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석떡볶이 맛잘알

37일 차 : 떡볶이

by 나예스

20여 년 전, 고등학생 입맛에 즉석떡볶이는 번화가에서 가장 저렴하고 근사한 끼니였다. 다른 식당은 밥 1인분에 4천 원에서 6천 원 정도 했을 때, 그 집 떡볶이는 1인분이 2천 원, 즉석 볶음밥은 천 원이었다.


부족한 용돈을 털어 친구와 3천 원을 모으면 둘이서 떡볶이 1인분을 끓여 먹고, 볶음밥까지 맛볼 수 있었다. 즉석떡볶이 1인분의 기본구성은 이러했다. 가운데 위치한 양배추채 속에 간혹 당근이 들어간 티만 나는 정도로 섞여 있고, 구멍이 난 쌀떡 6개 위로 물기 많은 검붉은 고추장 소스가 덮여 있었다. 원형의 철판 사이드 쪽을 쭉 두른 건 각종 면종류인데, 라면 4분의 1쪽, 당면과 쫄면이 각 15가닥 정도씩 보이고, 자른 어묵 5개가 3분의 1씩만 포개어져 있는 모습이 마치 '나 이래 봬도 있을 건 다 들어있어요' 하고 으스대는 것 같았다.


몇 번 먹어본 결과 가스불을 켜 주고 사라지는 서버는 다시 돌아왔다. 모른 척 다른 일을 하다가 가운데부터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와서 한쪽 철판 손잡이를 맨손으로 잡고 저어주며 6개의 쌀떡을 연두색 멜라민 주걱으로 동강이 내서 12개가 되도록 만들어 줬다. 설레발로 끓기도 전에 모든 소스를 다 섞어버리면 안 된다. 그러면 떡이 익기도 전에 소스가 떡을 막아서 부드럽게 익지 않았다. 그렇다고 서버가 다른 테이블에서 밥을 볶느라 못 오고 있는데 '언젠가 오겠지'라는 마음으로 철판을 쳐다만 보고 있어도 그날 떡볶이는 망하는 거다. 바닥에 떡이 자국을 내며 들러 붓기 시작하면 금방 타니까 부지런히 주걱으로 긁어 줘야 한다. 그래서 주걱이 닳아서 한쪽이 네모가 되어 있기도 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언제나 들어간 사리의 양에 맞게 고추장이 들어가 있었다. 간혹 간이 셀 때도 있지만 그때는 육수를 더 부어 달라고 하면 되었다. 어쩌다 돈이 있으면 라면 사리를 추가했고, 라면 4분의 2쪽이 왔다. 그러면 기본 사리 포함 3쪽이 되니 절대로 라면사리 한 봉지가 같은 철판 위에서 만날 일은 없는 것이었다. 추가로 시킨 면 사리에 맞게 고추장을 튜브로 조금 더 짜 넣어 준 후 육수도 조금 더 부어 줬다.


볶음밥을 시키면 서버가 철판에 남은 떡볶이를 사이좋게 앞접시에 담아 주었다. 깨끗이 긁어 주지는 않았다. 볶음밥에는 그 적당히 졸아 남은 소스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약간의 양배추채떡볶이국물 2스푼이 남은 철판을 허리에 끼고 대형 밥솥 앞에서 재료를 취합하는 걸 보았다. 멜라민 밥공기에 밥을 공기 섞어 담고 육수를 부은 후 철판 위에 엎는다. 다음은 특제소스인 연두색 소스를 표 나게 철판 위로 선을 긋듯이 뿌리고, 참기름도 뿌리고, 다진 미나리와 다진 파, 잘게 부순 김가루를 집게로 집어넣고 나서 약간의 고추장 소스를 티스푼만큼 짜서 의기양양하게 걸어온다.


즉석 볶음밥은 보는 맛이 절반이었다. 내 눈앞에서 불을 켜고 왼쪽 맨손으로 철판 귀퉁이를 잡고 오른손은 주걱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철판을 뱅글뱅글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반드시 그 집 단골이 아닌 손님은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이 초록색 소스는 뭐예요? 와사비예요?"

"아니요, 특제 소스예요."

"뭐가 들었어요?"

여기에는 사람 따라 다른 답변을 들을 수 있다.

"비밀이에요." 여기서 조금 더 비위를 맞추니 이런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깻잎 마요네즈 소스예요."

그다음 질문도 정해져 있다.

"안 뜨거우세요?"

"요령이 있어서 괜찮아요." 여기서 조금 더 비위를 맞추면 원리를 들을 수 있다.

"손잡이 잡는 쪽은 불길이 안 닿아요."

따뜻한 열기와 흩어 펴 발라지는 밥을 보면 눈이 어질어질했다. 순식간에 철판에 빨간 쌀알을 한 겹으로 깔아 주었다. 1인분은 뻥튀기 만한 크기이고, 2인분은 철판이 꽉 찼다. 이렇게 상세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나도 서버로서 했던 행동이며 말이기 때문이다.


첫 아르바이트를 내가 좋아하는 즉석 떡볶이집으로 구했다. 그 손이 안 보이도록 빠르게 밥을 볶아내는 스킬을 갖고 싶었다. 아르바이트생 시급이 2천 원 정도였고 나는 말을 잘했는지, 비밀리에 2백 원 더 오른 금액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달 뒤 그만뒀다. 왜냐면 나는 서빙을 하고 싶었지, 호객행위를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추운 날 문 손잡이를 잡고 떡볶이 골목을 지나가는 손님들을 안으로 넉살 좋게 모셔야 했다. 면접 볼 때 곧 그만둔다는 아르바이트생이 끊임없이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신경 쓰였는데 이제 나보고 그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이제 막 밥 볶는 재미가 들려서 여러 테이블을 들쑤시며 '밥 볶아 드릴까요?' 묻고 있다가, 실장님의 손짓 하나에 풀이 죽어 입구에 서 있게 되었다. 맙소사. 나는 그 일을 너무 최선을 다 하고 말았다. 마치 아는 손님이 또온 것 마냥 문을 바깥으로 열어 길을 막으며 " 어머! 어서 오세요~"했고, 갈등하는 손님에겐 사이다 한 병을 서비스로 드리겠다고 했다. 사이다 원가가 300원이고 손님이 3명이면 남는 장사라는 실장님이 준 권한이었다. 손님을 많이 모시면 빨리 홀서빙으로 복귀시켜 줄 거라고 혼자만 믿고 있었다. 나는 고정삐끼가 되었다. 홀로 복귀하기 위해 손님을 가득 채웠다. 빈자리가 없이 일손이 부족해야 갈 수 있는 세계였다.


겨울엔 내 엉덩이 뒤로 상냥하게 서 있는 온열기구에 손을 쬐며 창문 너머로 다른 가게 앞을 서성이는 손님을 하이에나처럼 바라보았다. 저녁 장사 첫 손님은 꼭 한가운데 테이블에 앉혀야 했다. 그래야 사람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거기가 제일 따뜻하다 했고, 여름에는 거기가 에어컨 바람이 제일 잘 오는 곳이라고 얘기했다. 삐끼를 잘해서 매상이 좋으면 저녁 식사로 직원 밥 대신 떡볶이를 먹을 수 있게 해 주었는데, 영업 성과를 올리고 싶은 욕망은 그 떡볶이 보상에서 나온 건지도 몰랐다. 내 처지가 너무 처연했다. 다시는 호객행위를 하기 싫다며 벼르고 별러 퇴사를 선언했지만 한 달도 안 되어 그 맛이 그리워 손님으로 왔다가 붙들려 다시 알바를 시작하게 되었다. 삐끼를 하지 않는 조건, 그러나 다른 아르바이트생은 눈물 나도록 호객에 소질이 없었고, 나는 다시 스스로 호랑이 입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온열기구의 보호를 받으며.


나는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고3 겨울에 1달 동안 하루만 쉬고 종일 떡볶이 가게 직원을 해서 딱 100만 원을 받았다. 한 달의 인생을 갈아 넣은 보상치고는 작았고, 저녁알바만 하던 시절에 비하면 로또였다. 그렇게 일하고 그만두기를 여러 번 하다 보니 3년 동안 그 집에서 일하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내가 고등학생땐 최고의 떡볶이였는데 점점 경쟁사가 많이 등장했다. 신천할매떡볶이, 신전떡볶이, 신떡, 부산떡볶이, 0410해물떡찜, 나중엔 국대 떡볶이, 배떡, 엽기떡볶이까지. 떡볶이는 싼 음식이었는데 내 생각엔 해물떡찜이라는 브랜드가 평균단가를 올려준 것 같았다. 아르바이트했을 때 친구들은 나를 만나기 위해 손님이 되어 주었다. 친구들이 뒤늦게 고백하기로, "거기가 맛있어서 간 건 아니었다. 니를 보러 간 거지." 했다. 나를 보러 온 친구들이 고마우면서도 나한테만 맛있는 거였나, 미묘하게 서운했다. 어느새 떡볶이는 자부심이 되어버렸나 보다.


떡볶이 골목엔 해가 갈수록 사람들이 지나가지 않았다. 학생들이 풍족한 용돈을 쥐고 있었던 건지, 더 이상 즉석떡볶이가 그들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한 건지 모르겠다. 호객행위를 더 이상 하지 않아서인지, 호객행위를 손님이 부담스러워해서 더 이상 지나가지 않아서인지, 단지 유행이 지난 건지 몰랐다.


작년에 오랜만에 그동네 갈 일이 있어 음료를 사들고 방문했는데 사장님과 사모님은 거의 늙지도 않으시고 그대로 계셨다. 20여 년 동안 가게 메뉴 단가는 거의 오르지 않았고, 손님은 거의 없었다. 오랜만에 찾아가서 먹은 떡볶이는 배가 부른 상황이었는데도 너무 맛이 있었다. 볶음밥을 어디선가 볶아 오셔서 보는 맛은 없었지만 그때 그대로의 맛이었다. 나한테만 맛있는 게 아니었다. 10살 아들이 떡볶이를 폭풍흡입했다. 더 먹고 싶다며 입맛을 다셨다. 그거지! 내 아들. 피는 못 속인다. 네 안에도 떡볶이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거야. 떡볶이가 맛있다는데 내가 그렇게 인정받는 기분일 수가 없었다. 2대에 걸쳐 그때의 그 맛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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