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차 : 겨울
예전부터 추위가 뼈에 사무칠 때마다 이런 엉뚱한 생각을 말하고 다녔다.
"날씨로 인해 죽는 날이 온다면 얼어 죽는 것보다는 햇볕에 타 죽는 게 낫겠어!"
물론 더위로 살과 두피가 따가울 때마다 지난 겨울의 생각을 되짚어보면 추위와 더위의 무게를 재 보기 힘들어지곤 했지만. 가장 더운 날 '대프리카'라 불리는 대구에 가게 되었을 때도 생각해 봤다.
'음, 더워 죽겠지만 얼어 죽는 것보다는 낫군.'
추운 날마다 수족냉증을 달고 살았던 나는, 위도상 아래쪽인 대구에서 살다가 서울로 상경했을 때 그 살을 에는 추위에 기겁을 했었다. 상의를 두 겹 이상 껴 입고, 넥워머를 단단히 두르고 외투에 딸린 모자를 써도 집에 오면 청바지를 뚫고 들어온 칼바람에 앞쪽 허벅지가 빨간 두드러기처럼 텄었다. 손등은 트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고운 손이 아니라 막일을 잘하게 생긴 손이 되어버린 것은 조금 슬픈 일이다. 두꺼운 손등 피부는 어릴 적 일곱 살에서 열 살 사이에 나를 통과한 겨울이 만들어 준 갑옷이다.
아랫지방이라 해서 무조건 수도권보다 따뜻한 겨울을 나는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은 경북 시골에서 살았는데, 사진 속 풍경은 CG효과로 보인다. 마당에 쌓인 눈을 치워 길을 만드니, 길 가로 눈 무덤이 생겼다. 눈 만지고, 고드름 만지고, 얼음썰매 타다 보면 손이 꽁꽁 얼았다. 손등이 터서 갈라지고 피딱지가 앉았던 나와 남동생. 한겨울에도 방학이 아니라면 4km, 아이들 걸음으로 1시간 30분 이상을 걸어가야 등교를 할 수 있었으니 장갑을 벗은 손이나 얼굴이 빨간 채로 등교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다.
손등이 너무 터서 아플 때도 손이 얼 때까지 놀고 집에 들어왔다. 아빠가 욕실에서 우리 이름을 불렀다. 대야에 받아 놓은 물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여, 손 담가라."
"예? 김 나는데요. 너무 뜨거울 긴데요."
"뿔리야 뻣겨진다."
손등을 불려야 벗겨진다고. 화상을 입는 건 아닐까, 대야에 빨갛고 차가운 4개의 손이 들어갔다.
"앗 뜨거워! 디었어요."
"다시 넣어 봐라. 첨에만 그렇다."
'으윽' 소리를 내면서 넣은 손은 차가운데 뜨겁고, 따가운데 노곤해지며 점차 참을만해졌다. 잠시 후 물 위로 손등에서 탈락한 작은 땟가루가 떠다녔다. 열기가 다 식을 때까지 쪼그리고 앉아 있으니 아빠가 네모난 초록색 때밀이를 손에 끼고 때를 벗겨 주었다. 살살살 벗겨도 아팠지만, 따뜻한 물 덕분에 통증이 덜해지는 것도 같았다. 거칠거칠한 손등이 보들보들, 손바닥은 쪼글쪼글했다. 손등에 바셀린 로션을 듬뿍 바르고 자는 것을 이틀 반복하니 손등의 튼 상처자국은 없어졌다.
"보자. 다 낫았구마는."
아빠는 한 마디를 남기고 홀연히 돼지 사료를 주러 가셨다. 참 무뚝뚝했다. 자식들에게 별 관심 없는 것 같이 보였다. 아빠랑 눈을 맞추고 이야기 한 기억도 별로 없다. 아빠는 늘 묵묵함으로 일관하다 어느 날 도저히 손 쓸 수 없을 것처럼 보일 때 나타나서 생활의 지혜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뿔리야 뻣겨진다'와 같은 약간의 원리를 곁들이면서.
나에게 '겨울'은 손등이고, 아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