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삶의 추월차선

14일 차 : 속도

by 나예스

독서를 시작한 초기에 《부의 추월차선》이라는 책을 읽고 조급해졌었다. 제목이 제시한 것처럼 빠르게 추월해서 젊은 부자가 되어 부유함을 누릴 건지, 서행차선으로 가다가 휠체어 탄 백만장자가 될 건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당연히 나는 빨리 성공하고 돈 많이 벌고 싶으니까 그런 책이 자극제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성공하는 사람은 소수이고 나의 의지와 내공은 그 정도까진 안 되었던 것이다. 책을 많이 읽어야 성공한다는데, 책 읽는 속도는 왜 이렇게 더딘지, 좋다는 추천 책들은 왜 이렇게 많은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저 좋은 차가 가는 길을 따라가기는 하겠는데, 내 목표를 태운 차는 연비가 나빴고, 나는 초보운전이었다. 비슷하게 시작하는 사람들을 추월하기보다는 추월당하는 패배감을 더 많이 느낄 수밖에 없었다. 현실이란 고라니를 들이받아 갓길에 차를 세웠더니 나의 부를 향한 여정은 더욱 멀어져 갔다. 단기간 시간을 갈아 넣어 빠른 성공을 하고 싶어 했던 나는 속도전에 완전히 지쳐버렸다.

요즘 책 모임을 하다 보면 자기 계발서를 안 읽는다고 하는 분 들이 꽤 많다. 독서를 입문할 때는 읽었지만, 그 책들의 결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는 그런 "지금 해라!", "된다!" 강요하는 듯한 문체에 질렸을 수도 있고, 살면서 주관이 더 생기고, 더 이상 휘둘리지 않는 강단으로 비판적인 독서를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누군가를 바꾸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절박함을 가지고 바꾸려 마음먹은 자신만이 자신을 바꿀 수 있었다.

독서 초보운전 시절에는 '성공해서 돈 많이 벌었다더라' 하는 사람들이 쓴 자기 계발서만 읽었다. 과연 그런 책을 읽으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마음먹은 대로 다 될 것 같은 기대감에 차올랐다. 소설과 에세이는 나의 발전에 도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소설이라는 가상 세계에다가 현실의 내 아까운 시간을 투입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고, 에세이라는 공식적인 일기는 너무 가벼워서 나에게 별다른 깨달음을 주지 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독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2년이 다 되어갈 때 한 언니가 나에게 물었다.
"책 많이 읽네. 그럼 이 책도 읽어봤어?"
"나는 소설은 안 읽어."
"책 많이 읽는 친구가 그러는데, 자기 계발서보다는 소설을 읽어야 한대. 그래야 사고가 확장된대."

그 말을 듣고도 1년이 지나서야 드디어 소설을 펴 들기 시작했었다. 자기 계발서에 물리는 시기였다. 이 책과 저 책에서 모두 다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이유는 독자가 한번 말해서는 안 들어먹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며, 그게 진리이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알았다.

"아는데 나도 잘 안 된다고!"

소설은 속도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답도 얘기하지 않았다. 작가의 주장을 강요하지 않았고, 그냥 삶을 보여주었다. 보고, 느끼고, 스스로 판단하고, 인물을 선인과 악인으로 구분하기 힘들도록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 줬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이런 고민을 나뿐만 아니라 이 사람도 했구나. 똑같은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어찌해야 할까. 그렇게 이야기를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는 소설의 효용가치를 알아갔다.

"다른 사람 보지 말고, 나만의 속도로 가자."
그런 말들도 언제부턴가 유행을 탔다. 때로는" 당신 말이 맞다.", "무조건 당신이 옳다.", "지금 잘하고 있다."라는 말이 사람을 바뀌게 한다. 청자나 독자가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에 따라,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자기 계발서도 쓰레기가 될 수 있고, 에세이나 과학책, 때로는 아이에게 읽어주는 그림책이나 만화책도 '자기 계발서'가 될 수 있었다.

요즘은 다시 전형적인 자기 계발 분야의 책도 좋아졌다. 지난달에 다시 읽었던 《퓨처셀프》도 너무 좋았고, 이번 달에 네 번째로 다시 읽은 《원씽》도 너무 좋았다. 이제는 8년 전 독서 초보운전 시절처럼 책의 저자가 빨리 먹으라며 떠먹여 주는 밥을 다 삼키려다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는다. 지금 내게 필요한 말, 현재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책에서 도움 받고 싶은 부분을 취사 선택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모든 책은 자기 계발서였고, 속도도 사방의 차들을 신경 쓸 때가 아니라, 즐길 수 있는 상태일 때에만 빨라질 수 있었다. 또 운전에 지칠 때가 올 거고, 길을 잘못 들거나 우회해야 할 시기가 올 거다. 어디가 아플 때 어떤 약 성분이 잘 듣는지 경험 적으로 아는 것처럼 삶의 도로에서 막힐 때 내게 필요한 처방전이 뭔지 느낌이 오면 그런 책들을 읽으면서 그때의 내게 맞는 속도를 조절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