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차: 인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사람들은 '인연'이라는 말을 꺼낼 때 함부로 둘 사이의 관계를 운명이나 필연인 것처럼 정해버린다.
* 인연(因緣) : 운명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맺어진 관계.
원인에 얽매이는 의미를 가진 인할 '인(因)'자에다가, 돼지가 달아나지 않게 실로 이어주는 어원을 가진 인연 '연(緣)'이었다. 이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기 전까지는 인할 '인(因)' 자가 아니라 사람 '인(人)'자인 줄 알았다. 그만큼 사람들은 사물이나 다른 것보다 인간의 관계를 말할 때 흔히 쓰고 있었다.
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은 가족이었다. 부인할 수 없는 운명이다. 좋든 싫든 태어나서 미성년을 보내는 이십여 년동안 가정환경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해져 있었다. 때로는 너무 힘들고 지긋지긋해서 해방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반면 가정 밖에서는 결이 맞는 친구들이 아니면 멀리 할 수 있는 선택이 가능했다. 삶의 각 시절마다 내 곁에 있어 준 사람들과 좋은 느낌으로 관계를 맺었을 때는 인연이라 여겼다. 반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나쁜 기분을 안겨다 주는 경우도 있었다. 이 때는 절대 인연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었다. 빨리 스치고 지나가야 할 악연으로 여겼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지."
귀에 박히도록 들어왔고, 아이가 어릴 때 내가 해 주기도 했던 말을 지금은 하지 않고 있다. 모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연락처도 모르는 사람끼리 오픈 채팅으로 목적에 맞는 커뮤니티를 형성했다가 인사도 없이 휙 나가버리는 게 자연스러워진 시대이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어떤 오프라인 독서모임에서는 한 달에 두 번씩 모임으로 대면한다. 만날 때마다 세 시간씩 독서에 대한 유대감을 공유하는 꽤 친밀한 사이이지만, 서로 연락처를 묻지 않는다. 독서모임이 아니라면 따로 만나서 함께 식사할 여유도 될 것 같지 않았고, 개인적인 새로운 친구를 만들기도 좀 피곤하기 때문이다. 다만 함께 만나는 동안 서로를 환대하며 좋은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좋은 말로 서로를 응원해 준다. 서로 연락처도 모르다가 누구 하나 오픈채팅을 나가게 된다면 남아있는 쪽은 괜스레 서운해질 것이다. 함께한 시간과 공동의 추억이 뭉텅 떨어져 나가는 느낌일 것이다. 같은 목적 또는 목표로 만난 관계는 목적을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을 때, 또는 그 모임의 분위기가 맞지 않으면 관계가 일단락된다. 그럴 때 우리는 꽤 쿨하게 잘 보내 준다. 잘 보내주어야 서로 부담되지 않고 다시 만나기도 편해진다는 걸 알기에. 애초에 그러려고 오픈채팅의 카카오프렌즈 얼굴을 하고 서로 소통했으니.
그러는 의미에서 나에게 '인연'은 가족이지,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재정의 해본다. 내가 선택한 배우자와, '인연'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아이에게 내가 더 잘해야지. 가족이라는, 선택할 수 없는 인연, 무작정 끊어낼 수도, 탈퇴할 수도 없는 가족 구성원에게 서로가 더 좋은 인연이 될 수 있게 좋은 말투, 응원을 하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 오늘의 내 언행을 되돌아보니 반성이 된다. 왜 남한테 만큼 잘하지 못한 걸까. 변해야지. 우리 집이라는 오픈채팅을 이끄는 모임장이다 생각하고 모임원들에게 한 번 더 따뜻한 말로 응원해주고 배려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