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시험을 보기로 결정하고 나서 가장 시급한 것은 많은 동작들의 순서를 외우는 것이었다. 단순 암기에는 자신이 있다고 자부했는데 몸으로 외우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다 외웠다고 생각해도 막상 음악에 맞춰보면 생각대로 안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게 이렇게 어려울 일이야?! 스스로에게 좌절하고 좌절하기를 여러 번. 그래도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나름의 방식이 생겼다.
우선 선생님의 시연 동작을 촬영해둔 영상을 무한 반복 시청하고 따라 해 본다. 이렇게 동작 하나 하나를 끊어서 연습해 보는 걸 ‘마킹’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것을 무려 손으로 해야만 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동작의 영상을 초단위로 끊어보며 팔 동작과 발 동작을 노트에 받아 적었다는 뜻이다. 어떻게든 내 머리 속에 이 지식을 넣겠다는 일념으로 깜지를 적어 내려갔던 학창시절의 그때처럼. 그만큼 간절했다는 뜻이요, 정말 외우기가 힘들었다는 뜻이다. ‘오른팔 알라스공, 왼팔 안아방, 오른발은 플리에, 왼 발은 앞으로’ 이런 식으로 동작을 하나하나 노트에 적고 나면 순서가 머리 속에 들어 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선 될 때까지, 틀리지 않을 때까지 무한 반복하는 수 밖에는 없었다. 그래도 순서 외우기는 어렵지 않은 과정이었다. 문제는 디테일 한 동작들 잡을 때부터 시작된다.
가장 먼저는 시선. 익숙하지 않은 동작에 익숙하지 않은 시선처리까지 하려니 쉽지가 않았다. 옆쪽과 앞쪽 외에도 올려다보는 시선, 들여다보는 시선까지. 각 다른 동작에 다른 시선이 겹쳐지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시선 처리만 잘 해도 동작의 디테일이 달라 보였다. 시범 보여주시는 선생님과 나는 같은 동작을 해도 뭔가 한끝 다르다고 느꼈는데, 그 비밀이 시선처리에 있었다. 물론 이 외에도 수많은 요소들이 다르겠지만.
그 외에도 발 끝까지 힘을 써서 라인을 더 늘려 주는 것, 턱 끝을 살짝 들어서 목 라인을 길게 보이게 하는 것, 몸 방향을 정면에서 살짝 옆으로 돌려서 날씬해 보이도록 하는 것 등등 동작 하나에도 많은 디테일들이 숨어 있었다. 근데 이것이 한번에 다 고쳐지면 좋으련만. 입력하면 결과가 알아서 나오는 컴퓨터 같은 몸이 아니라서 그런지 고치는 게 쉽지 않았다. 고쳐야 할 것들이 한 두 개가 아닌 것도 큰 이유였다. 하나를 생각해서 동작을 하면 또 다른 하나가 문제가 돼버리는 몹쓸 몸뚱이. 게다가 혼자서 연습하면서 굳어버린 습관을 고치는 게 쉽지는 않았다. 3번만 같은 방법으로 연습해도 몸이 그냥 그렇게 인식을 하는 것 같았다. 이럴 땐 맞는 방법으로 계속 해서 잘못된 방법을 덮어버리는 수 밖에 없다. 틀린 부분을 계속 해서 반복 반복. 될 때까지 할지어다.
요즘은 계속해서 디테일을 잡는 수업을 받고 있다. 실제로 시험을 보는 것처럼 시험 순서에 맞춰 동작을 진행한다. 바 동작과 매트 동작은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음악이 나오면 자동적으로 동작이 척척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험동지들의 걱정이 떠나지 않는 것은 마지막 댄스 프로그램 2가지 이다. 체력적으로도 고되고,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다. 순서 외우기도 만만치 않고, 아직 많은 디테일의 발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장 압권은 나만의 느낌을 담아내서 프로그램을 해석하는 것이다. 순서나 안 틀리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인데 내 느낌까지 어떻게 담아야 할까 생각해본다.
댄스 A 프로그램은 파키타의 보석 음악에 맞춘 솔로 바리에이션인데, 신비하고 몽환적인 느낌의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게 된다. 댄스 B 프로그램은 전통 발레의 느낌이 아닌 여느 외국의 전통 민속 춤에 가까운 춤이다. 딱딱 떨어지는 박자감이 특징이다. 힘있고 절도 있는 느낌으로 프로그램을 완성해야 한다.
선생님께서는 ‘나만의 느낌을 담은 프로그램’을 표현해야 한다고 하신다. 연습이 끝나면 나의 두 번째 발레 선생님인 유튜브에 접속한다. 유명 발레단의 보석 공연 영상을 찾아보거나 이전에 시험을 봤던 선배들의 데모 영상을 찾아보면서 나름의 공부를 해보고, 프로그램 해석 영상들을 보며 배경 지식을 공부해본다. 아직은 감이 안 오지만, 이것 또한 될 때까지 해볼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