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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Aug 04. 2023

[시골출신] 왜 내 눈에만 네잎클로버가 보이는 거지?

feet. 생애최초 칠잎 클로버

행운이란 무엇일까?   
 '뜻밖에 기분 좋은 일에 흔치 않게 당첨이 되는 것 '이라 말하고 싶다.


살아오면서 무수히 많은 네잎클로버를 발견했다.

시골에 살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집까지 가려면 약 2시간을 걸어가야 했다. 길가에  클로버 무리가 보이면 일단 멈추고 손으로 차르르 훑으며 네 잎클로버들을 찾았다.  

그리고 클로버 성지를 발견하면 나만이 알고 있는 금광을 발견한 듯이 기쁘고 동생에게만 비밀을 말해 주었다.  

동생은 그런 토끼풀은 토끼의 밥일 뿐이라는 듯이 관심 없이 가던 길을 앞장섰다.

2023년 봄


사는 게 바빴는지 너무 오랜만에 클로버를 발견했다.

 올봄에 아파트 단지 안에서 약간 오르막길에 자전거를 끌고 지나가다가 영산홍을 보다가 무심코 그 앞을 딱 보는데 딱 거기 있었다.


거북목의 폐해로 땅만 보고 걷는 나는 지나가는 친한 친구, 아들 친구엄마는  못 알아보고 , 이런 소녀감성을 쫒는다.

끌고 가던 자전거를 한편에 세우고 수색을 시작했다.

그 네잎클로버가 1개뿐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안다.

클로버 밭을 찾은 것이다.  생장점 기형보다는 아마 타고난 유전자가 넉넉한 잎사귀를 내림하는 것 같다.


네잎 클로버가 가장 잘 발견될 때는 봄과 초여름 사이, 비 온 다음날, 산들바람이 불 때라는 데이터가 내 몸에 배어 있다.


전날 비가 와서 수분 보충을 충분히 한 줄기들이 싱그럽게 잎사귀를 뻗어 올려주고 연하고도 신선한 잎사귀가 잔잔한 바람을 만나 살짝 한들거릴 때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다.


뙤약볕에서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변 풀과 나무들을 보고 싶은 마음의 여유가 없다. 다만 빨리 집에 가고 싶고 짜증이 날 뿐이다.

그리고 클로버의 꽃이 햇볕에 타들어가서 목부분 꽃잎이 갈색으로 바짝 약이 올라 있다.


클로버의 줄기 역시 해를 피해 그늘을 찾는 눈치고, 잎사귀는 잎맥을 기준으로 살짝 오므리거나 끝부분이 볕에 타기도 한다.


정말 오랜만에, 집에서 가장 두꺼우면서도 풀잎이 배어 나와도 서운하지 않을 책이 어디 있는지 책장을 훑는다. 이미 종이가 변색된 책을 찾아 책갈피를 했다.


어릴 때는 다섯 잎이 달린 오잎클로버도 가끔 보였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더 큰 행운이라고 여기며 채취했었다.

그러나 즐겨 씹던 쥬시후레쉬 껌이나 후라보노 껌케이스에서는 네잎클로버를 좀 더 가치 있게 여겨 주었으므로 다시 네잎클로버에 의미를 부여했었다.

♧네잎클로버를 찾으셨군요!
오늘은 즐거운 날, 행운이 가득한 날! v


6월 가 갠 오후, 지나가다가 발견한 네잎클로버 한주먹(?)이다. 그중에 2개는 오잎클로버와 칠잎 클로버였다. 네잎클로버를 평생 100개 이상 발견 해 오면서 칠잎은 진짜 이번이 처음이다.

잎클로버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찾아본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알 것이다.

두 개의  세잎클로버가 교묘하게 겹쳐져서 키 작은 녀석의 잎 두 개는 숨고, 한 개는 마치 약간 더 키 큰 녀석의 네 번째 잎이라도 된다는 듯이 합체되는 상황말이다. 이번에도 안 속는다는 생각으로 휘휘 손길로 스쳐보는데 잎이 7개가 달려있는 것이다.

2023년 초여름

길 가다가 프린트 과제가 있어 PC방을 찾을 때는 우리 동네에 이렇게나 많은 PC방이 있었던가 놀란 적이 있다.

종종 지나가던 길가에서 고시원을 찾을 때는 고시원이 그렇게 많은지 미처 몰랐었다.

(MT를 찾는 사람에게는 MT만 보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잎클로버를 찾겠다는 의지가 있는 사람에겐 네 잎클로버만 보인다.

비가 올 때 성급하게 자랐었는지 연해서, 버스 타러 가는 5분 사이에도 많이 풀이 죽어 있었다.

(풀이 죽는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맞는 것 같다)


다음 재미를 위해 몇 개는 남겨두고 왔다.

뒤늦게 다시 행운의 징표들을  손에 가득 들고 보니 너무 흔해서 행운 같지가 않다.


왠지 책갈피로 만들어서 독서모임 벗님들께 드린다고 해도  5분 만에 채취한 사연을 듣고 보면 그다지 소중한 행운을 건네받은 기분이 아닐 것 같았다.


며칠 뒤에 출근하며 네 잎클로버 밭을 찍어놓은 사진을 대조해 가며 내가 안 뜯고 남겨놓은 네 잎클로버를 찾아보는데 안 찾아졌다.

아마 숨거나 잎사귀 하나를 스스로 떨어뜨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운목에  꽃이 피는 게 흔치 않아서 행운이 피는 것처럼 보이고, 한정판 소량생산 과자가 그렇게 웃돈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이렇게 대량으로 뜯겨나간 클로버의 둥치는 이번 재난으로 인해 다음 줄기 생장점부터는 천적(나)을 피해 네잎클로버 생산을 멈출지도 모르겠다.


행운이 자주 찾아오도록 , 행운이  흔치않은 것에서 비롯되도록, 다른 사람에게도 행운이  갈수 있도록 무더기로 뽑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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