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특한 위식도를 만들어야지

22일 차 : 다름

by 나예스

역류성 식도염이 재발해서 오늘 점심부터 다시 '김밥'이다. 지난달에 GPT가 처방해 준 식도염에 안전한 음식인 김밥 1줄로 점심밥을 한 달 이상 먹었었는데도 김밥은 도무지 질리지가 않았다. 이유가 뭘까.

매번 서로 다른 식감과 색깔이 한데 모여서 김밥이라는 정체성을 붙일 수 있는 조화로움 때문이다. 매번 다른 이름의 김밥을 주문하기도 하고. 원조김밥, 야채김밥, 참치김밥, 치즈김밥, 소시지김밥, 샐러드김밥... 종류가 많기도 하다. 품목의 구성이 조금씩 바뀌면서 전혀 다른 맛을 내는 김밥이 나는 기특하다.

단무지가 계란 역할을 할 수 없고, 당근이 맛살 역할을 할 수 없는 걸 나는 알고 먹는다. 김밥이란 요리는 다른 재료들이 한 데 모여 훌륭한 조화를 이루지만, 그 김밥을 받아들이는 내 위장과 식도는 조화롭지 못해 고통을 받았다. 내려가야만 하는 음식물이 올라오려 할 때 그 사이에 있는 '하부 식도 조임근'이 비정상적으로 열려서 위산 섞인 음식물이 식도에 화상을 일으키는 게 역류성 식도염이다. 종종 그 가슴속 통증으로 정신이 혼미해지고 두통까지 왔던 몇 년 동안 나는 그걸 과식으로 인한 '급체'로 명명하고 소화제를 먹고, 찜질하다 겨우 잠들었었다.

같은 몸속에 있지만, 위와 식도는 다르다. 내려간 음식이 올라오는 것은 식도 입장에서 원수를 만나는 것과 같다. 그 영역침범으로 인한 역류성 식도염이 계속 재발하는데도 식습관을 고치지 않으면 '바렛 식도'가 된다고 한다. 바렛 식도는 한 마디로 식도가 위장 흉내를 내는 건데, 계속되는 산 역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식도 세포가 산에 강한 위 세포처럼 변형한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식도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니, 경각심이 들었다. 자꾸 아프면 내가 좋아하는 커피나 다른 매콤하고 맛난 음식을 못 먹는 건 아닐까 두려워한 적은 있지만, 세포가 변형되고 , 돌연변이 암세포가 될 가능성은 생각 못 해 봤는데 말이다.

내가 녀석들에게 몹쓸 짓을 했다. 다른 녀석들끼리 한판 붙게 큰 싸움을 붙인 것이다. 금요일 점심때 맵찔이에게 너무나 매웠던 낙지볶음을 점심으로 먹었고, 평소에는 8시 이후에 잘 안 먹으려고 하는데 그날 밤 배부른 데도 과일을 좀 더 먹었다. 그리고 힘든 밤을 보냈고, 일요일 낮 배가 덜 꺼진 채 저녁이 되었는데, 놀러 온 친구가 해준 화이타가 너무 맛있어 보여서 배부른 상태에서 먹어버렸다. 일요일 밤은 약을 먹었는데도 4시간 동안 고통 속에 보냈다.

다시 기특한 식도와 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또다시 한동안 커피를 끊어봐야겠다. 그리고 회사에서 점심메뉴 제안이 올 때 대답을 바꾸어야겠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저는 다 잘 먹어요."가 아니라
"저는 매운 건 못 먹어서 다른 식당으로 갔으면 좋겠어요."
남편에게는 내가 8시 지났는데도, 배가 부른데도 자꾸 주섬주섬 먹으려 하거든 벌금을 먹이라고 해야겠다. 내기를 좋아하는 남편이 좋아라 할 것이다. 남편은 근무 특성상 하루 중 가장 많은 식사를 한밤중에 하고, 나는 이제 그걸 못 한다. 남편과 나의 식도와 위장도 많이 다르다는 걸 이제 인정해야겠다. 오래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