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돈을 이해하려다 사피엔스의 시작에 닿다
잠시, 숨을 고르고 읽어주세요. 이 글은 당장 통장 잔고를 늘려주는 재테크 기술을 다루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는 인류의 시작으로 돌아가 ‘도대체 부(富)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려 합니다. 돈 버는 방법(How)보다, 돈의 본질(Why)을 먼저 고민하고 싶은 분들과 함께 사유하고 싶습니다.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왜 사냐면 웃지요.”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 나는 이 안에 삶의 깊은 해답이 들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 짧은 싯구 하나가 오랫동안 나를 붙잡고 있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이 시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 문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말은 어쩌면 ‘왜 사느냐’는 질문 자체가 그리 대단한 질문이냐고, 그 질문을 붙들고 씨름하는 인간을 보며 웃고 있는 건 아닐까.
밭을 매는 것이 삶이고, 평상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삶이다. 이미 삶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데 왜 사느냐고 묻는 질문이 오히려 부질없다는 듯 말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왜 사십니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생존이 목적이라고. 살아서 존재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다.
모든 생명체의 가장 원초적인 목적은 생존과 번식이다. 살아남아 존재하고, 자신의 흔적을 다음으로 남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갓난아이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무엇이든 입에 닿으면 빨기 시작한다. 배워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다. 인류의 역사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 질문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돈은 무엇일까? 부는 무엇일까? 부는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처음 돈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이 질문들이 계속해서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글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거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금의 경제에서 출발해, 국가로 올라가고, 문명으로 올라가고, 인류로 올라가고, 마침내 지구의 역사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부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는 약 30만 년 전 아프리카에 등장했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단 하나, 오직 생존이었다.
굶주림을 피하고, 위험을 피해 이동하고, 살아남기 위해 사냥하며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러다 약 1만 년 전, 인류 역사에서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정착, 그리고 농사.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같은 비옥한 지역에 정착하면서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먹고도 남는 것을 가지게 된다. 잉여의 탄생이다. 여기서 나는 부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부란 무엇인가. 부란 ‘먹고 남음’이다. 부란 ‘여유로움’이고 ‘풍요로움’이다.
반대로 가난은 배고픔이고, 부족함이다.
잉여를 이해해서 부가 생긴 것이 아니다. 잉여 그 자체가 곧 부였다. 잉여가 생기자 인류는 더 이상 오늘의 생존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더 많은 잉여를 위하여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간을 계산했고, 농사를 위해 수리시설을 만들었고, 그 모든 것을 관리하고 기록하기 위해 문자를 만들었다.
부는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부는 생존이 효율화된 결과였다. 지구가 탄생한 지 약 45억 년,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지 약 30만 년. 인류는 잉여를 가지게 되면서 문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여전히 부를 좇고 있다. 하지만 정작 부가 무엇이었는지는 잊은 채로 말이다. 다음화에서 부자들을 찾아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