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초등) 학교 저학년 무렵이었다. 앞산도 있고 뒷산도 있는 산골은 찬란한 정글이었다. 자연이 주는 무료시식권은 그 계절을 기다리는 재미였다. 늦봄일지 초여름일지, 딱 알맞은 온도에서 이것저것 여린 것들이 피어났다. 길가에 난 뱀딸기는 단맛이 없다. 찔레의 줄기를 껍질 벗겨 씹어 먹으면 식감은 좋았지만 그뿐이었다. 내가 봄을 기다리는 이유, 바로 산딸기였다. 그 따사로운 계절은 나에게 산딸기를 배 터지게 먹여주었다. 빨강보석을 닮은 천연간식이 탐스럽게 열리는 때가 오면 내 손등이며 다리에 자주 생채기가 났다. 산딸기에 손을 뻗다가 비탈길에 넘어진 적도 있고, 가시에 할퀴어지거나 까끌까끌한 딸기 잎사귀나 잡초덩굴에 여린 살이 쓸렸다.
어린 나와 동생은 도보 4km 하굣길이 즐거웠다. 학교에서부터 딱 반인 2km 정도를 걸어가다 보면 우리 마을이 시작되었다. 그때부터는 까만색 도로가 아니라 시멘트 도로가 시작되고, 좀 더 올라가면 지역 예산이 모자랐는지 비포장 흙길이 시작되었다. 아침에는 늘 등교하기 바빴지만, 집에 오는 길은 삼천포로 빠지느라 오래 걸렸다. 마을 어귀에 열린 산딸기가 더욱 탐스럽게 보였다. 전날과 그전날 따먹은 자리는 알맹이는 빠지고 꼭지와 줄기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고, 우리가 학교에 있는 동안 익은 것은 그날따라 강렬한 햇빛에 비쳐 반짝반짝 윤이 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잔가시가 있는 딸기 잎사귀와 주변 덤불도 시들어 있어, 다리를 들어 덤불을 밟아 젖히니 장애물이 말끔히 제거되어 산딸기를 따먹기 좋았다. 잎이 누렇게 시들어 있어서 날씨가 좋아서 햇볕에 탔다고 생각했다.
하교 후 집에서 놀고 있는데, 돼지우리에서 일하다 나오신 아빠가 막 대청마루로 올라앉으셨다.
"너거, 집에 오는 길에 산딸기는 안 따묵었제?"
"어떻게 아셨어요?"
"뭐? 따뭇단 말이가? 풀 안 시들었더나? 제초제 치는 날인데!"
"시들긴 시들었던데, 제초제가 뭔데요?"
"농약! 잡초 죽이는 거! 따 뭇다고? 몇 개? 빨리 저거, 칡뿌리차 묵어라! 빨리 씻어 내보내야 된다. 안 그라믄 병원에 실려 간데이!"
각자 일곱 개 정도씩 따먹었던가. '잡초 죽이는 거'를 먹은 나도 죽는 건가. 농약을 마신 게 아니고 산딸기에 조금 묻은 걸 먹었는데 괜찮을까. 왜 아빠에 대한 기억은 이런 식으로 죄다 죽는 걱정과 맞닿아 있는 걸까.
내 기억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 '병원'이었는데, 거길 '실려'간다면 얼마나 심각한 일인가. 응급상황은 있어도 응급실을 본 적이 없었다. 기억 속에서 작은 의원도 차 타고 1시간 거리라서 안 낫는 감기 때문에 두 번 정도 간 적이 있었다. 그 외는 간 기억이 없다. 더위 먹거나 체하면 기가 막히게 손을 잘 딴다는 할머니한테 가고, 옻이 오르거나 볼거리를 해도 약국에서 산 약을 바르고 해열제를 먹었고, 못해도 열 두 바늘은 꿰맸어야 했던 무릎의 큰 상처도 아빠로부터 가루분과 반창고, 후시딘으로 곪지 않게 처치를 받으며 여름방학 동안 마루 군용 침대에 대부분 누워서 보냈다. 심지어 벌집을 잘못 건드려 온몸에 벌이 잔뜩 쏘였을 때도 염기성 해독제인 '오줌'과 토종꿀을 발랐다. 그러니 칡차 정도면 점잖은 치료법이었던 셈이다.
공포에 질린 나와 동생은 주전자 가득 있는 미지근한 칡차를 해독제 삼아 마시고 또 마셨다. 목구멍까지 물이 차오르는 것 같았는데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눈물을 내비치며 맛없는 칡차를 배가 터질 때까지 들이켰다. 잎이 누런색이면 절대로 따먹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머리에 새기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왜 그날 때마침 끓여둔 칡차가 집에 도착했을 때부터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빠가 구해 놓은 칡뿌리였을 것이다. 평소에는 주전자에 보리차가 있었고 그날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아빠도 제초제 묻은 산딸기를 잘못 따 드시고 해독 중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어른이 되어 사 먹는 산딸기 맛은 역시 그때의 그 맛이 아니다. 모든 게 달았던 그때에 비해 상큼한 맛은 있지만 그때만큼 향긋하거나 달지는 않았다. 미각이 녹슬었다고 할 수는 없는 스무 살 무렵에 먹어본 두릅, 고로쇠물, 호박잎, 오디, 으름을 사 먹었을 때처럼 산딸기도 물 탄 맛이었다. 사랑에 빠지면 필요 이상으로 장점이 극단적으로 커 보이는 것처럼, 나에게 산딸기와 다른 야생 간식거리들도 향수병을 앓았던 추억의 맛이라서 과대평가되었던 건 아닐까. 따사로운 햇볕, 목마른 하굣길에서 먼지 날릴 때 코로 들어온 흙냄새, 잔가시에 긁힌 상처, 그리고 무엇보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 아빠의 다급함이 함께 배어야 그때의 산딸기 맛이 날 것 같다. 제초제 묻은 산딸기 일곱 개 정도를 먹고 칡차를 몇 시간 동안 마신 처방은 가장 덜 무서운 방법의 위세척이었다. 지금 내 아이가 그런 것을 먹었다면 당장 병원에 갔을 거고, 조금만 다치거나 건강에 이상이 생겨도 병원을 갔을 거다. 그러나 오지나 다름없는 곳에서 차 타고 1시간 걸려 병원에 가서 기다리고 진료를 받는 것보다 재빠른 처치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의 칡차를 잘 마신 덕인지 아무 탈없이 생을 이어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