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차 : 나이
<나의 아저씨> 아이유와 고 이선균 주연의 2018년 드라마였다. 살다가 문득 한 장면이 생각날 때가 있다. 지독하게 힘든 20대를 보내는 아이유(이지안 역)가 40대 후계동 어른들을 부러워 한 장면.
"전 빨리 그 나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인생이 덜 힘들 거잖아요."
그 대사를 듣는 순간, 나의 20대 기억이 자동 소환되었다. 생물학적, 사회적 어른이 되었을 때 나의 인생이 완성된 줄 알았다. 장밋빛 미래를 전혀 그리지 못했다. 인생을 망친 것 같았고, 절망스러웠다. 그때 나는 왜 '이지안'과 같은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이제 40대가 되었다. 20대 초반의 나는 미처 부러워하지 못했지만, 나이를 곱절 먹은 인생이 제법 살 만하다. 여전히 힘든 일이 생기지만 그때만큼 힘들지 않다. 즐겁고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겼다. 다른 말로 연륜, 경험에서 나오는 여유가 생겼다.
나이가 무슨 뜻일까? '낳다'의 '낳'에 조사 '이'가 붙은 나이는, 낳아진 지 얼마나 되었나 가늠하는 기준이다. 나이 '든다', 이 말은 나이가 나에게 들어오는 의미이고, 나이 '먹다'라는 말은 나이를 들여보내는 주체적인 의미의 말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둘 다 어감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이가 드는 것은 쓸쓸한 퇴색의 느낌이고, 나이를 먹는 것은 무언가를 먹어 없애는 듯한 상실의 기분이 든다. 나잇값이라는 말은 어떤가? 나이의 값. 나잇값을 하라는 말은 속이 덜 익은 맛이 난다. 나이를 가치 있게 하려면 어떻게 받아들이는 게 좋을까?
몇 달 전, 대학가 2층에 있는 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후 문 열고 나오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내 발 앞으로 둘둘 말린 새 달력 하나가 툭 떨어진 것이다. 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래를 보니 어떤 할머니가 낡은 계단 난간을 양손으로 잡고 힘겹게 올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은행 달력을 얻어 와서 반층 위로 있는 힘껏 던져 올린 후 한 발 한 발 걸어 올라오는 모습이었다. 걷기 힘든 할머니를 위해 상가건물 5층이라는 할머니 댁까지 달력을 올려다 드리고 내려왔다. 그리고 처음 본 할머니에게 들은 말이었다.
"아이고, 정말 고마워요. 절대 늙지 말아요."
늙으면 서럽다는 다른 말, "늙지 말아요." 어떻게 안 늙는단 말인가. 어떻게 하면 서럽게 늙지 않을까. 나이의 가치, 그러니까 공짜로 주어진 삶에 대한 보답을 어떻게 하면 값어치를 잘했다고 평가될 수 있을까. 나잇값을 어떻게 계산하는 것이 좋을까? 그렇다면 나는 나이를 벌어야겠다. 나이를 다 먹어치우지 않고, 많이 벌어서 나이가 부족한 사람에게 내 나잇값을 나누어 주어야지. 나이 드는 것은 좋은 거구나, 할만한 무언가를 뽐내고 부러움을 사야겠다.
어린 시절 내가 갖지 못했던 것은 더 넓고 깊은 '삶의 경험'이었다. 후세대에게 잘 숙성된 나의 경험자산과 지혜를 이야기로 나누어줘서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보탬이 될 수 있도록 해야지. 나도 그때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이렇게 무사히 '나이 부자'가 되지 않았느냐고. 너도 그럴 거라고. 그러면 나도 나이 들어서 서러운 할머니가 아니라, 화롯가 앞에서 손주들에게 옛날 이야기 해주는 인기쟁이 할머니처럼 되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