도 합니다. '당신은 전생으로 여행을 합니다. 레드썬!' 집에 가고 싶다!
똑딱님들이 갖고 있는 펜들이 각각 다르고 누르는 리듬도 달라 볼펜 오케스트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가끔 심각한 상황도 오는데 이리저리님들과 똑딱님들이 서로 만납니다. 둘의 시너지 효과가 엄청나네요. 이리저리님들이 똑딱님들을 데리고 독서실 밖으로 나갑니다. 나가는 도중에도 똑딱똑딱 거리며 문을 쾅 닫으며 여기저기 움직이네요. 총체적 난국입니다.
3. 세 번째 악당: 중얼님들
그림 by. 터틀킹
시험기간이 다가오며 점점 조여 오는 긴장감과 날이 선 듯 날카로운 예민한 신경이 중얼님들을 자극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불안을 달래려 입으로 안정을 취하시는 분들도 가끔 계십니다. 이분들은 중얼중얼 자신의 암기과목을 외우기도 하죠. 제가 귀를 기울이지 않고 듣게 되면 마법사들의 주문 같습니다. 리수리수 리수마 리수리수 리수마(수리수리 마수리 × 2)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사들의 주문 같이 말이죠. 간혹 제가 쉴 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면 한국사를 열심히 외우고 있었습니다. 한국사 검정 능력 시험을 재밌게 공부해서 그런지 무슨 내용인지 그려졌습니다. ‘오. 고려 말 조선 초구나, 권문세족과 신진사대부들의 역사가 그려지기 시작했군!'
저도 모르게 한국사를 공부하고 있는 모습에 당황했습니다. 너튜브에 이성계 위화도 회군과 정도전을 검색하고 있었으니 말이죠. 가장 막강한 마법사 악당이었습니다. 마지막에 태정태세문단세를 같이 외우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고 독서실에서 조용히 울었습니다ㅜ.ㅜ
4. 네 번째 악당: 콜록님들
그림 by. 터틀킹
요즘 같은 감염병 유행시기에 조심해야 하며 생리적 현상이 오해를 사는 행동으로 보이게 됩니다. 기침, 콧물이 있다고 전부 코로나가 아니며 축농증이나 비염으로 일상생활이 힘드신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물론 저도 비염이 있어 봄에 꽃가루가 날리면 코가 웁니다. 이런 날은 독서실을 포함해 다수가 많은 곳은 최대한 피하는 편이죠.
생리학적 소견과 환경의 조건이 각자 몸상태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니까요. 콜록님들은 지금 같은 시기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합니다. 사레든, 잔기침이든, 몸이 아프든 여러 가지 의학적 소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다수의 생각은 딱 '그거'입니다.
이미 감염됐던 사람들도 걸리는 판국이라 최악의 경우엔 신고까지 당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독서실엔 코로나로 실직하신 분들이 재취업이나 창업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고,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구하기 위해 준비 중인 취업준비생들, 소위 상위권 대학에 가려고 하는 수험생들의 집합소이기 때문이죠.
본인도 이 중 하나에 속한다면 아마 잘 아실 겁니다. 콜록거리는 기침소리가 조용한 공간 안에서 배로 들리기에 천둥소리처럼 쾅쾅 소리를 냅니다. 저는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콜록님들과 다른 분들은 마스크를 안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감염병에 노출이 되므로 코로나에 감염될 확률이 매우 높아집니다. 검사를 받아보고 결과에 따라 입장에 많은 고민을 해봐야겠죠.
5. 마지막 악당: 마왕
그림 by. 터틀킹
앞의 악당들은 그저 어린애 장난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마지막 악당. 모든 것을 다 합친 대마왕입니다. 이분들은 배려 따윈 모두 갈아 마셨습니다. 예전에 승진 시험을 준비할 때 제 바로 옆칸에 앉은 분이 있었는데 쿠당탕거리면서 뭔가를 꺼냅니다. 시장의 시끌벅쩍함이 느껴질 정도네요. 정체가 뭔지 궁금해 화장실에 가기도 할 겸 슬쩍 봤는데 영상을 다루시는 직장인이신지 노트북으로 뭔가를 계속 검색하고 하는 게 심상치 않았습니다.
저는 그때 도망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자리에 돌아와 보니 무소음 마우스로 검색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반 마우스로 ‘딸깍 딸깍’, ‘엔터 탁!’, ‘딸깍’, ‘딸깍’, ‘스페이스바 탁탁탁’, ‘키보드 자판 타닥타다닥타닥 탁탁’, 심지어 작은 소리로 전화까지 하다니 와우 나는 말 다했다! 열람실은 이런 용도가 아닌데…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자리를 피했습니다. 순간 층간소음이 심각한 이슈로 자리 잡은 이유가 이런 거군 하며 혼자 생각도 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악당들과 직접 부딪쳐 봤지만 저의 시간만 낭비되고, 에너지 또한 쓸데없이 소진돼서 아깝고, 감정상한 상태로 공부 흐름이 끊겨 집중도 안됩니다.
돈 낭비 시간낭비 감정 낭비로 저만 손해고 그저 소귀에 경 읽기입니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는데 마왕들의 행태로 보아 삼 년을 넘게 욕먹었을 거 같은데 안 고쳐진 거면 말 다했죠. 마왕에 맞서 싸우는 방법은 여러 명의 선한 영웅들과 파티를 맺고 힘을 합쳐 대항마 전쟁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열람실은 마왕에게 점령되어 우리 발로 나가야 하는 슬픈 현실입니다...ㅜ.ㅜ
그럼 여기서 잠깐!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실 수 있는 관리자의 호출은 어떨까요? 이미 해봤지요. 저는 관리자를 찾아가 본 적이 비교적 적습니다. 하지만 다른 예민한 분들이 민원을 이미 수도 없이 넣었는데도 불구하고 뜻대로 해결이 안 됐습니다. 민원내용만 모아도 아마 도감을 만들어도 될 정도입니다.
아무리 얘기를 조용히 하고 경고를 해도 그때뿐입니다. 강제 퇴장의 경고는 없습니다. 이유는 그 사람들도 고객이기 때문이죠.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지금 같이 코로나라는 팬데믹의 상황이 경기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니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이분들의 사정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결국 참고 공부를 하든지 짐을 싸고 나오든지 해야 합니다. 시험기간이 빨리 지나가면 좋겠네요. 그리고 조금만 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합니다.
그 외에도 제 경험상 많은 악당들이 존재했지만 중복되는 행동들이 비슷하기에 짧게나마 끝에다가 끄적입니다. 학업으로 연애할 시간이 부족해 열람실에서 꽁냥 거리며 먹을 걸 챙겨주며 문제를 서로 속삭이며(다 들린다 이것들아…) 가르쳐 주는 큐피트ASMR러들, 우리도 너랑 같이 끝까지 책에 파묻히겠다는 여.우 님들(여기까지다. 우리의 우정은) 가끔 보면 경쟁이 아닌 견제를 하는 듯 보입니다. 이 방은 우리가 접수한다. 다 나가라. 어머나머스(非국제 독서실 피시방 개최자들) 도대처 왜 독서실에 노트북 가져와서 팀플로 게임을 하는건데요...
반응이 소소하게 괜찮으면 독서실에서 악당들을 상대로 선한 영향력을 펼쳤던 영웅들의 모습도 풀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