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피어나는 먹을거리 새순

47일 차 : 봄나물

by 나예스

시골에서 유초년을 보냈을 때 나는 부지런히 무언가를 따거나 잡았다. 봄이 시작되면 제일 먼저 냉이와 명아주, 씀바귀가 길가나 마당 가쪽으로 자라났다. 비포장도로 길가에는 달래와 쑥도 많이 났다. 하굣길에 집에 가다 보면 밭두렁을 타고 오르며 피어나는 쑥을 마을할머니들이 두어 명씩 짝을 이루며 뜯었다. 그걸로 떡을 해 먹는다고 했다. 어린 입맛에 쑥개떡을 하나 얻어먹어보니 그렇게 고생해서 만들 만큼 쑥떡이 맛이 있지는 않았다. 씁쓰름 한 한방재료 같은 느낌의 맛이었다.

땅에서 나는 것 중에 일품은 냉이와 달래였다. 자주 먹던 된장국에 내가 뽑아온 냉이나 달래를 넣고 엄마가 끓여준 된장국은 맛이 있었다. 냉이도 지나치게 큰 것은 나중에 뽑지 않게 되었다. 잎사귀가 마녀 머리 같고 뿌리는 열무같이 길었다. 그런 건 반 쪼개서 먹어도 질겼다. 최상급 냉이는 돼지우리 가는 길에 거름을 먹인 땅에 난 것이었다. 땅이 부드러워 뽑기가 수월했다. 한 손에 쑥 딸려오는 기분 좋은 수확감, 내 손바닥 안에 들어가는 앙증맞은 크기, 시금치만큼이나 싱싱하고 여린 잎 부분은 된장국에 넣어 먹으면 향도 좋고 식감도 부드러웠다.


달래는 마치 미니 실파 밑에 달린 미니 양파 같아서 알이 얼마나 굵은가, 궁금증을 자아내는 맛이 있었다. 냉이와는 반대로 달래는 좀 더 큰 녀석을 뽑게 되었다. 그게 흙을 털어내 씻기도 좋았고 '왕건이' 알뿌리를 얻는 기분도 났다. 달래는 하굣길 산과 길이 이어지는 어중간한 언덕에 많이 났다.


봄나물 하면 가장 많이 떠오르는 녀석은 역시 산나물이다. 산에 난 오솔길로 올라가면 제일 먼저 취나물이 반기고, 내 등산의 목적인 참두릅이 나온다. 내 키만 한 가시나무막대기 꼭대기에 참두릅 새순이 튤립닭발 모양으로 오글오글 피어났다. 바깥으로 활짝 펴 버리면 질기고 깔끄러워서 못 먹는다. 잎사귀의 모양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순이 움츠러들어야 두릅의 가치가 있었다. 따다가 가시나무에 손등이 할퀴어지기도 하고, 발 빠른 누가 먼저 떼어간 빈 나무를 보며 왠지 모를 약 오름도 느꼈다. 따는 순간에 똑, 소리가 나면서 순이 따진 가시나무 끝에 투명한 진액이 땀방울처럼 맺혔다. 왜 다른 나무들은 가지가 많은데 두릅만은 곧은 일자의 가시나무인 건지 아쉬워했다. 가지가 많으면 가지 끝마다 두릅이 날 텐데.


맛있어서 어쩔 수 없지만, 나무에게 미안하기는 했다. 산에는 물 주는 사람도 없는데 기껏 봄이라 해서 녹은 땅 속에 남은 물을 끌어올려 피운 새순을 이렇게 도둑질해 가 버리면 두릅나무는 얼마나 허망하고 오갈 데 없을까. 다른 가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도깨비몽둥이 같이 생긴 딱딱한 나무 끝에 겨우 난 숨구멍일 텐데. 과연 올해 새순이 다시 자라기는 할까. 두릅을 수확하고 나면 그 후 1년 동안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듬해에도 두릅나무마다 새순이 나는 걸 보고 '아, 작년에도 어찌어찌 새순을 다시 피웠나 보구나.' 하며 안심했다. 두릅을 구분하고 따는 방법을 동네 언니가 알려 준 건지 엄마가 알려줬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두릅을 바가지에 따 가면 엄마가 데쳐 주면 맛있게 먹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마트에서 사 먹는 두릅은 절대 그때의 향긋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심지어 값싼 땅두릅을 사 먹었을 때는 이걸 두릅이라고 판다는 사실에 화가 날 지경이었다. 마트 두릅은 아무 잘못이 없었지만 내 추억은 훼손되고 기대는 사그라들었다. 좀 많이 핀 두릅 위주로 파는 것도 아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수확하고 이동 중에도 순은 더 벌어질 것이고, 용량이 어느 정도는 되어야 값을 받기 수월하기 때문일 것이다. 새끼손가락만 한 두릅 4개를 담아 8천 원씩 받을 수는 없으니 딸기팩만 한 곳에 꽉 찰 정도까지는 덩치를 키워 팔아야 했겠지, 하고 생각해 본다.


봄나물이라 하지만 이제 갓 태어난 아기였다. 새순 저들도 살아보겠다고 땅을 뚫고 올라왔을 텐데 어린 인간이었던 나의 무자비에도 봄은 어김없이 오고, 대자연 속 새순은 계속 자라났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으로 매년 마트냉이, 마트 달래, 마트 두릅을 사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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