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일 차 : 도서관
이전에 살던 동네에 작은 도서관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독서를 안 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1년에 1권도 안 읽던 내가 한 달에 3권 이상씩 읽는 습관이 잡힌 데는 집 근처 도서관이 큰 역할을 했다. 회사 대표님이 독서를 권장하길래 사장실에서 한 권 빌린 것이 시작이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서점이나 도서관은 집-회사-집-회사 생활에서는 연분 없는 장소였다.
그러다가 집 근처 시장에 공영주차장 겸 구립 작은 도서관 겸, 장난감을 대여하는 곳이 있어 방문하게 되었다. 가까운 거리, 머물고 싶은 인테리어, 인파 적은 공간, 전체 새 책으로만 이루어진 곳에서 아이 그림책도 대여하고, 내 책도 차츰 읽기 시작했다. 지자체에서 투자한 시설을 이용 안 하면 손해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큰 도서관보다 오히려 책 찾기도 수월하고 한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원하는 책을 희망도서로 신청하면 도서관에서 대신 사주고 신청자가 제일 먼저 읽을 수도 있는 것은 엄청난 혜택이었다.
문화행사도 있었다. 요리연구가와의 만남도 있었고, 재즈 피아니스트와 아나운서의 낭독 콘서트도 열렸다. 간이의자 1열에 앉아 책 낭독을 들으면서 나는 소설의 매력을 드디어 알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기 계발과 부동산 경제도서만 읽었었기 때문이다. 너무 슬퍼 눈물 콧물을 흘리며 들은 낭독 도서는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 의 첫 단편소설 <입동>이었다. 문맥과 어울리는 즉석 피아노 연주를 배경음악으로 한 챕터를 통째로 읽어 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이전에 《바깥은 여름》좋더라며 내게 책을 추천해 주던 언니의 말이 떠올라 실제로 읽게 되었다. 작년 가을에는 도서관에서 유명한 작가들을 초빙해 '작가와의 만남'을 하는 소식을 많이 접해서 강연 들으러 몇 군데 갔었다. 도서관이 가요무대나 불꽃축제 기간에 문화 축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도서관은 책값을 아껴주는 것 이상의 역할을 했다. 아니, 도서관 단골이 되면 책을 구매할 확률이 올라간다. 책 근처에도 안 갔던 사람들 눈에 밟히는 곳으로 찾아가서 독서의 세계로 초대를 해준다. 나 역시 1년에 1권도 잘 안 읽던 사람이라 도서관이 아니었다면 연초에 한번 들르는 서점에서나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공짜 책을 많이 보면 책을 안 살 것 같지만, 나의 경우는 책 자체에 애정이 생겨 사게 되기도 했다. 도서관을 통해 읽고 나서도 자꾸 떠오르는 책은 소장용으로 사게 되기도 한다. 읽고 싶은 책에 대기가 많으면 사서 보게 된다. 친구와 만남의 장소에서 기다리다가 눈에 띄는 중고서점에 들어가 한두 권 사기도 한다. 책을 주기적으로 읽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 책을 구매해서도 보게 되는 것이다.
전자도서관을 가끔 이용한다. 도서관까지 가는 시간을 아껴준다. 급히 읽어야 할 때 e-book 대여는 로켓배송보다 값지다. 그리고 무료이고, 반납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나중에는 전자도서관이 보편화되겠지만 아직은 물성매력이 있는 종이책이 좋다. 책으로 둘러 쌓인 그 공간이 좋다.
지금 사는 동네에는 도서관이 멀다. 공원입구의 작은 공간에 '스마트 도서관'이 있다. 일반적인 경험으로 타도서관에 있는 도서를 가까운 도서관으로 상호대차 신청을 하면 3~4일이면 받아볼 수 있다. 하지만 수요 폭발하는 우리 동네 '스마트도서관' 기계는 2주 이상 기다려야 받거나, 20개 정도 되는 칸이 상호대차 도서로 꽉 차서 일주일 씩 상호대차 신청을 중단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마저도 생겨서 다행이지만, 열람실이 없으니 아쉽다. 다음에 이사를 가게 된다면 도서관 근처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