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차 : 달리기
나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것이 아들에겐 중요했다. 나는 '굴렁쇠 굴리며 달리기'에서는 유일하게 1등을 했지만, 100m 달리기에선 항상 끝에서 1, 2등을 할 정도로 발이 느렸다. 아들은 3살 때부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차가 많이 다니는 골목에서 넘어지고 일어서서 조금 울고 다시 뛰어다녀서, 내가 짐을 들고 따라잡느라 숨이 찼다. 다리 대신 입이 뛰었다.
"조심! 기다려! 차조심! 멈춰!"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체육대회 계주 선수를 노리더니 반에서 남자 대표로 뽑혔다. 꼭 영상을 찍어달라고 당부해서 찍어줬더니, 생각날 때마다 재생하며 자신감을 획득했다. 다른 반 계주 선수들의 속력이나 자세를 주의 깊게 살피며 내년에 그 친구와 같은 반이 되면 제치고 자신이 선수로 뽑힐 수 있을지 가늠했다.
3학년때도 계주 선수로 뽑혀서 역시 동영상을 찍어달라 했는데, 바통을 넘겨받을 때 그만, 놓치고 말았다. 나는 달리기에 남다른 자부심을 느끼며 집착하는 아이가 절망하지 않을까 염려했다. 7반이어서 중간이었고, 13 반인가 아이들까지 순서를 다 하고 나니(학생수가 많은 학교다) 아이가 속한 백팀이 다행히 간발의 차로 승리했다. 팀이 이겼으니 아들의 죄책감이 덜해지겠지, 생각하며 안도했다.
집에 와서 동영상을 분석하던 녀석은 의외의 말을 했다.
"바통을 놓쳤는데도 이만큼 따라잡은 건 대단한 거예요. 여기 봐요! 애들이랑 선생님이 응원하는 거!"
미처 내가 해주지 못했던 말이었다. 같은 영상에서 나는 아들의 실수를 봤고, 아들은 폴짝폴짝 뛰며 응원하는 팀들의 제스처를 봤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 붙였다.
"내년엔 12반이나 13반이었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우리 팀이 지고 있다가, 내가 마지막으로 달려서 쌈뽕 하게 이겨버리면 되쥬~?"
3학년때도 반에서 비슷한 경쟁자 속에 겨우 계주 남자대표가 되었다고 했는데, 내년에도 당연히 자기가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는 아이였다.
남편도 국민학교 시절 계주선수를 놓치지 않았다고 했다.
"장난 아니었어. 사람들이 쟤 누구냐고~ 쪼끄매가 지고 왜 저렇게 빠르냐고~! 나 보러 운동회에 왔다니까!"
과한 허풍을 떨었다. 학부모가 자기 자식 보러 운동회에 가지, '쟤'를 보러 갈 일 만무했고, 눈썹이 휘날리게 달리는 중에 관중석의 소곤거림을 들을 일 없었을 것이다.
아빠와 아들 모두 달리기에 관한 자뻑이 국가대표급이라 달리기에 한해서는 상처받을 일이 없을 것 같다. 아직까지는 남편이 이긴다. 내년엔 아들이 아빠를 이길 것 같다. 그때도 아들의 으스댐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