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일 차 : 사진
인생에서 중대한 사건이 아니고서야 잔잔한 기억은 잊힌다. 그럼에도 기억은 주로 사진이 담당하고 있다. 사진을 보고 잊을 만하면 또 봐서 장기기억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저 마당에서 저 바지를 입고 자주 놀았었지, 시냇물에 들어가서 물고기를 잡았었지, 가족사진 찍는 날 튼 얼굴에 니베아 로션을 번들번들하게 바르고 입었던 옷 그대로 밤에 가서 찍었었지, 안 친한 친구가 내 사진을 찍는 순간 일부로 입을 'ㅅ' 모양으로 바꿨었지, 졸업사진 때 저 무리에 같이 찍는 게 낯설었었지, 교회 등산수련회 갔던 저때는 내가 산타는 속도가 빨랐었지, 저 친구들과 여행을 갔었지, 교실에서 저렇게 햄버거처럼 서로 허물없이 부대끼며 찍었었지...
예전 기억은 선명하고, 최근 기억은 잊는 것이 건망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예전 사진은 인화해서 보관하다가 앨범이 낡으면 정리하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디지털카메라를 처음 갖게 되었을 때도 인터넷 인쇄소에서 출력한 사진을 무더기로 가지고 그 양이 너무 많아 앨범이 아닌 뭉텅이 채로 여러 개 상자에 보관했다. 나의 젊고 날씬하고 풋풋했던 날들 역시 물질화되어 보관되었다.
한때 유행했던 이미지 사진. 시내 지하상가에 가서 친구와 몇천 원씩을 모아 사진을 찍고, 포토샵으로 확대해서 고치는 디자이너에게 예술을 요구했다.
"와, 하얘졌다. 눈 좀 더 크게요, 입꼬리 대칭이요, 눈썹 좀 더 칠해 주세요, 이중턱 없애 주세요. 어, 나 안 같은데?"
철저한 어깨너머 감독한 사진을 코팅하고 잘라주면 소중하게 이미지사진첩에 넣어 보고 또 봤다.
그런데 핸드폰 사진으로만 촬영하고 있는 지금의 사진은 어떤가. 서비스센터에 처음 휴대폰을 수리하러 갔다가 기사의 실수로 공장초기화 되었을 때는 그의 멱살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되돌려달라고, 다른 건 다 날아가도 되는데 사진은 이렇게 없어지면 안 된다고 센터 문을 닫을 때까지 울먹거리면서 버텼다. 기사에게 이미 다른 방법은 없는 듯했지만, 모든 고객이 빠져나가고 센터장이 센터 문을 닫기 전 나를 내보낼 때까지 노력하는 제스쳐를 보였다. 그 후로 휴대폰을 분실하면서 백업되지 않은 사진도 같이 날려먹었고, 새 핸드폰을 살 때마다 저장된 사진용량이 많아 데이터 옮기는 시간이 1시간 이상씩 걸렸다.
내 손 안의 사진은 언제든 볼 수 있지만 그래서 더 안 보게 되었다. 갤러리보다는 카카오톡에 업로드한 사진 위주로 보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는 카카오톡 프로필사진이 성장일기가 되었고, 그래서 아이의 얼굴과 행동 위주로 기억하게 되었다. 남들에게 보이는 사진은 비슷한 여러 사진 중에 엄선한 최상의 사진을 올리게 되었으므로, 그 자체로 디지털 사진첩이었다. 핸드폰 사진으로는 의미 없이 찍는 장수만 많고 뭘 지워야 할지 고르는 시간이 귀찮아서 그냥 대용량 SD카드를 사서 사진을 저장할 뿐이었다.
많은 부모가 그렇겠지만 갤러리에 휴대폰 주인의 사진이 없었다. 가뭄에 콩 나듯 발견한 사진은 머리 자른 날, 여행 가서 찍은 가족사진, 원형탈모 확대사진, 체중계 위에 올라서서 전신거울을 찍은 뱃살 인증사진이었다. 초상권이며 뭐며 하면서 점점 친구와 만나도 사진을 안 찍게 되었다. 내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올리는 걸 매번 동의받기도 그렇고, AI나 범죄에 사용될까 봐 조심하는 풍토가 있다 보니 더 그랬다. 그러다가 내 얼굴 사진을, 친구와의 단체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아파트 독서모임을 하면서부터이다. 몇십 년째 일기를 쓰고 사진을 출중하게 찍는 분이 계시는데 , 그분이 자연스럽게 모임 때마다 단체사진을 찍었다.
최근 10년 동안 찍은 사진 중 남과 함께 찍은 사진의 대부분이 독서모임 사진이었다. 편집까지 해서 전송해 주셨다. 문집을 만들어 영원히 사진을 박제해 주셨다. 사진에 대한 소명을 매번 잊지 않고 삼각대를 세우시는 동안 한 달에 한 번 이상 만나는 우리 모임원들은 머리칼과 옷을 매만지고 입꼬리를 올렸다.
"여러분, 늘 얘기하는 거지만 실제로도 웃어야 합니다.~ 자연스럽게 하하하."
"하하하-아하하하하하크큭!"
그때 연속촬영. 차자자자자잘칵!
그렇게 수동적으로 편하게 찍히는 게 습관이 되었다 보니 1대 1로 만나는 사람마다 찍는 걸 잊어버릴 때가 많다. 그러다 또 어느 날은 내 사진첩에 내 사진은 죄다 독서모임 사진이었고, 아이가 초등학생 이후에는 아이사진도 뜸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무슨 갤러리에 사진이 책사진, 커피 사진, 인터넷에서 당시에 매우 중요하게 여겨 캡처하고 다시 안 본 이미지로 도배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가끔 만났을 때 둘 다 노메이크업 상태였지만 내가 먼저 부끄럽게 제안했다.
"우리 같이 사진 찍을까?"
"응? 지금?"
그렇게 내 폰카 하단에 내 얼굴이 푹 퍼지게 찍히고, 친구는 수수하게 나온 날것의 사진을 친구들 방에 몇 장 전송하며, "우리, 애들이랑 만났어." 소식을 알리는 안부를 띄웠다. 그러면 지방에 있는 친구들이 또 안부를 전해 왔다. 30대 초반이었던가, 우리 다섯 명, 예쁜 드레스 입고 사진 찍자고. 그때는 좋다 좋다 해놓고 막상 연례행사처럼 만남을 앞두고는 한 명 정도 사정이 생겨 못 볼 때도 생겼다. 완전체로 만나고서는 지금 이 상태는 안된다며, 살 좀 빼고 찍자고 미루다 보니 살은 못 뺀 채로 10년이 다 되어간다. '살다 보면 오늘이 가장 예쁜 날'이라는 말은 믿고 싶지 않았다. 이번 4월, 그리고 또 연중에는 인생 네 컷이라도 찍어야겠다.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우리의 단체사진은 다 늙어서야 찍게 될지도 모른다.
지난가을, 아파트 단지에 단풍이 곱게 물들었을 때 사진 찍을 시간을 안 내는 남편을 일주일 전부터 재촉했었다.
"우리 가족사진 찍어야 돼. 대충, 단풍 있을 때 빨리. 다음 주엔 단풍 다 져."
주말 오전 남편 출근길에 삼각대를 들고 단지를 빠르게 돌았다. 유튜브 해보겠다고 몇 년 전에 샀던 삼각대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단풍이 예쁘다고 알려 주신 이웃들 덕에 강행한 가족사진은 칭찬할 만한 추진력이었다. 그 후로 가족끼리 찍은 사진이 없기 때문이다.
찍은 사진 위주로 기억난다. 속절없이 지나가버린 세월 탓을 할 게 아니라 지금의 나를, 친구를, 가족을 더 많이 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