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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Aug 01. 2023

[시골출신] 곤충 채집의 쓸모

맨손으로 매미 잡기 ㄷㄷㄷ

퇴근길.
버스 기다리고 걷는  게 귀찮아서 자전거로 1년째 출퇴근하고 있다. 눈 온 다음날과 비 오는 날은 자전거를 타지 못해 더욱 분주해진다.

네이버에선 자전거로 6.5km 27분 거리라고 적혀 있지만 목숨이 하나인 나는 수많은 신호를 지나 40분 정도 걸리는 집을 가고 있었다.

보호색 절묘한것은 인정.

매미 울음소리가 가득한 7월의 땡볕이다.

자출매.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매미인가?
앗, 깜! 짝이야!

자전거가 조금 무거워진 것 같아서 보니 내 달리는 자전거 손잡이 옆에  앉아버린 매미.. ㅋㅋㅋㅋ

심장이 빠르게 뛴다!!  

당연하게 내 차에 무임승차 하며 바람을 느끼는 너의 자태.



뻥이다. 허구다.
이 녀석은 탈주한 인질이다.

나는 오늘 스스로에게 사이코패스의 기운을 느끼며 괴로워하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는 논밭과 산을 깎아 콘크리트를 부어 만든 신도시라 두 여름이 와도 매미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하지만 자리 잡힌 구도심을 자전거로 지나가다 보니 귀를 찢는 매미 소리가 들린다.

매미의 허물껍데기가 통나무 옷걸이에 잔뜩 걸려있다.

장마가 끝나기 무섭게, 밤새.. 요이 땅! 하고 매미 유충들의  경주가 벌어졌나 보다.
내 아들이 8살이니 아들과 동갑이거나 한 살 어린 동생들인 셈이다.


변신을 하면 악당으로부터 인간을 구해주진 못해도 위대한 그들만의 위대한 소명인 번식을 위해 운다.
아주 떼를 쓰듯이 운다.  짧디 짧은 결혼 및 출산을 해야 또 땅속에서 그들의 자식들이 7년 동안 살 수 있으니까.  2주 만에 짝을 만나든, 못 만나든 죽으니까. 게 흔한 매미의 일생이다.
매미의 먹이는 나무수액이다.  땅속에서도 유충은 나무뿌리에 있는 물을 먹으며 약 7년 동안 산다.

그러다가 어느 여름날 바깥세상으로 나와서 아무  나보이는 대로 기어 올라가서 마지막 탈피를 하며 날개를 굳힌다. 생애 최후의 2주를 위해서 말이다. 나오자마자 새나 다른 천적의 먹이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내 무릎 높이에서 나무인척 하고 있는 매미씨
내 눈은 못피하지!

아이고 바보 멍청이 매미야.. 왜 안 날아가니?
하는 찰나를 박차고 날아간다.
암컷이라 발음기 대신 산란관만 있어 울지 않는다.

아들은 3살 때부터 곤충을 너무 좋아했다.
곤충도감의 그림과 이름을 '곤충이름대기' 게임을 하며 참 열심히도 외웠었다.
8살인 지금도 어떤 계절이 제일 좋냐고 물으면 여름이 곤충이 많아서 제일 좋다고 한다.




저번에 스릴러 영화인지 드라마인지를 본 장면이 생각난다. 극 중 빌런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연쇄 살인마인걸 알게 된다. 그리고는 사건현장에 자취를 남기고 살인범 아들 대신 사람을 죽였다고 자수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아들이 감옥에 들어가는 꼴을 맞이하기 싫은 것이다.  잘못된 방향의 부성애로 모든 걸 뒤집어쓰고 '범인'이 되어보려고 하는 스토리였다. (-_-)..



무, 물론 같은 상황이라 할 순 없지만..

왠지 괴로웠다.ㅠ-ㅠ
여름을 기다려 왔던 아들에게 곤충채집 중에 곤충채집인 매미..! 를 경험시켜주고 싶었다.

죄 없는 자, 나에게 돌을 던져라!
모기 한번 안 잡아본 사람?

잠자리채는 채집을 하라고 생산된 제품이며 채집통은 곤충채집을 하여 담으라고 생산된, 법적 보호를 받는 곤충채집 용품이다. 내가 만든 게 아니다.  전국의 문구사, 다이소, 쿠팡 등등 싸잡아 들어(?) 갈 테다. ㅎㅎㅎ

잠자리채와 채집통을 들고 어린이가 나무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면 "매미 잡냐~?" 하고 지나가실 어른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 큰 어른이  양봉인에 가까운 이런 차림새를 하고서 자전거를 인도에 주차한다.

올여름은 결단코 탄감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 횡단보도 옆 차양막 파라솔 아래에서 (턱살을 모자이크 했다.)

  조심스레 가로수 주변을 돌며 서성이고 있으니 왠지 수상쩍다.  
지나가시던 할머니가 멈추고 나를 흘깃 쳐다보시고,  다시 가다가 뒤돌아보시니 귀 뒤로  굵은 땀이 한번 더 흐른다.


어릴 때, 학교 방학에 곤충 채집해서 표본(!)을 가지고 가는 숙제가 있었다.

30년 만에 잡아보는 매미다.
오늘 퇴근길에는 아무 도구도 없었기에 맨손으로 녀석의 옆구리를 잡아 통풍이 그나마 되는 나일론 장바구니에 공기를 가득 담아 헐빈하게 묶었다. 심장이 쿵쾅대고 땀이 났다.  또 한 마리를 넣다가 그전에 넣은 녀석이 파드닥 날아가버렸다.

신호를 기다릴 때 매미가 울까 봐 조마조마했다. 누가 볼까 봐 창피했다. 푸닥 파드닥거리는 게 괜스레 깨림찍하다. 어서 아이에게 보여주고 놔줘야지.

심장이 쫄깃하게 조여 오는데 이 글 처음 사진과 같이 나일론 장바구니 밖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매미가 기어 나와서 핸들 위에 안착해  있는 것이다.
사람 눈을 피해 길 한편으로 가서 다시 매미를 넣었다.


집에 가서 매미를 채집통으로 옮기기 전 상상해 보았다. 거실에서 이 작업을 하면 골치 아플 것 같았다. 혹여나 냉장고 뒤로 들어가면 큰일이다.!

작은방을 둘러보니 5단 책장 뒤로도 틈새가 꽤 넉넉하다. 나무판 뒤에서 밤새 짝을 찾을 소리를 상상해 보니 소름 끼쳤다. 또 다른 방에는 장롱이 있었다.  


고민하다가 욕실에서 채집통 입구 쪽을 옆으로 눕혀 장바구니를 조심스레 풀었다. 얼른 빠져나가라고 천을 털고 있는데 이번엔 손잡이를 꽉 잡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매미들. 청개구리다.

우여곡절 끝에 학원 앞에 채집통을 실은 자전거를 주차하고 아들을 기다리는데 한 번도 울지 않던 녀석들이 편안하게  맴 맴 맴. 매에엠ㅡ 하고 우는 것이다.  
5학년쯤 되는 아이가 자전거 뒷 바구니를 쳐다본다.  난 먼산을 본다. (제발 그냥 좀 가줘ㅠㅠ)

영원 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아들과 상봉했다.
아들의 눈이 커지고, 다문 입은 놀라며, 설탕수박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와 같은 환희의 표정이 된다.
"엄마 최고예요, 사랑해요!"

"엄마가... 하ㅡ이거 보여주려고 진, 짜 고생~고생해서 잡아왔는데.. 보기만 하고 오늘 놔주는 거다?  안 그러면 밤새 울어서 너 잠 못 잘걸? 오는 길에 멀미도 나서 얘네들 컨디션 안 좋으니까 좀 보다가 저~~ 기 공원 가서 꼭 놔주자??"

약속을 받아냈다. 휴..

채집통을 들고 가더니 놀이터 대스타가 되었다.
저녁 먹고 순순히 공원에 가서 놔주었다.


매미야 잘 가~! 얘네들 왜 안 가지?
아익 쿠, 깜짝이야!.. 잘 가~ 잘살아~!


마음속 쇠사슬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곤충채집의 쓸모, 이 동네에도 7년 후에는 어쩌면 매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p.s  며칠 뒤, 지나가다가 매미가 또 보이길래 쓰다듬어 주었다. ㅎㅎㅎ (수액먹는데 방해해서 미얀~)

매미 쓰다듬어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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