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들의 청춘

39일 차: 청춘

by 나예스

계절은 봄, 여어어어어름, 갈, 겨어어어울로 흘러간다. 인생의 봄을 청춘이라 하고, 이팔청춘의 나이는 2 ×8=16세 전후를 일컫는다. 봄은 짧다. 짧아서 더욱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나의 짧은 봄, 그중의 피크타임인 여고시절을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진한 우정을 나눌 수 있어서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결성한 '대성화 5 자매'는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유일하게 월 회비를 내는 모임이다. 지금도 '친구'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들이다.

학교 이름 앞에 큰'대'자를 붙여 지어진 그룹명은 나의 동의 없이, 쉬는 시간에 엎드려 자는 사이 결정되어 수업 시작종이 울리기 전 속사포로 통보되었다.
"우리 이름 정했거든. '대성화 5 자매'라고. 색깔도 정했다. 얘가 1호, 2호, 난 3호, 4호, 그래서 니는 대성화 5 호고, 수호색은 핑크색이다."
"아, 그게 뭐고? 웃기다. 내 초록색 좋아한다." 내가 웅변하자 바로 컷 되었다.
"아니, 초록색은 2호가 이미 가져갔다. 이건 니가 잠을 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채팅 사이트 '세이클럽'에서 우리 친구들끼리의 온라인 동호회(클럽, 카페 개념) 사이트 대문을 꾸미느라 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앉았더니 다음날 졸음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엎어져 달콤한 단잠을 잤는데 깨고 보니 난 '핑크색을 좋아하는 대성화 5호'가 되어있었다.

일진도 칠공주도 아닌 평범한 여학생들의 정체성을 학교를 대표하는 5인방으로 만드는 마법이 있었다. 무리 지어서 피어나는 클로버의 새순처럼 연하고 질긴 우정이었다. 추진력 있는 친구에 의해 그날 저녁부터 당장 세이클럽 별명을 "대성화○호"로 바꾸었다. 우리가 노는 것이 재미있어 보였나 보다. 반 친구들은 "네가 몇 호였더라?"와 같은 질문으로 우리 그룹의 존재를 인정했으며, 세이클럽에서 '대성화 6호' 나 '대성화 12호' 별명을 사용하는 접속자도 생겨났다. 소녀들의 소속감은 그렇게 중요했나 보다.

하루는 매점으로 몇몇과 몰려갔다가 늦게 교실에 들어가다 선생님께 걸려서 입에 썰지 않은 김밥 한 줄을 물고 복도에서 벌서는 굴욕을 당했고, 그 와중에 선생님이 안 보이면 입을 다물지 못한 채로 웃다가 김밥 속재료와 참깨를 복도에 흘리기도 했다. 또 하루는 친구 3호가 옆반 친구였는데도 5 반인 우리 반에 하도 자주 와서 웃긴 일도 있었다. 3호를 우리 반 학생으로 착각하신 나머지 4반에 들어가신 과목 선생님께 영문 없이 지적을 다고 한다.
"너는 왜 이 반에 있어?"
"저 원래 4반인데요."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건은 급식 당번일이었다. 4명이 밥, 국, 반찬 등을 복도 테이블 앞에서 퍼주면 반 학생들이 빈 식판에 줄을 서서 받아가야 하는데, 반에서 소위 양아치 행색을 하는 녀석들이 앞줄로 새치기해서는 우리의 집게며 국자를 빼앗아 셀프로 많은 반찬을 담아가져 갔다. 맛있는 것 위주로. 우리는 반찬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지만 힘없이 강탈당했다. 그때 선생님은 안 보였고, 왁자지껄한 점심시간은 전쟁같이 휩쓸렸다. 맨 마지막 순서로 급식 당번이 자기 반찬을 담아야 한다. 그런데 반찬강도들 때문에 뒷 순서부터는 반찬 양을 줄여나갔음에도 우리가 먹을 것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콩나물 줄기 같은 나물류와 밥, 국 정도였다. 반 친구들 식판에는 있는 그날의 특별메뉴가 우리 식판에는 없었다. 나는 억울함과 무력감과 분한 감정이 뒤섞여 울고 말았다. 다른 친구들 눈에도 조금씩 눈물이 비쳤다. 우린 강해져야 한다며 결의를 다지며 나는 눈물 젖은 국밥을 먹었다.

그 후로 나는 각성한 것 같다. 녀석이 우리 반찬을 털어간 것에 대한 작은 복수를 했다. 양아치 녀석이 내 얼굴에 담배 피우고 온 걸 자랑하며 내 얼굴에 입김을 뿜으면 "아... 입냄새."라고 했고, 친구들 앞에서만 보여주던 바보 같은 개그도 녀석이 내 손을 잡고 딴 반으로 데려가 일진 앞에 세우며 "아까 했던 것 다시 해봐라"라고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르쇠로 일관해서 녀석이 혼자 약 오르게 만들었다. 그러니 내 밥을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우리에게 비밀은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축하받으며 초경을 시작한 친구도 있었다. 남자친구가 생기기 전의 갈등과 풋풋한 연애감정도 조심스러운 고민으로 단체상담이 되었다. 친구네 집에 모여 촛불 앞에서 진실게임도 하고, 같은 학원에서 수업을 듣기도 했다. 다음 해 반이 찢어져도 우정은 변치 않았고 고3 때는 함께 '이미지 사진'도 찍었다.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나서야 친구집에 모여 당당하게 맥주를 개봉했다. "우린 이제 성인이야! 마셔!" 하며 종이컵에 '짠'을 하고, 그 한 잔에 얼굴이 뻘게지고 눈이 풀려 취한 모습을 보여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이 지나가니 제법 주량이 늘어난 친구도 있지만, 여전히 우린 만나면 술잔치는 잘 안 한다. 다만 수호색에 애정을 보이는 친구들은 선물을 고를 때 머그컵이든 머리핀이든 5개를 사 올 때 지정색을 염두에 두고 골라온 모습이 재미있었다.

청춘 시절에 함께 웃고, 울고 비밀을 나눈 친구들이었기에, 여전히 가장 소중한 친구로서, 친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야 내가 가장 친하다고 생각나는 친구들에 대해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일 선물을 챙기는 해도 있고 그렇지 않은 해도 있지만, 이 친구의 요즘 관심사는 뭔지, 어떤 선물을 받으면 좋아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청춘 몇 년의 추억으로 20년 이상을 먹고살았지만, 이제 밑천이 드러나는 것이다.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바쁘다는 건 다른 곳에 시간을 쓰고 있다는 거였다. 다시 추억을 쌓아야 할 때라는 게 느껴졌다. 청춘의 마음으로, 친구의 안부를 묻고, 시간을 내고, 만나는 횟수를 늘려야 할 때였다. 그때의 팔딱거리는 소녀들의 심장이 아니지만 우정의 점도를 늘리고 싶다.
우리가 90 먹은 할머니가 되었을 때 되돌아보면 이때는 아직도 한창 좋았던 청춘일 것이다. 보고 싶다. 친구들. 오래 보고, 사는 이야기를 듣고, 추억을 같이 만들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