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터틀킹
3. 붙여편
'이건 또 뭐냐...' 수험생들의 힘듦을 온몸으로 느끼고? 다른 방에서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잠깐 전화받고 자리로 온 사이 알록달록 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콜록의 자리에 덕지덕지 붙은 메모지들. 화려한 메모지가 콜록을 감쌌습니다.
내용을 보니 볼펜 똑딱거리는 소리로 고통받았다고 자제해달라는 글이었습니다. ('이렇게 5색 메모지를 전부 붙였다고? 사방으로?')라고 생각한 콜록은 자신이 도대체 언제 어떻게 똑딱거렸다고 이러는 건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들고 있던 볼펜으로 똑딱거립니다. 콜록에서 똑딱으로 변했네요.
누군가에겐 기침보다 볼펜의 똑딱거리는 소리가 더욱 거슬렸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전까지 만난 존재들과는 다르게 실체가 없었습니다. 부처 아닌 붙여님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어디에도 존재하며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똑딱이 된 콜록은 생각을 합니다. 누가 붙인지도 모르는 열람실 사람들을 다 조사하면 자신만 이상한 사람이 되고, 또 방해꾼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생각에 조용히 뒤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열심히 자신의 목표를 향해 공부 중인 사람들의 뒷모습과 그 옆에 책상 위에 놓인 메모지들을 봅니다.
형형색색의 볼펜들과 메모지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순간 머리를 빠르게 스쳐가는 문득 든 하나의 생각 '모든 사람이 다 붙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보니 그새 또 붙어있는 메모지들. 멀리서 보면 이벤트 같지만 실체를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 보면 비판과 적지않은 비난이 써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자신의 잘못이 객관적으로 보이게 됩니다. 내용은 색깔있는 메모처럼 아주 다양했습니다.
-'인생을 걸고 이 독서실에 왔는데 똑딱거리는 소리에 인생이 날아갑니다.'
-'한 시간 동안 똑딱거리는 소리를 내시는 건 같은 수험생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네요?'
-'오늘이 힘들면 내일이 괴롭다.'
-'너는 안녕하십니까?'
-'당신의 똑딱 소리에 최면 걸릴 듯합니다.'
-'이런 행동 처음 아니시죠?'
대부분의 메모는 콜록과 비슷한 처지거나 더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각자의 다른 환경을 존중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콜록은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개중에 개념 없는 메모도 있지만 배려가 없던 자신의 행동에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자신은 독서실에 왜 왔는지를 잊고 있었던 겁니다.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 즉 초심은 취업 합격을 위해 왔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앞서 옮겨다닌 열람실들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초심이 떠난 육체는 갈 곳 없이 방황하여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자신을 놔버려 망가졌습니다. 그때 나타난 수문장은 초심이 더는 나가지 못하게 지켜준 사람이었던 겁니다.
단지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쫓아낸 게 아니었습니다. 화장실까지 쫓아오며 계속 서있던 이유는 다른 이리저리의 영향에 벗어나게 하기 위해 차단 역할을 해줬습니다. 그의 말이 뇌리에 박혀 자리에 움직이지 못하고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두 번째 방에서 만나게 된 꼰대감은 자신의 경험과 세월을 느끼게 해 줬습니다. 랩처럼 말한 속사포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렸기에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경청하지 못해 미안했습니다. 같이 나가자고 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요?
청년의 시간을 훔치는 건 아닌지, 자신도 처지가 비슷한데 누굴 가르칠 수준이 되는지, 어떻게 말해야 본인의 잘못을 알게 하고 배려 할지, 실제로 솔직하게 말할지 모든 순간이 고민이고 결정이었습니다. 애초에 진짜 꼰대였다면 커피를 주지도 않았고, 공손하게 말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세월의 풍파를 맞으며 알게 된 배려를 몸소 알려줬습니다.
또, 본인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 책 속에 파묻힌 나그네(=장수생)는 어땠을까요? 주변에 널브러지게 쌓인 책과 수험서, 빨간펜으로 동그라미가 그려진 모의고사 용지들을 봤는데도 현실을 보여줬습니다. 1~2점 차이로 떨어진 자신의 모습을 보라고, 초심과 열심히를 무기로 해도 결과가 이러니 잘 생각해보라는 진심 어린 메시지로 보인 겁니다.
어쩌면 알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마주한 수호자들처럼 되기 싫다는 마음이 자존심이라는 바다에 가라앉는 게 보기 싫었던 겁니다. 그러나 처음으로 실체 없는 수호자를 마주해 자신의 문제점을 메모로,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냥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붙어 다니는 수호자들의 관심에 돌아봅니다.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뭐야? 짜증 나게 지들이나 잘할 것이지.'라는 말로 끝났을 수도 있었죠. 옷깃만 스쳤지만 옷깃이 생각의 방향을 휙! 돌려줬네요.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 보면 비극이기에 자신의 비극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목표를 모른 척하며 딴짓만 하는 본인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모든 메모지를 자신의 공책에 붙인 뒤 이전과는 다르게 시작합니다. 작심삼일 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책장은 한 장 두 장 넘어가며 펜의 끝은 목표를 향해 그려집니다.
최종화 장원(=합격)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