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일하다가 앉아서 일하게 된 터닝포인트

46일 차 : 터닝포인트

by 나예스

서서 일하다가 앉아서 일하겠다고 다짐한 건 쉬는 날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다리에 통깁스를 한 후였다. 21살에 제주음식점 서빙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일하지 못했을 때의 참담함이란. 그때까지도 나는 서비스업이 천직인 줄 알고 고되지만 즐겁게 일했었다. 다리를 움직일 수 없이 목발 신세가 된 고통보다, 이제 돈을 못 버니 서울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부장님 앞에 초록색 다리를 하고서 주책없이 울어댔다. 지방의 부모님께도 며칠 지나서야 알렸다. 한 달 깁스를 하는 거니 한 달 휴직을 하고 나면 뼈가 붙어 괜찮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깁스를 하는 동안 그쪽 종아리는 근육을 쓰지 않아 얇아졌다. 그렇게 갖고 싶었던 날씬한 종아리를 한쪽만 갖게 되었다. 깁스를 풀고 처음 발을 디딘 날 절망했다. 뼈는 붙었지만 걷지 못하고 고꾸라질 뻔했다.

복직한 날에 절뚝거리며 일하고 있는데, 룸 예약 손님이 다급하게 벨을 여러 번 눌러댔다. 그날 나의 포지션은 룸 테이블이었고 내 담당 룸 중 하나였다.

"네에- 가고 있어요."

계속되는 벨 소리에 얼굴은 벌게지고 심정은 비참했다. 기다리다가 문을 열고 나온 손님이 여전히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난감한 기색으로 말했다.

"아아니! 다리가 왜..."

"깁스 푼 지 얼마 안 되어서요."

"이런 사람을 일 시키면 어떡해? 허 참."

'이런 사람'이라는 말이 가슴에 박혔다. 호출 벨을 들어도 걷기조차 버거운 나는 업무 결격자라고 통지받은 것 같았다. 인어공주가 육지에서 발을 디디면 이런 통증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한 달 휴직을 하고도 후유증이 심해 복직 후 1달 일한 후 퇴사하게 되었다.


'다리가 아프면 이 일을 할 수 없구나.'

그러고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서비스업을 하며 통증을 참았다. 괜찮은 척해야 했다. 발의 잔여통증은 한의원도 소용없이 3년이나 갔다. 통증의학과 인대강화주사를 3번 정도 맞고 나서 나았지만, 신체의 한계는 밥벌이의 한계 라는 생각이 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아빠가 가끔 말씀하셨었다.

"똑바로 걸어라, 발 앞을 보지 말고 저 100미터 앞을 보고 걸어라."

그때뿐인 자세라서 지금까지도 종종 발목을 접질러곤 한다.


사무경력 없이 서빙직을 하며 20대 중반이 넘어가고 있던 즈음, 남자친구였던 현재 남편이 말했다.

"돈 많이 주는 서빙 하지 말고 당장은 적게 받더라도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으로 구해. 언제까지고 적게 받진 않을 거잖아." 계속 말했다.

말이 쉽지, 나는 컴맹이었다. 전원버튼과 인터넷 검색, 이메일밖에 쓸 줄 몰랐다. 면접에 몇 번 떨어지고 포기하려 할 때쯤 내 공개 이력서를 보고 어떤 회사 대표님이 직접 연락을 주셨다. 나의 무엇을 믿고 지원도 안 한 회사에서 전화 줬을까, 의심스러운 마음에 오히려 내가 어떤 회사인지 꼼꼼하게 따져 묻고 재차 확인했다.

"근데요, 저 사무직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 괜찮으시겠어요?"


집에서 지하철로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에 위치한 그곳은 놀랍게도 전문 사무직이었다. 기존 서빙 월수입보다 70만 원 정도 적게 받아 생활에 타격은 있었지만 큰 도전이었다. 컴퓨터 적응증은 괴로웠다. 하지만 다리를 절던 때보다 희망적이었다. 화면을 1시간만 봐도 안구건조증이 심해 눈이 빠질 것 같았고, 엑셀도 다룰 줄 몰라서 몇 달 동안 회사와 나 모두가 곤혹스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어느 날 일이 손에 익고 자신감이 생겼다. 그 회사 대표님과 사수 대리님께 감사하다. 그 첫 사무직 직장이 그 이후 사무직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연예시절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사무직을 해라'라고 계속 말해주었던 남편은 아이러니하게도 한 번도 사무직이나 앉아서 하는 일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은 10년 가까이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내가 아무리 '이제라도 사무 기술을 습득해서, 아니면 운전이라도 배워서...' 떠들어봐야 소용없다. 이젠 늦었단다. 남에게는 쉬운 업종 이직이 자신에겐 어려운 법이다. 남편 덕분에 나는 사무직을 하고 있다. 고마운 일이다. 그의 터닝포인트도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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