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일 차 : 새벽
새벽은 피곤함의 단어다. 늦은 새벽도, 이른 새벽도 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늦게까지 자지 않으면 머리가 멍해지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면 눈이 새콤해졌다. 새콤한 피곤을 이겨 내고 새벽 산책을 나가면 어쩐지 승리감이 생긴다. 나 자신의 게으름과 싸워서 이겼고, 세상 사람들이 다 자고 있는 시간에 하루를 먼저 시작하는 게 삶을 더 많이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만족스러웠다.
늦은 새벽까지 무언가를 하다 자면 승리감이 들지 않았다. 내일의 체력을 당겨 쓰는 걸 알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몇 시간의 삶을 더 얻는 기분이 아니라 나머지 공부를 하는 기분이 든다. 빨리 끝내고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생체 시계는 신기하다. 11시부터 자정까지는 졸음이 쏟아지는데 자정을 넘기고 나서부터는 피곤하기는 한데 눈은 다시 말똥말똥해졌다. 그런 피로의 변화가 자정쯤에 온다는 게 늘 신기했다. 마치 "자라고, 제발 자 주라고!" 애원하던 몸이 시계를 볼 줄 아는 것처럼 밤 12시를 넘기면 "아, 자면 안 되는구나?" 하며 각성상태를 만드는 것 같았다. 그 상태를 새벽 1시 까지는 끌고 갔다. 잠을 자야 할 때 안 자는 건 몸을 '전쟁 중인 상태'로 인식하는 거라고 한다. 그러면 몸의 영양분과 스트레스를 저장해서 살이 잘 빠지지 않는 몸 상태로 만든다고 말이다.
나는 밤형 인간이라고 선언하며 늦은 시간에 주로 독서와 글쓰기를 했지만 이제는 진실과 가까워지려고 한다. 늦게 자니까 일찍 못 일어나는 거다.
이른 새벽 맞이를 쉽게 시작하지 못했던 건 육아 수면 패턴이 고착화되었기 때문인데, 아이가 잠들고 나서 한두 시간이 가장 덜 깨고, 아침과 가까울수록 엄마가 없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렸다. 번번이 깨버린 아이에게 발목이 잡혔었다. 거실에 있어도 소용없이 다시 껌딱지 옆으로 돌아가서 누워야 했다.
지금은 새벽 1시 전후로 취침시간을 당겼고, 아이도 어느 정도 컸으니, 앞으로는 다시 이른 새벽을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