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기차여행, 산채비빔밥 여행

21일 차: 기차

by 나예스

내 인생에서 지금까지 가장 여행다운 여행을 꼽으라면, 기억도 희미했던 중학교 때의 첫 여행이었다. 중학교 졸업 전에 친한 친구 두 명과 우리끼리 대구에서 경주 여행을 갔었다. '통일호' 열차를 타고. 기억의 파편을 모아 보면 가장 강렬했던 두 가지뿐이다. 아침 일찍 나선 당일치기 여행이었던 것 같다. 무궁화 열차의 이전 버전인 통일호를 마주 보고 타 서고 차창 밖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풍경을 봤다.
"기차에선 삶은 계란을 먹어야 된단다."
친구의 권유로 집에서도 손이 잘 안 가는 삶은 달걀을 사서 먹었다. 얼마 되지 않는 여비는 혹시 잃어버리면 집에 못 가니까 안주머니에 넣고 재차 슬쩍슬쩍 확인했다. 기차 안은 소란스러웠다. 우리 목소리도 소란에 보태어졌다. 모르는 사람들끼리의 정겨운 관심이 오고 갔다.
"아아들끼리 어디를 그리 가노?"
"경주요~여행 가요!"
"경주 너희끼리 가나? 용하네."

휴대폰도 없는데 무슨 안내를 따라 돌아다녔을까. 몇 시간이 지나서 내린 경주역에서 불국사 가는 버스를 어디에서 타야 하냐고 물어 타고, 내렸는데 왜 그렇게 불국사는 안 나오는지 투덜대며 사람들 따라가고. 소풍이나 수학여행 때 여러 번 갔던 그곳을 다시 가면서 나는 신대륙을 개척한 듯한 생소한 느낌을 받았다. 목적지는 불국사, 첨성대, 안압지 같은 명소였지만 그걸 보러 간 건 아니었다. 우리가 그 까지 갔다는 '여행' 그 과정을 즐기러 간 것이다.

걷다 보니 배가 너무 고픈데, 죄다 비싼 음식점들 뿐이었다. 우왕좌왕하는 사이, 음식점 앞에 진한 화장, 빠글 파마의 기 세게 보이는 아주머니의 호객행위에 붙잡혀서 반 강제로 들어간 '토함 식당'. 그때는 호객행위가 성행했다. 토함산의 정기를 받은 식당인가 보다. 싸고 맛있다는 말에 솔깃해서 팔과 어깨를 붙잡힌 채 들어갔지만, 가격표를 보니 상상 초월이었다. 긴컵 떡볶이를 500원에 사 먹을 수 있고, 3천 원이면 시내의 근사한 돈가스를 사 먹을 수 있는데, 토함식당에서 가장 저렴한 산채비빔밥이 8천 원이었다.
'낚였다.'

일어나려 했으나 우리를 들어앉힌 아주머니의 눈길이 매서웠다. 이 근처 다 이 가격이라고. 중학생 입맛에 산채비빔밥이 근사할 리 없다. 돌솥은 타닥타닥 소리를 냈지만, 절에 온 듯한 정월대보름틱한 나물 위에 날계란에 가까운 흰자가 투명하게 출렁인 채 테이블 위에 놓였다.
"계란 좀 더 익혀 주시면 안 돼요?"
"미리 말하지!"
진상취급받은 우리들은 내 돈 내고 눈치 보며 먹는다고 속닥댔다. 식당을 나오고 나서 친구 하나가 두리번 눈치를 살피고, 식당관계자가 들리지 않는 거리까지 떨어지고 나서야 외쳤다.
"왜 토함 식당인 줄 알겠다. 우웨엑~!"
"아하하! 맞네~! 그 뜻이었나?"
"꺄핫! 웃겨 죽겠다!"
이불에서 활개 치기였다. 우리 마음은 상했고, 밥은 우리 입맛과 기분에 맛없었지만 식당은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소심한 복수와 웃음으로 극복했다.

나오고 나서 몇 군데를 더 돌았지만, 불쾌감이 떠나지 않아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예산이 아까워 다보탑이나 첨성대 모양 기념품도 못 샀다.

묘하게도 이제 와서는 그 상처를 다시 한번 받아보고 싶다. 하지만 산채 비빔밥이 2만 원이라 해도 지금의 나는 상처를 받지 않을 것이다. 다음에 정말로 토함 식당에 가서 산채비빔밥을 먹고 그 시절을 추억하고 싶다. 어른 입맛엔 둘도 없는 건강식이었을 것 같고, 무엇보다 맛있을 것 같다. 진짜다.


우리의 의지, 자율성으로 떠난 여행에서 느린 통일호 열차 안에서 가장 뿌듯한 설렘을 남겼고, 가장 남에게 많이 휘둘렸던 식당사건으로 가장 아픈 상처를 남겼던 중학생들의 첫 여행이 떠오른다. 공통의 적수에게 대항하고 싶어 똘똘 뭉친 연약한 자들의 기억이 가장 큰 추억이 되었으니까.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불운을 함께 웃음으로 극복했던. 고난 앞에서 무엇이든 마지막엔 웃픈 해학으로 마무리했던 시절이었다.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통일호를 타고 오랫동안 달려간 경주 여행은 그 식당을 가기 위한 여행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