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발레일기 4
클래스를 듣다 보면 “이제 초급 클래스는 따라 할 만 한데?”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제 중급 클래스 들어도 되냐고 여쭈어볼까?’ 하게 되는 행복한 착각의 순간.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센터 워크 수업에서 이런 나의 자만, 안일함 등등이 와장창 깨지게 된다. 아니, 바에서는 잘 만 되던 동작이 왜 이렇게 안 되는지. 그저 내 몸 앞에 얇다란 바 하나만 없을 뿐인데 말이다. 를르베 업 (뒤꿈치를 들고 발 끝으로 서는 동작, 쉽게 말하면 까치발)으로 밸런스를 잡는 것도 힘들고, 턴듀, 데가제(발을 앞으로 내미는 동작)에선 버티고 있는 다른 쪽 다리가 후들후들거리고. 역시 나는 아직 멀었구나 작아진다. 바에 의지하면서 동작을 할 때랑, 오로지 내 몸의 균형에 의지해서 동작을 할 때가 이렇게 다를 수 있나? 바 워크를 할 때 선생님이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앞에 바가 없는 것처럼 하세요~ 바가 없어도 이 동작을 할 수 있어야 해요~”
클래스의 등급(초급, 중급, 고급)에 따라 다르지만, 발레 클래스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바를 잡고 수업을 한다. 하지만 실제 발레 공연에서 무용수는 오로지 몸으로 공연의 스토리를 표현해 낸다. 그런데 왜 클래스에서는 바를 잡고 연습을 할까?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센터 워크 (바 없이 진행되는 발레 동작)를 잘 하기 위해서는 기본기가 탄탄하게 잡혀 있어야 한다. 바 워크는 몸으로 동작을 잘 표현해 내기 위한 기본기를 다지는 워크아웃인 것이다.
발레는 무대 예술이다. 멀리 있는 관객을 고려해 최대한 크고 길게 동작을 표현한다. 그래서 손 끝 하나 발 끝 하나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고 한다. 동작을 할 때에 몸을 바로 세우는 것, 다리를 똑바로 펴고 드는 것, 발을 제대로 구부렸다가 펴는 것, 팔의 선을 길게 사용하는 것, 이외에도 수많은 것들이 합쳐져야 발레 동작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 그 모든 기본 동작들이 바 워크에서 제대로 잡혀야, 바를 치우고 몸으로 동작을 했을 때 제대로 구현이 된다.
발레를 배워온 시간이 지나면서 내 동작에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동작을 흉내 내는 단계를 넘어서니까 다른 분들이 어떤 식으로 동작을 하는 지 눈에 들어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와 그분들의 동작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게 되었다. 같은 동작을 해도 오래 하신 분들은 왜 더 발레리나 같고 여유가 넘치는지, 선생님 같은 우아한 느낌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해졌다. 다른 분들을 여러 번 관찰해보고, 선생님의 말을 들어본 결과, 그 비밀은 동작을 하는 순간의 몸의 상태, 시선, 힘의 균형에 있었다. 동작을 할 때 더 길게 보이려면 골반을 바로 세우고 상체는 더 위로, 하체는 더 아래로 길게 뽑아내야(!) 하고, 손가락 발가락도 최대한 길게 연출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발레는 그 일면을 알면 알수록 어렵다. 그렇지만 그래서 더 잘하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