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옵니다' 쌤

24일 차 : 선생님

by 나예스

유치원 다닐 때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반에서 있는 듯 없는 듯했다. 어느 그룹에 가도 크게 튀지 않은 의기소침한 편이었다고 기억한다. 돌아가며 앉은 순서대로 책을 읽는 시간에도 3번째 전부터 심장이 요동치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중학교 '도덕' 시간에 우리 반에 들어온 선생님은, 앞으로 번호 순서대로 수업 시작 시간에 교탁 앞으로 나와서 '3분 스피치'를 할 거라고 했다. 선생님이 아니라 우리 중에 한 명씩 교탁 앞에 선다니, 생각만으로 떨렸다.
"1번이 누구지? 그래, 다음 시간에 종이에 적어서 와도 좋고, 3분 동안 무슨 주제로 말을 할지는 자유, 그럼 잘 준비해 옵니다. 할 말이 없으면 3분 동안 서있다가 들어와도 좋습니다."

다음 시간이 왔다. 반장이 말했다.
"차렷, 선생님께 경례."
"안녕하세요." 모두가 인사했다.
"네. 나옵니다."
도덕 선생님은 수업 시작 인사를 받자마자 교실 맨 뒤로 가서 서 계셨다. 선생님이 사라진 풍경은 낯설었다. 번호 1번인 친구가 두리번거리다가 노트를 들고 앞으로 쭈뼛쭈뼛 나갔다. 잘 몰랐던 반친구의 어떤 이야기를 듣는 건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공부가 아니라 노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가족소개, 잘하는 것에 대해 말하는 친구도 있었던 듯하다. 그리고 내 순서의 날도 왔다.

"나옵니다."
'나옵니다 쌤'의 첫 대사는 중독성이 있었다. 학급의 반 가까이 되는 친구들이 '나옵니다'를 동시에 따라 하고 웃었다. 난 시골에서 돼지를 키우며 똥 치우고 수박 껍질을 준 이야기를 했다. 학교까지 10리인 4km 거리였다고, 유치원 때부터 4년 넘는 기간 동안 왕복 8km를 걸었다고, 그 길을 리코더연습을 하며 집에 가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소 독특한 소재라 친구들이 나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도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말하고, 친구들이 집중해 주는 눈빛들이 어떤 자신감을 주었다. 얼굴의 화끈한 열기는 점차 식기 시작 했고 5분 가까이 말한 것 같다.

도덕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숙제 발표가 아니라, 강연의 기회를 주셨고, 자리에 앉은 학생들은 오늘의 '3분 스피치'를 기대하는 마음과 경청의 자세를 알려 주셨다. 모든 수업들이 내겐 마찬가지였지만, 도덕 선생님의 수업 내용도 별로 기억이 없다. 온통 관심은 오늘의 3분 스피치에 쏠려 있었다. 그럼에도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50분 동안 쉴 새 없이 무언가를 가르치고 진도를 나가는 교육만 있는 게 아니었다. 공식 석상에서 말하는 경험, 학생도 선생이 될 수 있다는 경청의 자세를 심어 준 교육을 해 주신 선생님이었다. 담임 선생님도 아니었는데도,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전근 가신다는 소식에 모두가 아쉬워했다. 고등학교때 '윤리' 선생님이 윤리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며 비교 되었다. 마음에 안 드는 학생을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다스리는 것을 보며 중학교 도덕 선생님이 다시 떠올랐다. 중학교때의 '도덕'선생님은 그 과목에 참 잘 어울리는 선생님이었다고 회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