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연기 속에서 배운 것

by 나예스

아빠께 처음으로 생신 선물을 준 건 여덟 살 때다. 뒷집 언니가 두루마리 휴지로 꽃 만드는 방법을 알려 줬는데 늘 보는 재료로 근사한 모습이 나오니 신이 났었다. 2겹 화장지를 한 칸씩 뜯어 겹쳐 놓고 지그재그로 접어 가운데를 철사로 묶었다. 그러면 나비넥타이 모양이 되는데 그것을 가운데로 한 겹 씩 올리면 목단 같은 휴지 꽃이 되었다. 일을 보고 늦게 집에 오신 아빠가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내민 야심 찬 꽃 한 송이였는데 뜻하지 않은 호령을 들었다.

"아빠! 생신 축하드려요!"

"치아라, 느그 아빠 디졌나, 흰꽃 주게?"

흰꽃은 죽은 사람에게 주는 것이라 했다. 국화꽃으로 본 아빠는 내 선물을 만져보지도 않고 외면하셨던 것이 서운했다.


초등학교 6학년때인 것 같다. 용돈을 조금 모아 아빠 생신 선물을 고민했다. 딱히 취미랄 것도 가지지 않은 아빠가 좋아하는 것은 술과 담배뿐인 것 같았다. 둘 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술은 절대 사 드리기 어려웠기에 담배를 선물했다. 그때는 동네 슈퍼에서 부모님 심부름의 술담배를 구할 수 있었다. 이름도 어렵고 생소한 '오마샤리프' 한 보루를 사서 포장지로 쌌다. 아빠가 당시에 피우시던 담배 브랜드였다.


그러고 보면 아빠의 담배는 많은 변천사가 있었다. 시골에 살 때는 '솔' 담배를 주로 피우셨다. 어린 내가 아마 '담배 좀 그만 피우시라'라고 얘기한 기억밖에는 없는데, 아빠는 그 담배가 소나무를 뜻한다며 로고를 보여 주고, 한 갑에 200원이라며 입자가 크고, 제일 독하고, 제일 싸서 피운다고 말씀하셨었다. 그러다가 도시로 이사하고 나서 주급 혹은 월급이 있는 노무를 하기 시작하면서 아빠의 담배는 업그레이드되었다. 장미, 88, 한라산. 모르긴 몰라도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아빠의 담배값이 오르긴 했을 거다.

"아빠, 선물이요!"

"뭔데?"

포장지를 개봉한 아빠는 이번에도 내가 원하는 반응은 보여주지 않았다.

"담배고."

"아빠가 좋아하는 오마샤리프요."

싱글벙글한 내 표정에 아빠는 묵묵부답으로 담배를 저 쪽으로 치워 두셨다. 그리고 셔츠 가슴주머니에서 남은 담배를 꺼내 안방에서 피우셨다. 그러니 나는 자동으로 콜록거렸다.

"아빠, 근데 담배는 좀 나가 피우면 안돼요?"

"내 집인데 나가긴 어딜 나가노? 답답은 사람이 나가는 거지."

"제가 나갈 순 없잖아요. 간접흡연이 더 나쁘대요. 끊으면 안 돼요?"

담배를 사 드리면서 담배를 끊으라고 말하는 내가 우스웠다. 아빠는 팔베개를 하고 리모컨으로 채널만 이리저리 돌릴 뿐 금연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정말 신기하게도 엄마는 안방에서 기침 한번 없이 연기를 그대로 맡고 있는 거였다.


며칠 후에는 아빠가 담배 끊는다는 소식을 엄마가 전해 줬다. 나는 두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하나는 평생 피워 오던 중독성 있는 기호식품을 고집불통인 아빠가 과연 끊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왜 갑자기 담배 한 보루가 생겼는데 끊는다는 걸까 하는 호기심이었다.

"아빠, 엄마가 카던데, 담배 끊는다면서요?"

"끊기는."

"끊는다고 한 거 아니에요?"

"한 보루 남은 거 다 피우고."

"그럼 더 못 끊을 건데요. 근데 왜 끊으실라고요?"

속 터지게 딴청 피우던 아빠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담배 선물이 뭣고? 몸에 좋지도 않은 거."

아빠는 이번에도 몇 안 되는 내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거다. 여덟 살 때 드린 생일 선물이나, 열세 살 때 드린 생일 선물이나 아빠의 마음을 심란하게 한 건 마찬가지였었나보다. 내 선물을 받고 충격을 받아 끊으려고 하셨던 걸까. 몸에 좋지도 않은 담배는 왜 마다 피웠을까. 온 방안을 자욱하게 만들어 식구들을 너구리 잡는 아빠가 못마땅해서 나는 입이 툭 튀어나왔다. 얼마 뒤 한 보루가 끝나갈 때쯤에는 호기심과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런데 퇴근길에 아빠가 또다시 오마샤리프 한 보루를 사 오신 게 아닌가.

"아빠... 담배 끊는다면서요...."

"끊긴 뭘 끊어? 이게 낙인데."

그럼 그렇지, 끊을 리가 없지. 괜스레 약이 올랐다. 그 후로 내가 중고등학생 때 아빠가 술을 드시고는 나를 앉히고 설교를 하는데 담배도 곁들여지자 나는 오랜만에 얘기했다.

"아빠, 담배를 끊던가 나가서 피우시던가 해 주세요. 간접흡연이 해로워서요."

"내 집이니 답답으몬 니가 나가라."

그때 나는 다짐했다. 최대한 빨리 이 집에서 나가겠노라고. 하지만 난 학업을 마치고 싶은 평범한 학생이었다. 내가 못 나갈 걸 알고 하신 농담이지만 말이 씨가 되어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성인이 되면 이 집을 탈출해야겠다고, 그러면 담배냄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성인이 된 후 서울살이를 했다. 미성숙한 성인이 흔히 겪듯,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시기가 있었다. 내 인생이 이대로 망한 것 같고, 장밋빛 인생은 남에게나 주어지는 거라고 생각하며 한껏 망가져 보기로 결심했다. 근처 편의점에 들렀다. 카운터 앞에서 쭈뼛거리고 있었다. 여자 아르바이트생이 나를 편안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어.. 담배 중에서 제일 순한 것 있어요?"

말하면서도 어이없었다. 망가지기로 결심은 했는데 담배연기가 독할까 봐 겁이 났다.

"있죠. 타르 함량이 낮은 게 덜 독한데, 낮은 1mg나 2mg으로 추천해 드릴까요?"

"아, 네.. 저 딸기향이나 민트향 나는 것도 있어요?"

그렇게 나는 팔리아멘트라는 브랜드의 1mg으로 집어 왔다. 라이터는 있냐는 말에 라이터도 사서 살던 고시원으로 들어왔다. 편의점에는 그동안 삼각김밥이나 컵라면을 사 먹으러 들렀었던지라 담배 입문자에게 그렇게 솜사탕 같이 상냥하고 부담 없는 제스처로 추천해주는 여자 아르바이트생을 다시 떠올려보니 신기했다.


1.2평, 창문 없는 컨테이너 같은 공간이 내 집이었다. 담배의 경고문구와 타르 함량 등을 꼼꼼하게 본 뒤 조심스레 개봉했다. '에쎄'처럼 슬림한 것이 좀 더 여성스럽고 덜 독할 것 같았는데, 어쨌든 더 순하다는 것으로 추천받아 와서 개봉도 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지만 스물한 살의 나는 불장난하는 어린이처럼 떨렸다. 우선 신세 한탄을 제대로 해 보기 위해 아빠처럼 소주를 병째 들고 벌컥벌컥 마시다가 켁켁댔다. 아니, 이렇게 목이 타는 걸 왜 평생 마셔온 거야? 목이 따갑고 알코올냄새가 독해서 눈물이 나왔다. 고시원 내방에서 눈을 감고 안풀리는 인생을 탓하며 소주를 마셨다. 그때 떠오른 이미지는 아빠의 술 취한 모습이었다. 결국 보고 자란 게 이런거구나. 나도 평생 힘들 때마다 술독에 빠지게 될까 생각하니 기분이 더 나빠졌다. 다음 모금을 마실 생각이 뚝 떨어졌다. 소주를 4분의 1병 마신 뒤 흘리지 않게 뚜껑을 꼭 닫았다. 그다음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불이 잘 붙지 않았다. 빨아들이니 이번엔 연기에 눈과 코가 매웠고 연기 냄새와 눈물이 났다.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자신이 제법 불쌍하게 여겨졌고, 타락의 길에 발을 들인 것 같아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겼다. 어설펐지만 지금의 나는 비행 청소년이 아니라 술과 담배를 법적으로 허용받은 성인이었다. 기침을 견뎌야 한다며, 나중엔 좀 더 멋있게 피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방에 창문도 없고 침구나 옷에 냄새가 벨 것을 생각하니 아빠의 안방을 채우던 연기와 '나가서 피우시라'라고 말했던 내 말이 생각나서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하는 수 없이 반도 안 태운 담배를 끄고 방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잠깐의 환기를 시킨 후 남은 소주와 담배를 챙겨 고시원 옥상으로 올라갔다.


두 번째 담배에 불을 붙였다. 소주도 한 모금 더 마셨다. 또다시 힘든 일이 생각나면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옥상에 올라간 김에 아래도 내려다보았는데, 떨어지면 많이 아플 것 같아서 얼른 뒤돌아 섰다. 소주는 맛이 없었고, 담배는 지독히 맛이 없기도 했지만 냄새가 싫었다. 멘솔 향이 첨가되었다고 해서 몸에 박하향이 베이는 게 아니었다.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담배는 1.5개비였고, 그 마저도 공중에 태워 보낸 게 대부분이었다.


아빠는 이 두 가지를 그렇게 많이 하셨다. 나로서는 아빠의 소주와 담배를 이해해 보려 해도 자학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내려와서 아직 내 방에 남은 연기냄새를 맡고 후회했다. 소주를 버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한 번도 담배를 입에 대지 않았다. 아빠의 낙이 내겐 숨 막히는 연기였다는 걸 몸으로 알았으니까. 하지만 이해하지 못했던 아빠의 마음이 조금은 짐작이 갔다. '좋지도 않은 것'인 줄 알면서도 붙들고 버티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아빠는 습관으로 자리 잡았었지만, 나는 집안에 술병을 줄지어 세우고 연기 자욱한 방의 주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난 연기 대신 바람이 통하는 쪽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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