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부터 시작하는,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위해

10일 차 :여행

by 나예스

여행은 왜 하는 걸까? 김영하 산문집 《여행의 이유》에서는 여행기를 이렇게 정의했다.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면서 책에서 김영하 작가는 여행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여행을 가장 총체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이는 출연자인 여행 당사자가 아니라, 자기 집 거실 소파에 누워 있는 시청자들이라고 했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편집자의 시선으로 여행을 보면서 여행 당사자들이 놓친 것까지 큰 시야로 볼 수 있는 자가 승자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여행'이라는 이름의 고생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여행 프로그램을 보며 간접경험과 대리만족으로 그치지 않았다.
'나도 저런 데 가서, 저런 거 하고 싶다.'
체험비를 들여 모험을 떠나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고 무사히 안전지대로 돌아와 나의 강렬한 추억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경험해보고 싶다. 그러니 여행은 결국 내가 해야 의미 있는것이며,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며 꽤 비싸게 사서 고생하는 과정이다.

놀 줄 모르는 나는 참으로 수동적인 여행자다. 여행을 누가 가자고 제안하기 전까지 안 가는 편이다. 만사에 즉흥적인 태도에 임하는 나에게는 짜임새 있는 일정을 계획하는 행위가 영 버겁다. 그래서 프로 여행러이자 파워 J성향인 여동생이 "언니, 제주도 가자. 내가 렌트해서 운전할게. 조카랑 언니는 몸만 가자. 지금 안 가면 못 간다." 라며 이번이 마지막 기회임을 강조하면 즉흥적인 절박감에 "콜!"을 외친다.
'그래, 차도 없고 운전도 못 하는 우리 가족이 지금 아니면 언제 제주도 여행을 가겠어?'
엄마의 고향인 제주도에서 태어나 3살까지 제주인이었던 나는 마흔이 되어서야 친인척 결혼 등의 행사가 아닌 '여행으로서의 제주'를 경험했다. 여동생이 키우는 세 살 백이 몰티즈가 동생과 함께 제주 여행을 간 건 10회가 넘는데, 사진을 볼 때마다 강아지 팔자가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나는 일상 탈출에 큰 감흥이 없는데, 가기 전날밤까지도 여행짐 싸기를 미루고 미루다가 심야가 되어서야 캐리어를 펼친다. 심지어 출발당일 아침에 짐을 싼 적도 있다. 남편과 아들보고 2박 3일 치 짐을 꾸리라고 하면 각자 옷 한 벌과 속옷 한벌, 양말 2개를 챙겨 둔다.
"칫솔은? 젖었을 때 입을 여벌옷은? 상비약은? 세면도구는?"
나는 그들이 놓친, 또는 필요 없다고 여길, 수많은 짐들을 캐리어가 안 닫힐 때까지 추가로 꾸려 넣는다. 그렇게 귀찮아하면서 가까운 사람들이 기획해 준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누구보다 즐거워한다.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나 대신 손품을 팔아 검증된 곳으로 데려다주면 감동하며 즐긴다. 비행기 티켓도 발권할 줄 모르는 나는 작년쯤에 여동생 따라 제주와 일본 오사카를 가 봤는데 너무 즐거웠다. 특히 우리 집 식구는 맛있는 음식을 원 없이 먹은 일본여행이 참 좋았다.

생각해 보면 여행에 아쉬움이 많이 남을 때도 있었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요소가 너무 많을 때가 그렇다. 너무 피곤한데 여러 식구가 함께 가서, 술자리가 새벽 늦게까지 이어질 때 소음으로 잠을 자지 못하면 그렇게 힘들었다. 여행은 충분히 먹고, 충분히 자야 충분히 아름다운 풍경이 보였다.

작년 책울림 독서모임에서 '여행' 주제의 자유책으로 모여 독후활동을 한 적이 있다. 여행을 위해 태어나신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행에 진심이신 분들이 많았다. 그 달의 진행자 '하로와로미'님의 기획으로 '나에게 여행이란 ( )이다'를 적어 즉석 책갈피를 만들었다. 결국 여행은 버즈의 노래 제목처럼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인데 내가 없는 여행이 많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무 정보도 모른 채 준비도 기대도 없이 코스대로 따라만 가는 것은 여행보다 박람회에 가까웠다. 어느 정도로 심했냐면, 괌여행을 가는데 괌이 미국령이라길래 미국 가는 거냐고 물으며 공항에서 처음 괌 위치를 검색했을 정도다. 추억을 쌓기 위해 큰돈 들여 가는 건데 다른 사람이 신경 쓰고 시간 들여 디자인 해준대로만 갔던 나의 수동 여행에 대해서도 반성했다.
올해 여행을 갈 때의 포부가 이전과 다르다. 우리가 갈 곳에 대해 최소한 검색도 해보고 가보고 싶은 장소도 골라볼 생각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장롱인 채 갱신이 다가오는 운전면허도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만들어서 운전 연수도 받아볼 생각이다. 직접 운전해서 남해 쪽으로 여행을 가보는 게 책 쓰기 다음의 목표다. 평생 대중교통의 범위 내에서만 한정되었던 내 세계를 확장해 볼 것이다. 직접 운전을 하는 '적극적인 여행'을 해볼 마음을 먹으니 좀 겁이 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여행이 나를 위한 시간이라면, 적극적으로 나를 챙겨서 후회되지 않게 계획여행을 해 보아야겠다.

책울림 독서모임 독후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