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일 차: 바다
2024년 추석 연휴에 친정 식구들과 굴업도(인천 옹진군 덕적면 굴업리) 여행을 갔었다. 독서모임에서 만난 분이 주기적으로 그 섬을 찾아간다며 공유해 주신 사진에는 지상낙원 같은 풍경이 있었다. 바닷가에서 맨발로 걷는 사진, 초록색 언덕 위에서 꽃사슴이 뛰어노는 모습, 갈매기, 언덕 너머 사방에 펼쳐진 파란색 바다에 홀리게 되었다.
‘서해에서 동해 같은 바다를 볼 수 있다’는 말은 꼭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기 충분했다. 원래 여행계획을 못해 남의 여행을 따라다닌 적이 훨씬 많은 나는 여행 추진자로서 어쩔 수 없이 배편을 알아보고 숙박할 펜션을 알아보았다. 굴업도의 존재를 알려 주신 분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
나는 인천에 살고 있지만 바다와는 멀다. 더구나 옹진군의 수많은 섬을 가려면 연안부두를 가야 하는데 거기까지도 동서울을 가는 시간만큼 걸린다. 큰 섬 덕적도까지 1시간 50분 동안 큰 여객선을 타고 가서 기다렸다가, 하루에 한 번만 뜨는 작은 배로 갈아타서 1시간을 더 가야 하니 당일치기 여행은 불가능한 곳이다. 하염없이 가야 하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저절로 청정지역이었다. 작은 배로 갈아타고 나서 2층으로 올라가서 가서 보니 굴업도와 가까워질수록 그야말로 울릉도 가는 길이라 해도 믿을 만큼 푸르고 깊은 바다가 끝없이 펼쳐졌다. 뱃머리 쪽에 서 있자니 내가 해적선의 선장이 된 것 같은 웅장한 기분이 들었다. 아들과 남편은 배 2층에서 자고 일어나더니 언제 도착하냐고 채근했다.
선착장에 가까워지니 섬 전체가 눈에 들어오는 듯 아담한 크기가 실감되었다. 그곳은 주민이 15 가구가 채 되지 않는다고 했고, 두세 곳 알아보았던 펜션 주인끼리 자매이기도 했다. 지하수를 뚫어 물을 얻는 곳이었고, 사방이 바다여서 작은 해변이 많았다.
개머리 언덕을 올라갔다. 석양이 하늘에서 수평선 너머로 지는 것을 직관할 수 있어 배낭 하나 둘러맨 캠핑족인 백패커들에게 성지인 곳이라 했다. 바다와 이어진 언덕이라 ‘도둑게’라고 하는 집게발이 새빨간 녀석들이 언덕 초입의 돌과 바위틈으로 가끔 들락거렸다. 해지기 전에 출발해서 점차 어두워지니 엄마가 내려갈 때 깜깜하면 무섭다고 해지기 전에 내려가자고 하셨다. 언덕 위 꽃사슴은 그날따라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석양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개머리 언덕 가는 길, 섬이 개의 형상이라면 아마 개의 등이나 목쯤 되는 지점에서 보는 풍경도 예술이었다. 해를 보기 위한 다른 사람들도 서너 명 올라왔다. 그들에게 일몰과 은하수가 흐르는 밤하늘을 넘기는 마음이 아쉬웠다.
일몰이 다가올 때쯤 내려오니 해변 위로 핑크빛으로 물든 구름과 하늘이 보였다. 원시와 가까운 대자연 속에 있자니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음날 오전은 아들의 바람대로 조개를 주우러 갔지만 바지락 초보는 도무지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1시간 이상 있으면서 작은 바닷게 몇 마리와 작은 고동 몇 마리를 잡고 오는 길에 풀어주었다. 2박 3일을 보내면서 동생은 이튿날 밤에 옆구리에 빈대(베드버그)에 한번 물려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잠옷을 버리고 오기도 했다. 마트는 없고 동네 구멍가게는 있었다.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는 못 갔지만 1년이 지나고 기억에 남는 풍경 중에서는 개머리 언덕 가는 길에서 본 사방의 뻥 뚫린 바다와 보송보송한 풀(수크령 인 듯하다)이 떼를 지어 펼쳐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배 타고 가는 길 보았던 새파란 바다가 하양 포말을 일으키며 뱃머리에서 갈라지는 모습, 그런 풍경은 어떤 해방감을 주었다.
인적이 드문 파란 바다의 섬, 굴업도에 다음에 한번 다시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