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17일 차: 질문

by 나예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보험의 광고의 밈이 유행한 적 있다. 1588에 응애응애. 불필요한 질문이나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는, 노년층 유병자를 대상으로 하는 보험은 가입 전 심사 과정이 없다고 했다. 알고 보니 월 보험료가 최대 다섯 배 비싸고, 살아있을 때의 보장은 적어 분쟁 건수가 늘고 있다고 뉴스에서도 경고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입했다가는... "


정보 제공자와 정보 수용자 사이에 생기는 해석 불일치에서 오는 손실은 예상보다 크다. 질문은 그 간격을 줄이는 직접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모두가 느꼈듯이, 궁금증은 듣는 중에 생기고, 흐름을 끊는 질문은 정보 제공자가 절대로 반기지 않는다.

나는 '티키타카'를 하고 싶었는데, 상대방은 '태클'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사회초년생일 때 자주 쓰던 말버릇 하나가 하나 있었다.

"왜요?"

"근데요......, "

나의 "왜요?"로 끝나는 문장과, "근데요"로 시작하는 문장에는 납득이 안 간다는 뜻 내포하고 있었다. 그때 일했던 직장은 제주 향토 음식점이었다. 고등어와 갈치의 조림과 회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캡틴이 서빙 시 유의사항과 메뉴판 안내 멘트 교육을 시켜줬다. 식당 메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갈치조림 >
소 (2~3인) 35,000원
대 (3~4인) 45,000원

"갈치조림 '소'자는 조림냄비에 갈치가 3, 4 토막 나오고, '대' 자는 4, 5 토막이 나와. 알겠지?"

"캡틴님, 근데요. 그럼 손님이 4토막 나온 음식 보고 '이게 '소'자냐, '대'자냐' 물어보면 뭐라고 말해야 돼요?"

한 토막에 돈 만 원이 걸린 문제였다. 내가 손님이라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 모범답안을 꼭 알아내고 싶었다. 경계에 걸친 불합리와 애매함은 늘 나에게 찝찝함을 남겼다.

"사람이 유도리가 있어야지."

직장 선배들은 '여유'를 뜻하는 일어 유도리(ゆとり)를 '융통성'이란 의미로 종종 썼다. 나는 만 원짜리 유도리를 가슴에 품고 열심히 일했다.


어느 날 손님 상을 치우다가 나는 보고야 말았다. 갈치조림 냄비에 갈치 '다섯 토막'을 발라 먹은 흔적이. 손님이 카운터에 챙겨가지 않은 계산서에는 보란 듯이 '갈치조림(소)'라고 적혀 있었다. 나도 보란 듯이 조림 냄비채 들고 캡틴 앞에 뛰어갔다. 이 테이블에선 '소'자를 시켰는데 다섯 토막을 드셨다고. 그날 부로 나는 '질문 금지 처분' 명령과 함께, 캡틴의 미움을 받고 무럭무럭 자랐다. 유도리는 '융통성'이 아니라 '눈치'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질문할 때 서두를 "근데요" 대신, "죄송한데요"로 꺼내라고 아예 가르쳐주던 곳도 생각이 난다. 확실히 내가 상대방에게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죄송해하는 뉘앙스로 말을 걸기 시작하면 좀더 여유있어 보이는 태도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질문은 죄송한 거였다.

어릴 때 나는 궁금했다. 세상 만물의 이치가.
순수한 탐구였다. 머리가 자라났다.
학생일 때 나는 궁금했다. 나만 이해 못 했는지가.
질문은 수업 끝나고, 같이 끝났다. 머리가 아팠다.
사회 초년생일 때 나는 궁금했다. 상사의 의도가.
납득이 안 갔다. 머리가 커졌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나는 궁금 해진다. 퇴근 후 삶이.
눈치도 없는데, 눈치만 보고 있다.

묻기도, 따지기도 어렵다. 머리가 굳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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