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실 수호자들[2]

꼰대감편

by 하르엔
by. 터틀킹


2. 꼰대감


옆방으로 가게 된 이리저리는 움직이지 않게 됐습니다. 대신 입이 이리저리 쉴 새 없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중얼님으로 변신하는 찰나의 순간입니다. 변신을 마치고 암기과목과 영어단어를 마법 주문처럼 숙덕숙덕 외웠습니다.


참 신기하게도 입으로 떠든 에너지가 조용한 공실에서 확성기처럼 퍼져 누군가의 귓가를 팡팡! 때립니다. 그 순간 '드르륵' 바퀴 달린 의자 소리가 나더니 터벅터벅 투박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집니다.


가까워지는 소리와 다르게 중얼님이 자기 자리에서 조용히 떠듭니다. 갑자기 얼굴 그림자가 책상에 비쳐 뒤로 나자빠질 뻔했네요. 어둠 속에서 양반탈을 쓰신듯한 얼굴의 소유자로 보이는 50대 중년의 남자가 웃는 얼굴로 밖에서 잠깐 보자고 합니다.


밖으로 나가면서 중얼님은 (' 뭔데?!')라고 생각하며 문을 열고 나갑니다. 안과 사뭇 다르게 밖은 화창합니다. 중년의 남성이 인자한 얼굴로 웃으면서 인사를 건넵니다. 열람실 밖 깨끗한 날씨와 웃는 얼굴의 모습에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 취업 준비하느라 스트레스 많이 받죠?"


양반탈 같은 표정의 남자는 50대 중년으로 보입니다. 175cm 정도의 키에 흰머리가 빼꼼 보이며 개량한복 같은 옷을 입어 세월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상처 많은 두 손에는 작은 캔커피가 쥐어져 있었고 중얼에게 조심스레 건네줍니다.


여기까지 인자한 아저씨가 젊은 시절이 생각나 청년의 손에 따뜻한 캔커피를 쥐어주는 아주 감동 있는 스토리로 마무리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지요. 그러면 안되지요.



중얼: "감사하...ㅂ


꼰대감:

"저도여기온지얼마안됐습니다원래직장은잘렸고이나이에받아주는곳도없으니전문자격증을취득하려고합니다그런데젊은청년들도취업이힘들걸여기와서알게됐네요기업이일자리를만드는데갈수록경기가힘들어지니경쟁률만높아질수밖에요."


랩도 쉬는 구간이 있는데 이 분의 말씀은 숨 쉴틈도 안주며, 물어보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은 본인의 얘기만 합니다. 중얼은 앞으로 혼자 속닥거리지 않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습니다. 잠깐 속닥거린 게 황금보다 중요한 지금의 시간을 버리는 기분이기 때문이죠. 시간을 많이 허비해 이제 다시 열람실로 들어가려 합니다.


"중얼: 이제 들어가 볼...


꼰대감:

아저도들어가고싶죠나이때문에서류전형의기회조차박탈당하네요.이나이에공무원시험을보고싶어도바늘구멍보다좁디좁은경쟁률을뚫고지나간다는자체가어려운겁니다.역시요즘젊은사람들은대단해요.좁은경쟁률이라도도전하는도전정신대단합니다.저는장사나해야하나하는데아무나하는것도아니고하아...



처음에는 그저 고마운 분이라 생각했지만 끝나지 않는 속사포 언변에 놀라웠고, 들어가야 할 타이밍을 주지 않아 삼십 분을 더 이야기합니다. 본인도 중얼거린 게 있으니 미안한 마음에 있었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꼰대감의 말은 비수처럼 고막에 꽂혀 피가 나는 듯합니다. ('차라리 욕을 해라...')라고 생각할 정도로 치를 떨었죠. 급하게 자리에서 도망쳐 짐을 챙겨 후다닥 나가려는데 양반탈 소유의 꼰대감이 뒷짐을 지면서 다가왔습니다.


꼰대감: 자네 같이 독서실 옮겨 볼 마음은 없나?


중얼님은 짐을 챙기는 도중 꼰대감의 바뀐 말투와 반말이 고막을 세게 때려 바로 돌아봤습니다. 가뜩이나 쓸데없는 말로 30분을 뺏겨 기분도 나쁜데 반말까지 하니 짜증이 솟구쳐 얼굴이 터질 정도로 빨개집니다.


중얼: 제가 왜 독서실을 옮기나요? 그리고 왜 반말입니까?!


화가 난 중얼은 꼰대감 앞에서 분을 토해냅니다. 반말에 열 받아 씩씩거리는 중얼을 보며 꼰대감은 양반탈같이 웃지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꼰대감: 자네는 아직도 잘 모르는군. 난 처음 자네에게 존대를 해줬고, 듣기 싫은 말로 돌려서 경고를 했었네. 그런데 자넨 잔소리가 듣기 싫으면서 자네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 준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난 얘기하는 것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들어주는 일도 재밌어하니 여기서 서로 떠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말자는 것이네. 같이 다른 독서실로 자리를 옮기면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으니 서로서로 좋은 거 아닙니까 젊은 양반? 허허허.


자신의 자리에서 LED 등을 끄고 나가면 되는데 갑자기 나타나 논리 정연하게 맞받아치는 꼰대감의 말에 한마디도 못했네요. 웃으며 점점 다가오는 꼰대감에게 분함을 느끼며 등에 땀이 줄줄 흐른채로 뒤도 안돌아보고 뛰쳐 나갔습니다. 이어 꼰대감이 한 마디 합니다.


꼰대감: 요즘 젊은이들은 남에게 배려가 없군. 나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지.





3탄 부처X, 붙여O 님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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