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일 차 : 삼겹살
양돈가의 딸인 나도 돼지를 키울 때는 돼지고기를 먹는 일이 좀체 없었다. 기억나는 건 이 장면이다. 추수가 끝나고 나서 마을에서 통돼지 바비큐용 만한 덩치 작은 돼지를 한 마리 잡았다. 아빠가 토치로 털을 태우는 냄새는 머리카락 타는 냄새와 같았다. 손질한 돼지고기를 마른논 한쪽에서 어른들이 장작불에 구웠다. 벽돌로 양쪽 지지대를 세우고 지붕에 쓰는 슬레이트 골판을 걸쳐 불판 삼았다. 그 위에 돼지 비곗덩이로 기름칠을 하고 살코기를 굽는 냄새가 정말 고소했다. 소주와 함께 어른들이 맛보는 동안 볏단 침대에 몸을 던지며 놀다가 부르면 가서 입을 벌려 서너 점 먹은 것 같다.
돼지 사업을 접고 도시에 살면서 엄마는 한 달에 한번 꼴로 정육점에서 고기를 한 근 반 정도 사 오셨다. 그것도 삼겹살만. 다섯 식구의 반찬으로 버너에 구워 주셨다. 거의 평생 채식과 생선 위주의 식단이었다가 육류를 자주 먹게 된 나는 동생들과 다르게 비위가 약했다. 한 달꼴로 가졌던 삼겹살 데이 때마다 고문이었다. 비계가 입에 들어가면 속이 메슥거려서 바로 헛구역질을 했다. 삼겹 중 순수한 살코기 부분만 젓가락으로 찢어 먹다가 관자놀이에 엄마의 꿀밤이 쥐어 박혔다.
"비계를 안 먹으니까 키가 안 크지!"
엄마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했다. 지방이 키를 크게 하는 영양식품이라 한 말씀은 아니었을 거다. 성인 되기 전까지 내가 비린내 나 누린내 같은 게 느껴져서 못 먹는 음식은 미역줄기 볶음을 포함해서 20가지도 넘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휴무일에 불판과 TV에 부지런히 시선을 빼앗기는 동안 내 밥그릇 앞에 점점 쌓여갔던 휴지, 그 속에 숨겨둔 비계와, 살 반 비계 반인 부분. 앞접시를 가져와 고기를 김치처럼 결대로 찢어서 60%를 버리려다 걸렸다. 삼겹살 한 점을 눈 질끈 감고 입에서 세 번 씹다가 구역질이 나서 화장실로 달려가 뱉었다. 나무껍질처럼 바싹 구우면 삼키기도 가능했지만, 그러면 맛없다며, 고기가 그 지경까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셨다. 나의 끈질기고 간곡한 요청으로 목살도 반반 사 와주셔서 난 그것만 먹었다.
지금은 고기를 가장 좋아하고 못 먹는 게 거의 없다. 남동생은 비계를 잘 먹었지만, 삼겹살 많이 먹었던 그때 키가 안 크는 건 나와 마찬가지였다. 남동생과 여동생 모두 딱 봐도 키가 큰데 나만 160이 안된다. 여동생은 어릴 때부터 점점 컸고, 남동생은 고등학교 때 의리없이 한꺼번에 큰걸 보면, 누적된 비계가 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해 준 건 아닐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보기도 했다. 삼겹살을 먹을 수밖에 없는 가정환경인 줄 알았다. 삼겹살집 간판도 갈빗집 간판만큼이나 많은 걸 보니 분명 다른 사람 입맛에도 맛있을 텐데, 주변에 나 말고는 아무도 비계에 불만이 없었다. 삼겹살이 앞다리살보다 비싸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장동료가 삼겹살을 먹고 싶어서 군침을 삼키며 월급날이나 회식을 기다리는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고깃집에 함께 가서 행복해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삼겹살에 관심이 생겼다. 잘 먹어내기 정도가 아니라 가끔 먹고 싶어서 삼겹살 고깃집에 가거나, 정육점에 가서 구이용 삼겹살을 사 나르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나를 만든다'는 말은 삼겹살의 제조 기술인가 보다. 삼겹살이 나를 만들었다. Made in 삼겹살. 키가 멈추고 나서 좋아하기 시작해서인지 뼈대가 아닌 배에 저장되었다. 엄마의 주장이었던, "비계를 안 먹으니까 키가 안 크지!"도 타이밍을 놓친 나의 후회로 서글프게 회자되곤 한다. 아들이 가끔 기름이 느끼하다고 말하면 "엄마도 느끼해서 비계를 안 먹었더니 엄마만 키가 빨리 멈췄다"라고 얘기해주곤 한다. 그러면 이제라도 더 많이 먹으면 되지 않냐고 묻는 아들에게 정중히 거절한다. 키가 클 수 있을 때 잘 먹어야지, 엄마는 이제 성장판이 닫혀서 더는 옆으로 크기 싫다고. 그렇게 근거 없는 삼겹살의 효능을 우스갯소리로 말하며 마음속 주문을 외쳤다.
"삼겹살아! 우리 애 키를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