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차 : 이름
어떤 역술인이 '이름 풀이'를 해준다고 했을 때는 참으로 신중하게 승낙해야 한다. 풀이를 듣는 순간, 기존 이름에 정이 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장담하건대, 개명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이름 때문인가, 이름을 바꾸면 운명이 조금이라도 바뀌려나, 하고 생각해 보게 될 거다.
나도 아이가 태어난 지 며칠 안되었을 때쯤, 남편이 아이에게 생각해 둔 이름이 있었다. 나는 그래도 평생 갈 이름인데, 이름 짓는 곳에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았고, 남편은 멋지고 부르기 좋은 이름이면 좋겠다고 해서 의견이 나뉘었다. 마침 지인에게 이름풀이를 잘한다는 분을 소개받았다. 남편이 아이에게 붙여주려는 이름을 듣더니 단박에 탄식했다. 그 이름은 부모 사이를 가르는 이름이라 했다. 가슴이 철렁했다. 이제 단란한 세 가족이 되었는데 아이가 부모를 멀어지게 한다니. 역시 이름 전문가에게 묻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떻게 지어야 건강해지고, 가정이 행복해질까요?"
"저는 풀이만 하는 사람이고, 저희 연구소에 이름을 지으시는 분들이 상의해서 이름을 지어 드릴게요."
내친김에 내 이름은 괜찮은지도 너무 궁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내 이름풀이는 돈을 계속 벌면 크게 새어나가고, 열심히 살려고 해도 자꾸 큰돈이 나가는 데다 건강을 해치는 이름이라 했다. 심지어 큰 병에 걸릴 수도 있는 이름인 데다, 나 역시 부모 사이를 가르는 이름이라 했다. 평생 부모님 사이가 좋지 못한 걸 보다가, 이혼을 하신 지 얼마 안 되신 상태였기에 갑자기 팔랑귀가 또 쫑긋 했다. 남편의 이름은 어떨까? 가정에 발을 들이기 어려워 자꾸 밖으로만 나도는 이름이라 했다. 유순해 보이지만 자존심이 굉장히 세서 어떤 이의 말도 귀담아듣지 않는 이름이라 했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다 자존심이 셀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남편이 친구들이나 직장동료들과의 관계에 너무 치중해서 걱정했던 차였기에, 또 나는 솔깃했다. 다만 나는 이름을 아예 개명을 해야만 하고, 남편은 이름을 그대로 둔 채 '신사임당', '아산', '도마'처럼 '호'를 지어 불러주면 가정적인 남편이 될 거라 했다.
남편은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분을 배웅한 후 바로 나에게 말했다. "그러면 이름 짓는 사람이 '지금 이름이 좋습니다', 하겠어? 이름을 팔아야 하는데?" 남편의 말은 일리가 있었지만, 그 사람이 이름을 팔든, 사기를 치든 더 이상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름을 바꾸지 않은 채 찝찝한 기분을 뒤로하고 약 2년 뒤 나는 남편과 결별을 결심했었다. 남편이 나 몰래 각종 대출을 받아 주식을 하다가 생긴 빚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 커져서 이제야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은 아니었다. 각서도 두 번 썼었고, 이제는 안 하겠지, 생각하다가 이번엔 타격이 너무 컸다. 내가 모아보지도, 만져본 적도 없는 돈. 믿고 살기 어려울 때, 2년 전의 그 이름 풀이가 생각났다.
나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개명을 단행했다.
"더 이상 이 이름으로 나는 못 살겠어. 힘들 때마다 바뀌지 않는 팔자 탓, 이름 탓, 운명 탓 하고 싶지가 않아."
이름 풀이를 해주신 분은 총 세 건의 매출을 일으킨 셈이다. 아이의 이름 작명, 내 이름 개명, 남편의 호. 평생 불렸던 이름이기 때문에, 이제부터 개명한 이름을 한동안 계속 불러줘야 역행하는 기운이 사라진다고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생각보다 이름 불리는 일이 없다며, 어학기에 이름 부른 것을 녹음해서 집에 약하게 상시로 틀어놓으라 했다.
"예? 어학기요?"
학교 다닐 때도 안 쓴 어학기를, 고민 끝에 이만 원에 함께 구매해서 오글거리는 셀프 녹음을 했다.
"나예, 나예, 나예......."
나는 세 번만 불러 녹음했지만, 24시간 자동재생되며 나의 새 이름 '나예'는 한쪽 방구석에서 조용히 울려 퍼졌다.
일주일 뒤, 집에 손님들이 왔다. 거실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손님이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아까부터 무슨 소리가 들리는 거 같은데. 잘 들어봐?나만 들리는 거 아니지?"
나는 어학기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었다가 그 말을 듣고 박장대소했다.
"아... 이거요?"
한쪽 방문을 여니 갑자기 커지는 어학기의 녹음소리.
"나예, 나예, 나예....... 나예, 나예, 나예......."
손님이 기괴하다는 표정으로 '저게 뭐냐'라고 물었다. 나는 사연을 이야기하며, 이제부터는 십 년 동안 불러주던 그 이름 말고 '나예'라고 불러달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당신의 친구도 이제 새로운 호가 생겼으니, 친구의 가정의 평화를 위해 호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아니, 나는 그전 이름이 더 나은 것 같은데? 십 년 동안 부르던 이름이 입에 붙었는데, 어떻게 이 이름을 부르냐."
거절과 부탁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그러다 타인이 나의 새로운 이름을 신경 써서 낯설어 하면서도 입에 굴려보고, 내 이름을 불러 줄 때마다 나는 감사를 표했다.
"너어어어무 감사해요, 덕분에 가정이 평화롭고 건강해질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섭섭해하던 나의 오랜 친구들과 남편의 오랜 친구들도 서서히 적응하기 시작했다.
개명한 지 칠 년이 지났다. 그래서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나는 이전 생활보다 조금 더 부유해졌다. 이름을 바꾸고부터 더 긍정적인 마음으로 열심히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돈 주고 이름씩이나 바꿨는데 그전보다 못 살면 안 돼."
30년 된, 녹물 나오는 빌라 전셋집에서 이름을 바꾼 뒤 청약에 당첨되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 막바지 커트라인으로 분양받은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독서하는 사람이 되었고, 글도 쓴다. 건강은 아쉽게도 재작년에 갑상선암 수술을 했다. 이름으로 병을 막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다. 결국은 인생을 더 잘 살고 싶은 의지가 중요하다. 신앙이나 사주와 상관없이 어느 순간 내 기존이름으로 더 이상 불리고 싶지 않았고, 새 이름으로 새 출발 하고 싶었다.
다만, 호기심과 심심풀이로 이름풀이를 받아보지는 않길 바란다. 기존 이름이 재앙적이거나 최소한 마음에 안 들도록 풀이해 줄지도 모른다. 동생들도 한 번씩 이름에 대해 생각해 보는 모양이다. "개명할까?"
그러면 나는 조언해 준다.
"번거롭고 큰 결단이 필요하지만, 난 찬성. 기분이 좋아져. 살면서 '기분 탓'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
기분 탓. 그건 '삶의 태도'였다. 내 힘으로 도저히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 기분이 안 난다면, 반복되는 절망을 겪고 내 운명을 계속 탓하게만 된다면, 평생 적응하고 살았던 것 중 하나의 환경을 바꾸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었다. 아프면 수술해서 고치고, 외모가 마음에 안 들면 성형도 하듯, 개명도 어쩌면 삶의 태도에 이상이 생겼을 때 수술적 치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름은 들었을 때 기뻐야 한다. 개명을 했다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적극적으로 축하해주고 싶다. 우리 다시 새 기분으로 잘 살아보자고 응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