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꼰대감의 폭포같이 쏟아지는 말이 더욱 듣기 싫어 가방을 챙겨 또 한 번 뛰쳐나옵니다. 결국 사람이 많지 않은 구석진 열람실로 향하는데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방 안에서 냉기가 훨씬 도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여긴 왜 이렇게 추워?" 무심결에 속마음이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그러다 열람실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하는데 벽 쪽의 구석진 자리는 더욱 이상했습니다. 들어온 열람실에 사람들이 없고, 단 한 명만이 구석진 자리에 불도 켜지 않고 담요를 덮은 채 엎드려 자고 있는 겁니다.
근처에 발걸음을 옮겨보니 보이지 않았던 책들이 잠자고 있는 정체모를 사람들 주변으로 수북이 돌탑처럼 쌓여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책상 밑으로 각종 모의고사 시험지에 단어 시험장들을 보니 고시나 공무원 준비생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엎어져 있는 수험생 뒤편의 좌석에 착석하려는데 수험생의 책상엔 수많은 명언들이 메모지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노력하면 꿈을 이룬다- 메모와 자고 있는 수험생을 번갈아가며 보며 속으로 생각합니다. '꿈을 꾸는 군' 그러더니 갑자기 수험생이 몸을 벌떡 일으킵니다.
화들짝 놀란 중얼은 다시 말을 바꿉니다. "꾸... 꿈을 이루겠군." 말을 마침과 동시에 수험생은 다시 누워 곤히 잠들었습니다. 악몽을 꾼 듯하네요. 주변을 본 중얼은 자고 있는 수험생을 뒤로하고 책상에 앉아 생각의 늪에 잠겼습니다. '이렇게 노력하는데도 미래가 불분명하구나' 말이죠.
자신의 자리에 돌아오기 전 '1점이 모자라 합격을 못했으며 그 1점으로 1년의 시간을 다시 1평 남짓한 책상에 몸을 구겨 넣어야 한다는 문구', '부모님께는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하나. 나는 죄인이다'는 메모가 가슴을 후벼 팠기 때문입니다.
그가 지금 몇 번째인지는 몰라도 연도별 모의고사가 3년 전부터 지금까지 있는 걸 봐서 대충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도 노력을 해도 불분명한데 이렇게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자리에 앉아 led등을 켜고 책을 펴고 갖고 있던 텀블러의 냉수를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갑자기 확 마셔서 그런 것일까 홍수처럼 몸으로 들어가는데 기관지로 잘못 들어가 사레들러 기침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콜록콜록 크흡 콜록콜록" 먹던 물도 책이 젖을 정도로 뱉게 됐습니다. 이 정도면 됐겠지 했지만 기침은 가시지 않았고, 소리는 산속의 메아리처럼 울렸습니다. 중얼은 그때 콜록으로 변신하여 누워있는 불합격생에게 인식됐습니다.
그 순간 어두운 곳에서 담요를 머리까지 덮고 있던 수험생이 쓱 일어나 몸을 틀어 일어나 봅니다. 불도 키지 않고 담요를 조선시대 부녀자들이 쓰는 장옷처럼 쓰고 이쪽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가뜩이나 어두운데 장옷으로 가려진 채로 눈을 이쪽으로 치켜뜨고 보기에 불합격생의 한이 서린 눈빛을 알게 되었습니다.
희한하게 오늘따라 일이 풀리지 않구나라고 생각하는 콜록 이었습니다. 갑자기 다가오더니 "콜록님 안녕하세요? 엊그제 불합격 통보를 받고 세상 무너져 갈 곳 없이 지금 여기 처박혀 있는데 기침하는 것마저 내게 눈치 주고, 못했다 하는 것 같이 들립니다. 지금 1점 차이로 3번을 떨어졌다니까요. 갑자기 기침이 자기를 무시했다고 하는 듯 말하는 장수생이었습니다.
"물을 먹다가 사레들러 기침이 나왔습니다.' 기침으로 눈치를 주다뇨 그렇지 않아요." 같은 성인인데 반존대를 하는 이 사람이 묘하게 사람 속을 긁고 있습니다.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져 어두운 마음의 소유자가 된 장수생은 또 말합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하나 알려드리죠. 이 방은 더욱 조용해야 합니다. 이 방자체가 공시생들을 위한 방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엔 나와 같이 공부한 다섯 명이 있었는데 나 빼고 다 합격을 했습니다. 심지어 네 명 중 두 명은 나보다 늦게 공부를 시작했는데 합격했죠. 게다가 이 방에 들어올 때 독서실 사장의 안내를 못 받은 겁니까? 공시생 전용 방에 극한의 조용함이 없을 시 퇴장시킬 수 있다는 걸."
"아니 그럼 뒤에 내용만 얘기하시면 되지 굳이 앞에 내용은 뭐하러 말씀하시는지...ㅎ"
"합격은 못했고, 나보다 늦게 공부한 사람들은 붙었으며 또 1년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걸 찾아야 하는지 생각하다 잠들었습니다. 게다가 이 쪽 방에 온다는 것은 다른 방에서 다 쫓겨나 오는 방으로 잘 압니다. 오래 공부했기에 잘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콜록님이 한 번 더 이런 식으로 기침을 하면 난 불안합니다. 감염병이 퍼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죠. 지금도 기침을 하시네요. 곤란하게 하면 갖고 있는 책을 다 파쇄시키고 똑같은 새 책을 살 수 있게 돈으로 다시 드리겠습니다. 그게 당신이 내게 준 고통이 어느정도인지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공부를 너무 오래 하면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져 힘들어지고 남들이 이해 못 할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고 합니다. 책을 파쇄시키고 새 책으로 살 수 있게 돈을 준다는 흑화 된 수험생을 본 중얼은 막장드라마의 충격을 현실로 받은 뒤 어둑어둑한 열람실을 빠져나옵니다.
"하... 방이 그렇게 추우니 기침이 나오지... 물 먹다 사레걸린 건 봐주지도 않네...무슨 게임 하는 것도 아니고 가는 곳마다 보스 몬스터만 있는 거냐고... 어디로 가야 내가 공부를 잘할까 어디 열람실이 내 마음을 잘 받아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