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상상은 사실, 상상이 아니었다

16일 차 : 상상력

by 나예스

상상력(想像力)은 실체 없는 것의 모양을 생각하는 능력이다. 상상에 힘 '력(力)' 자가 붙는 걸 보면 확실히 상상은 확실히 힘이 드는 일인가 보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물건들과 누리는 혜택들은 과거 어느 누군가의 상상이었다. 편하고 안전해서 상상할 필요를 점점 못 느낀다.


작년에 한동안 내가 '요즘에도 꿈을 꾸는지' 궁금해서 꿈에 집중해 봤다. 왠지 꿈을 기억하고 기록해 두면 상상력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나중에 소설가가 된다면 써먹어 보리라. 대부분 꿈을 흥미진진하게 꾸긴 꿨다. 잠에서 깰 때 순간적으로 '적어야 해!'라고 생각하며 쓰려는 순간 다 잊은 적이 태반이다. 너무 재밌어서 꿈속에서조차도 꿈인 걸 인지하고 대박조짐을 느꼈다.

'이야, 이거 진짜 기발하다. 이거 눈뜨면 바로 써야지!"

평소의 나라면 절대 생각지 못하는 해결책으로 착착 진행되고 있는데, 남편이나 아들의 한마디 부르는 순간 모든 기억이 사라져 버려서 얼마나 아쉬웠던지. 익사이팅한 꿈들은 그렇게 금방 잊히는 반면에, 절대 겪고 싶지 않은 악몽은 종종 생각이 난다. 그게 꿈이라는 걸 수 분이 지나서야 인지할 때도 있었다.


초등학생 아들이 이야기했던 상상의 대부분도 두려움에서 오는 상상이었다. 한 살이라도 더 어렸던 작년에는, 직접적인 두려움의 대상을 곧바로 언급했다. 화장실 가는 거실 복도를 지나가다가, 다른 방 문이 조금 열려 있으면 나를 찾으며 이렇게 말했다.

"잠깐만 이 쪽으로 와 주세요. 저쪽 방에서 귀신이 나올 것 같아요."

"아니, 현관문 잠겨 있어서 이 집에 귀신 못 들어와. 엄마가 옆에 있는데 뭐가 무서워?"


요즘은 겨울 방학이라 낮에 아들 혼자 있는 시간이 좀 더 길어서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엄마, 저 지금 화장실이에요."

"알았어~"

"잠깐만요! 아직이요. 이제 괜찮아요~"


"엄마, 밥 다 먹고 학원 가려고 하는데 엘리베이터가 아직 안 왔어요."

"응, 조심히 다녀와."

"잠깐만요! 엄마? 아직 끊지 마세요!"

다급히 요구하는 식이다. 무섭긴 한데, 그 말을 안 해 보려는, 좀 더 의젓해지려는 노력을 보인다. 왜 이렇게 무서움을 많이 타는지 패턴을 분석해 봤다. 내 생각에 아들이 느끼는 공포의 원인은 "도망칠 수 없는 환경"인 것 같다. 평소에 달리기를 잘하는데, 엘리베이터처럼 갇힌 공간이나 화장실에서 급한 볼 일 중에는 뛰쳐나갈 수 없다.


놀러 간 집에서 귀신 나오는 애니메이션인 <신비아파트>에 노출되고는 한 참을 무서워했다. 그 후로는 유튜브 숏츠 등을 넘겨 보다가, 무섭다면서 자꾸 귀신이나 괴물을 그림 그리기도 했다. 무서우면 괴물 그림부터 좀 그리지 말아 보라 말했는데 아들은 그림으로 피 흘리는 괴물을 그릴 때는 안 무섭다고 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도 어릴 적 이렇게까지 무서워했던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전 무서움증은 TV로 부모님과 함께 <전설의 고향>을 보던 중에 화장실을 갈 수 없을 때였다.

"니들은 이런 거 보지 마라"

더 보고 싶었다.

처녀 귀신이 어두운 숲 속에서 흰 연기와 함께 나타난다. 흰 소복 차림에 흰색 얼굴, 그와 대조되는 충혈된 눈을 하고서. TV 속 공중에 떠 있는 귀신의 등 뒤로 투명하게 반짝이는 피아노줄이 보였다. 연출이란 걸 알면서도 도저히 화장실 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지금처럼 집 안에 있는 화장실이 아니라 커다란 '플래시'를 들고 어두운 마당을 통화하고 끝에서 우회전해서 들어가야 하는 '변소'였다. 같이 가 주던가, '요강'을 달라고 떼를 쓴 기억이 난다. 그때 나도 9살 정도였는데, 귀신이 나오는 영상을 보면 영락없이 평소에 유치하다고 비웃었던 '영구 시리즈' 비디오를 떠올리며 벌벌 떨었다.

"빠알간 휴지를 줄까~~ 파아란 휴지를 줄까~~~"

말로 귀신이 말을 걸어오고, 나는 끊을 수 없는 순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아들도 '상상'한 게 아니라 '기억'한 거였다. 무서운 장면의 영상을 떠올린 것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무서운 것이라도 '보게 될 때'와 '그리고 있을 때'는 천지 차이였다. 보게 되는 것은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상황이고, 그림 그릴 때는 자신의 연필 끝에 '통제력'이 있었다. 나는 아직 귀신을 본 적이 없고, 앞으로 볼 생각도 없다. 40여 년을 살면서 귀신을 보지 않아서 앞으로도 안 나타날 거라는 경험 데이터가 있다. 정보가 많으면 현실적이 되고, 정보가 부족하면 불안한 상상회로가 돌아갔다. 그래서 이제는 화장실에 갈 때도 귀신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걸 확신한다. 대신, 사람을 두려워한다. 낯선 외지에서 화장실에 갈 때는 혹시 치한이 나타나는 건 아닐까 염려한다. 흉흉한 영화나 기사, 뉴스 사례를 접했기 때문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도 이것저것 접해보고 흉내 내 보면서 다른 어떤 것과 섞이면서 말이 되는 하나의 이야기나 형태를 만들어가는 것 같다.

대부분 우리가 상상이라고 생각한 것이 세상에 없던 어떤 것을 이미지화한 게 아니라 어디선가 봤거나 알게 된 것의 조합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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