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15번 떨어지고 16번 만에 합격한 이유

5일 차 :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나예스

똑같은 자격증 시험을 열여섯 번이나 응시한 적이 있었다. 열아홉 살 때 조리학원에 다니면서 시작한 '양식조리기능사'였다. 당시 60여 가지의 메뉴 중에 2가지 출제되었던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도 열심히 준비할 것 같았는데 네 번만에 붙었다. 가짓수가 절반 정도인 양식조리기능사는 두 번만에 합격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시험장에만 가면 너무 긴장되어 외웠던 조리 순서를 다 잊어버렸던 것이다. 대학을 호텔조리과로 가고 나서도 MT도 안 가며 응시했던 나의 요령 없는 시험기는 계속되었다.
어느덧 일곱 번째로 불합격 통보를 받은 다음, 이상하게도 희망찬 기분이었다. 왜냐면 칠전팔기란 말을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지급받은 재료가 문제였거나, 자리의 가스레인지가 불량했거나 시간 초과로 미완성 실격이거나, 칼에 손을 베였거나.
독자님은 알 것이다. 안 되는 이유는 천만 가지가 있지만 잘 되는 이유는 한두 가지라는 사실을. 나도 탈락할 수밖에 없던 갖은 이유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번엔 어쩌다 떨어진 거야?"와 같은 질문을 받으면 막힘없이 말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세월을 까먹으며 매번 감당키 힘든 무게의 조리도구들을 챙겨 대중교통 1시간 반 거리의 시험장으로 갔다.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라지 않은 적은 없었다. 2만 얼마의 응시료를 기부하러 갔던 그때마다 '이번에 떨어지면 나는 사람도 아니'라고 다짐하며 아까운 증명사진을 수험표에 붙였다. 계속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15회 차 불합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랑은 맞지 않는 것 같은 애증의 양식조리기능사 시험을 계속 쳤던 것일까? 그건 아빠의 묵묵한 관심 때문이었다. 아빠가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지원해 줬던 조리학원비는 나에게 이미 날린 돈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잊고 살다 보면 한 번씩 조심스레 한마디를 투척해 주시는 거였다.
"요새는 양식시험 준비 안 하고 있나?"
"네...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요..."
" ......"
아빠는 그 짧은 질문 뒤 대화를 마치셨다. 아예 조리사 직업 자체도 나랑 안 맞는 것 같아서 사무직으로 일 하고 있는데도 오랜만의 통화에서 비난도 응원도 없이 그냥 툭,
"그러면, 인제 양식은 안 따나?"
"아빠, 열다섯 번이나 쳐 봤는데요. 할 만큼 했는데, 이제 그 자격증 저한테는 필요 없는 것 같아요."
"......."
잊을만하면 던져주시는 질문이었다. 세월은 10년도 지났다. 경리 회계 업무를 하기 위해 전산회계 시험에 한 번만에 합격하고도 개운치 못한 면이 있었다. 이제는 정말 나의 진로와 상관없는 그 시험을 합격하지 않으면, 그 쉬운 양식조리기능사도 못 따고 핑계만 대는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손에 익히지 않고 머리로만 외우려 하니 안 되었던 것을. 다 아는 재료명이라 만드는 법을 다 안다고 생각했고, 접수하고 나서야 집에서 만들어보는 정도였다. 19살 이후 12년 만에 퇴근길에 조리학원에 등록했다. 30여 가지 조리를 한 바퀴 돌고 나니 내가 뭘 잘못하고 있었는지 그 세월의 공간을 뛰어넘어서 단번에 인지되었다. 열여섯 번째, 하지만 다시 배우고 나서 응시한 첫 번째 시험에 능숙하게 합격했다. 떨지도 않았고, 뒷정리를 해가면서 시간을 남기고 나왔다.
아빠에게 합격 소식을 알렸을 때 얼마나 뿌듯했는지. 아빠 덕에 열여섯 번이나 도전할 수 있었다고. 아빠 덕에 합격했다고. 하지만 전화기 너머의 아빠는 담담한 "축하한다" 한마디뿐이었다. 엄청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좀 싱겁긴 했다.
어느 조리사 꿈나무 대신 합격한 그 자격증은 나의 직무와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내 인생에 도움 될 것 같지 않은 하나의 성취가 나에게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도 크다. 무슨 일이든 맘먹고 끝까지 해볼 수 있게 하는 자신감의 원천이 되었다. '결국 될 거니까' 하는 믿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