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짝사랑에 '책임' 져 주었던 어른들

9일 차 : 어른

by 나예스

십 년 전쯤에 '마흔'이라는 키워드를 접했을 때, '그때쯤엔'으로 시작하는 막연한 완성형 인생을 꿈꿨다. 그때쯤이면 더 이상 인생에 새로움도, 발전도 없는 어른으로써, 그렇게 늙어갈 나이라 어렴풋이 생각했기에 어떻게든 그때까지 무언가를 만들어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마흔이 이제 지났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행복을 훗날로 자꾸만 미루고 열심히 불태운 것 같은데, 무언가를 만들어두지 못한 채 어른이 되었다.


최근 몇 년 새 서점가에 '어른'이라는 키워드가 부쩍 눈에 띈다. 어른의 행복이나 즐거움, 어휘력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얼레벌레 어른이라는 위치가 되어버린 나의 모습, 나의 고착된 성격, 말투에 아쉬움이 너무 많다. 아이의 말 한마디에 쉽게 휘둘리거나 마음 상하는 모습을 보고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보고 묻는다.

"엄마?... 삐졌어요?"

"어른한테 그렇게 얘기하는 거 아니야."

아, 정말 내가 한심해진다. 이렇게 짜증 부리고 아이한테 삐졌냐는 말이나 듣는 모습은 내가 원한 어른의 모습이 아닌데. 삐졌냐는 말을 내가 되돌려 받으니 기분이 나빴다. 아이가 기분 나쁜 표정이었을 때, 화가 많이 나느냐고 물었어야 했다. 삐졌냐고 물으면 안 되는 거였다는 걸 깨닫는다. 내 책상 밑 쓰레기통에서 젤리 봉지 하나를 발견한 아이가 봉지를 들고 온다. 존댓말이긴 한데 묘하게 기분 나쁘다.

"치사하게 혼자만 맛있는 거 먹었어요?"물어보길래,

"내 용돈으로 내 과자도 못 사 먹냐?" 그랬다.

어른의 권력만 행사하려 했지, 존경스러운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나? 좀 더 어린 사람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법을 깨우쳐 주고, 본받을 만한 언행과 품행 방정한 모습, 감정을 컨트롤하고, 한없이 자애로운, 그랬다.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던 그 시절, 교회의 H선생님을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은 종교가 없지만, 학교공부보다 성경공부를 더 열심히 하던 중학생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열 살도 넘게 차이나는, 교회 선생님을 좋아했다. 만인에게 다정다감했으나, 특히 나에게 더 그렇다고 믿었을 때, 나는 그 선생님에게 반하고 말았다. 내가 교회에서 성경구절을 중심으로 점점 이론에 심취하고 있을 때, 그 주일의 목사님 설교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묻거나, 구약성서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신약성서에는 저렇게 쓰여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같은 질문을 내게 했었다. 성경이 진리이고 답이라고 생각했는데, 서로 다른 답을 적어 한 권으로 합본한 성경에 대해 감히 의의를 제기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신앙심이 깊어 보이는 모습을 보이셨기에 나는 한 가지 답만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룸메이트가 서울대 출신이라 서울말을 옮았다며, 사투리 대신 표준어를 쓰셨다.


하루는 교회 행사가 끝나고 날이 어두워져서 우리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하셨다. 어둑한 골목을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종교생활과 관련 없는 묘한 질문을 내게 하기 시작하셨다.

"혹시 너는 선생님을 좋아하니?"

고백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선생님께 고백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고백을 유도하는 질문이라니. 무려 열한 살 차이이고 나는 미성년자. 선생님과 잘해보려는 마음 없이 그냥 순수하게 좋아만 하는 거니까. 다 티 나는 중학생일 뿐이니까.

"네."

"흠.. 그럼 선생님이랑 결혼하는 꿈도 꾸고 그러니?"

어떻게 알았을까. 꿈에 나오기도 했었다.

"네."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유도신문에 의한 고백을 계속 한 글자로 답하며 걸어갔다. 그런데 저번과는 다르게 집 근처에서 더 어두운 골목을 빙글빙글 도는 것이 아닌가. 이제 완전히 집을 지나쳐서 더 어두운 골목으로 선생님의 반 보 앞선 발길을 따라갔다.

"넌 선생님을 믿니?"

"..... 네."

그러다 돌연 가로등 앞에 우뚝 멈춰 서시고는 내 쪽으로 획 돌아다보는 것이 아닌가.

"왜 믿어? 너 왜 이런 어두운 골목길로 가는 데 어디 가는지 묻지도 않아? 남자는 다 늑대야. 선생님도, 장로님도, 목사님도 둘이 있을 때는 믿지 말란 말이야! 뉴스 못 봤어? 겁도 없이!"

그 뒤로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화난 표정으로 집 앞까지 데려다주셨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왜 날 데려다준다고 했을까, 왜 난 대답만 하다가 혼이 나고 있나,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불쾌했다. 그런데 만약 아까 거기서 불미스러운 일을 당했다면 과연 나는 힘으로 이겨 낼 수 있었을까? 없었을 거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로 일주일이 흘러 일요일이 되었다.

"예배 끝나고 영화 보러 갈래?"

"네? 영화요? 오후 예배도 있는데요." '네'라고 대답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괜찮아. 둘이 가는 거 아니니까. 그때 인사시켜 준 머리 긴 선생님 있지? 그 선생님이랑 교제하고 있어. 같이 가자."

"싫어요. 제가 거길 왜 가요?"

데이트하는 곳에 나를 데려간다니, 아무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지만 이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오전 예배가 끝나니 다른 교회 다니는 그 여자친구분이 오셨다. 하지만 난 여자친구분께 설득되었다. 영화표 3장을 예매했다며. 표를 버릴 순 없지 않겠느냐고. 난생처음 가보는 영화관이었다. 나와 함께 보는 영화여서 고르고 골랐을 거다. 12세 이상 관람가의 <캐스트 어웨이>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여자친구분 옆으로 앉으려 했는데, 두 분에게 이끌려서 둘 사이에 앉게 되었다. 이 무슨 정황이지? 엄마 아빠 사이에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이 같은 자리 배치. 영화는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떨어진 남성의 사 년간의 표류기, 주인공의 독백을 담은, 데이트용 영화로는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내용이었다. 나는 영화 시작점에서는 두 대륙 사이에 낀 무인도가 된 기분이었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왔을 때는 기분이 좀 더 나았다.

나의 감정에 대해 두 분이서 충분히 상의했을 것이다. 나를 배려해 준 두 분이 고마웠다. 그 후로도 셋이 몇 번 만났고, 나에게 여자친구분은 옷도 물려주고 선물도 종종 주었다. 세상물정 모르고 예민한 감수성만 지닌 사춘기 소녀의 마음이 다치지 않게, 서서히 마음을 정리시켜 주신 것이다. 그 후로 두 분의 결혼을 마음으로 축하해 줄 수 있었다.


내가 바랐던 어른이란, 어린 사람에게 잔소리하는 사람이 아닌,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게 납득이 되는 행동으로 보여 주고 깨닫게 해 줄 수 있는 그때의 선생님 내외의 모습이었다. 내가 선생님을 좋아하게 된 것도 일정 부분은 선생님의 책임도 있었다. 과도하게 다정하지 말았어야지. 그러나, 선생님은 여자친구분과 함께 책임감 있는 어른의 모습으로 기억된다. 많은 세월이 지났다. 그때 선생님은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27세였고, 여자친구분도 이십 대 초반이었는데 16세의 나에겐 큰 어른이었다. 두 분이 잘 살고 계셨으면 좋겠다. 내가 이렇게 고마워하고 있는지 두 분은 절대 모를 거다. 어른으로 인정받으려면, 어른에게 존경심을 깨달을 수 있는 총명한 '어린 사람'도 필요하다. 그래, 난 총명했어. 어서 어른이 될 재료를 모으고 싶다. 어른스럽고 싶다. 어른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누가 날 어른으로 만들어 주지? 아이를 좀더 총명하게 키우고 싶은 욕심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