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차 : 편지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가 독립을 하면서 미처 챙겨 오지 못한 채로 사라져 버린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일이다. 수도 없이 주고받았던 중학교 때와 고등학교 때의 편지들은 세월 속에 묻혀져 버린 추억이었다. 뭐 그리 많이 다투고 화해를 위해 편지를 서로 써댔는지, 그런 노력들은 지금 나이에 생각해 보면 '그래도 난 친구 너희밖에 없다'라는, 처절한 구애였다. 특히 중학교 때의 친구 Y와 M과 주고받은 것이 많았다.
난 언제부터 편지를 잃어버린 걸까?
1인 1 핸드폰 시대를 통과하면서 편지는 이메일로, 세이클럽 메신저 채팅과 문자메시지로 바뀌었고, 나중엔 네이트온을 거쳐 카카오톡으로 바뀌었다. 종이에 영원히 박제되었던 감정을 손 편지가 담아냈었지만, 이제는 그날 보낸 메시지를 마음껏 삭제할 수 있는 기능까지 생긴 카카오톡 덕에 많은 실수를 회수할 수 있었고, 많은 증거들이 사라지고 있다.
정말 신기하게도 학창 시절과 20대 초반에 연애편지를 조금 쓰던 시절 이후, 20여 년이란 긴 세월을 지나고서야 손 편지를 다시 써볼 수 있게 되었다. 2024년 9월에 편지를 다시 받기 시작했다. 전시회를 갔다가 그림을 보며 내 생각이 났다는 내용이 담긴 엽서를 시작으로 2025년에 10장이 넘는 엽서를 받았는데, 아들에게 생일 때 써달라고 시킨 1장의 엽서를 제외하고는, 모두 독서 필사 모임으로 알게 된 친구분들의 편지였다. 필사를 처음 시작 했을 때 볼펜을 손에 잡고 1줄 이상 쓰는 느낌이 굉장히 낯설고 어색했는데, 필사만 할 줄 알았지, 편지 쓸 생각은 못했다. 20년 넘게 일기를 쓰시는 찐 기록쟁이의 엽서를 몇 번 받고 나니 나도 엽서로 답장을 쓰기도 하고 이제 제법 내가 먼저 누군가에게 엽서에 펜으로 편지를 쓸 줄도 알게 되었다.
손편지라고는 했지만, 계속 엽서를 고집하게 된다. 편지는 접어야 하고 규격과 크기가 지우개만 한 것부터 노트만 한 것까지 제각각이라 상대편이 보관이 용이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보관을 강요하는 건 절대 아니다. 읽어 본 즉시 버려도 그건 그 사람에게로 떠난 종이이니 개의치 않는다. 게다가 편지는 봉투를 열어, 접은 종이를 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잘 열어보지 않지만, 엽서는 다시 꺼내볼 때 엽서는 종이만 뒤집으면 바로 볼 수 있다. 엽서는 단 한 장에다가 그날의 내 마음을 담아 간편히 전달할 수 있어 심적 부담이 적다. 얼마 전부터 편지 고수에게 물어보고 엽서용 OPP필름도 200장 마련해서 엽서를 하나씩 끼워준다.
오늘은 생각난 김에 두 명에게 썼다.
편지라는 글쓰기는 참 신기하게도 처음 편지를 쓴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패턴이다. 쓰기 시작하는 윗부분은 글자도 크고 줄 간격도 널찍하다. 도저히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몰라서 , 이 빈 지면을 무슨 말로 다 채우나 막막해서. 그러다 중반부가 넘어가면 점점 할 말이 생기고 종이 끝에 가서야 글씨도 작아지고, 줄의 간격도 좁아지고 남은 여백에다 겨우 오늘의 날짜와 내 이름을 껴 넣을 수 있었다. 잘 쓰려고 했더니 너무 식상한 안부가 부끄럽고, 쓰다 보니 진짜 하고 싶었던 나도 몰랐던 말들이 나왔다. 그래서 그냥 써야 하는구나. 써 버릇해야 하는구나. 작년보다 편지 쓰는 속도가 조금 빨라진 것 같다. 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