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일 차 : 음악
남성 크로스오버 그룹 '포레스텔라'를 알게 된 건 김연아 남편 고우림의 존재를 인식하면서부터였다. 연아퀸과 결혼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찾다가 유튜브 알고리즘에 노래들이 뜨면서부터 다이아몬드 같은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부르는 노래에 빠져버렸다. 그들이 4 중창으로 부르는 노래는 무엇이든 말도 안 되게 좋았다. 모두 독창적인 음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 곡으로 조화되었고,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게 가능해?"
귀호강은 며칠간 밤마다 시작해서 새벽 3시, 4시까지 이어졌다. 유튜브로 재생되는 노래를 들으면서 원곡보다 좋다며 연신 빠져들었다. 가족들에게 들려주다 보니 아들도 어느새 흥얼거리고 있었다. 아들은 역시 남편보다 흡수력이 좋았다. 특히 아들은 얼굴이 잘 생긴 고우림을 좋아했다. 함께 간 콘서트에서 고우림은 군복무 중이어서 아들은 아쉬워했다.
내가 함께 부르는 노래를 유독 좋아한 건 각 파트별로 쌓아 올리는 '화음' 때문이다. 합창보다는 10명 미만의 중창이 좋다. 합창은 어떤 사람이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찾기 어렵다. 누구 하나 실수 해도 커버가 잘 될 것 같고 어쩐지 배경음악 같이 먼 곳에서 들려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중창은 누가 그 파트를 부르는지 포커싱이 가능하다. 한 명의 삑사리는 치명적이다. 한 명도 빠짐없이 잘해야 한다.
중, 고등학생 때 선교중창단 동아리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동아리 모임원과는 큰 유대가 없었지만, 누군가 탈퇴한다는 얘기가 나오면 예상했더라도 서운했다. 파트별 최소 인원은 꼭 출석률이 좋기를 바랐다. 그래야 화음을 맞추어 노래하는 멋진 순간을 맞추어 볼 수 있을 테니까. 동아리 초창기에는 복식호흡 연습을 하고, 윗몸일으키기 숙제를 하며 노래와는 상관없는 기초체력 다지기를 했다. 그리고 간간이 잊을만하면 군기 잡히는 시간을 가졌다. 선배뿐 아니라 졸업한 OB 선배가 찾아와 혼나는 시간도 있었다. 성실하게 했지만 전체적으로 복장, 지각, 모범적이지 않는 행실을 트집 잡히며 혼이 났고, 고개 숙이는 시간이 끝나면 선배들은 어김없이 학교 앞 떡볶이와 튀김을 사서 먹여주었다.
처음 노래를 부를 때는 노래보다 표정연습을 더 많이 했다.
"거울 한번 보고 노래해봐. 네 표정이 너무 무섭거든. 웃으면서~ 자~ 웃자."
선배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웃으면 발성이 다 흐트러지며 깊이 없는 소리가 나올 테니까. 학교 복도에 있는 전신거울 앞에서 불러보고는 나도 놀랐다. 노래를 비장하게 씹어먹고 있는 원한에 찬 소녀가 나를 보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 두 마디 후마다 급하게 방긋 웃으니 폭소를 자아냈다. 노래 부른 후가 아니라 부르는 순간 내도록 '눈으로' 웃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몸치뿐 아니라 표정 치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눈웃음까지도 집에서 계속 연습했다. 노래 부르는 사람이 경직된 표정이기만 하면 듣는 사람이 편안한 마음으로 즐길 수 없다. 즐거운 곡은 즐거운 표정, 슬픈 노래는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표정으로 불러야 진실되어 보인다. 인위적 훈련과 가식으로 연습한 다음에 곡을 소화하고 나면 언젠가 곡 분위기에 맞게 진심의 표정이 나오리라 생각하며 진실되어 보이는 최고의 눈웃음을 연습했다. 고등학교에서는 내가 속한 선교중창단이 7명이 지역 고등학교 선교중창단 10개 넘는 그룹 중 대상을 탄 적도 있었다. <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여> 노래 제목에 걸맞게 매우 기뻐 보이는 표정으로 불렀고 인원수는 다소 적은 편이었지만 각자의 파트를 잘 소화해 냈었다. 연습해서 호흡을 맞추고, 과연 경연날에 이걸 잘 해낼 수 있을지 절망에 빠지다가, 결국 호흡을 잘 맞추는 경험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의 '화음'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음악 시간에 조를 짜서 동요에다가 배운 화음을 입혀 리코더 연습을 해오는 숙제가 있었다. 다른 조장은 모두 악보와 화음을 잘 아는, 피아노 학원 다니는 아이들이었는데 나는 계이름을 겨우 읽는 수준이었다. 하교 후 국기 게양대 앞에 등나무 그늘에 모여서 내가 화음을 교과서 음표 위아래에 그린 후 계이름을 적어서 각자 그것만 외웠다. 교과서에서 배운 화음 도미솔, 도파라, 시레솔 등을 교과서 노래 원음 위에 그대로 쌓아서 정직하게 연주했다. 피아노 출신 조장들은 장식과 애드리브를 짜 넣었다. 그런 것은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분야였다. 그러나 일주일 단위의 조별 과제에서 6회 중 4회 연속 우리 조가 1등을 하는 엄청난 자부심이 생겼다. 아마 채점 기준은 화음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한 뜻으로 했는지가 중요했던 것 같다. 연습량으로 치면 우리 조를 따라올 수 없었다.
화음을 리코더로 화음을 쌓아 연주하는 기쁨, 그리고 중창하는 기쁨으로 단련된 듣는 귀는 포레스텔라 콘서트는 물론, 뮤지컬을 볼 때마다 대리만족이 되었다. '저렇게 해내려면 얼마나 연습하고 훈련해야 하는 걸까' 하는 경외심까지 들게 했다. 화음과 음악은 영혼을 치유하는 마법이 있었다. 오늘은 뮤지컬 <물랑루주>를 보고 왔다. 배우들의 연기를 오페라글라스로 클로즈업해서 보기고 하면서 노래를 들었다. 무대 위 사람들이 작품마다 새롭게 도전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조연들에게도 눈길이 많이 갔다. 그 한 팀의 노력과 재능에 압도되었다. 앞으로도 1년에 한 번 이상은 무대 공연을 보며 그들이 온 힘으로 내지르는 열정적인 음악 에너지를 충전받고 싶다. 그토록 잘 맞는 호흡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