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태어나지 않는다

시간과 시스템

by 이영태

대한민국 경제계에는 세 명의 이름이 있다. 정주영, 이건희, 김우중. 이 세 사람은 단순한 기업인이 아니라, 한 시대의 경제 그 자체였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정주영은 “임자, 해봤어?”라고 말했고

이건희는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고 했으며

김우중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 문장들을 지혜로 기억한다. 정확히 말하면, 지혜로 믿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영웅담을 좋아한다. 그래서 성공한 경영인에게는 반드시 무용담이 따라붙는다. 정주영 회장이 500원짜리 지폐 하나를 들고 조선소를 따냈다는 이야기, 김우중 회장이 젊은이들 앞에서 “나는 지금 돈이 보인다”라고 말하던 장면, 이건희 회장이 모든 것을 바꾸라고 외치던 결단의 순간들.


이 이야기들은 사실이기도 하고, 과장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신화다. 우리는 복잡한 과정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성공을 한 사람의 결단으로 압축한다. 하지만 기업의 성공은 결단 하나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대가 맞아야 하고, 정책이 열려야 하고, 돈이 흘러야 하며, 운이 겹쳐야 한다. 그 모든 조건이 모였을 때 비로소 한 사람의 능력이 작동한다.


김우중 회장의 몰락은 이 점을 가장 잔인하게 보여준다. 그는 실패한 사람이 아니었다. 무능한 경영인도 아니었다. 그는 다만, 시스템을 잃은 사람이었다. 은행과 투자자들은 김우중 개인에게 투자한 것이 아니라 ‘대우그룹’이라는 시스템에 투자했다. 그 시스템이 무너진 순간, 김우중이라는 개인에게 남은 것은 통찰과 경험뿐이었다. 자본주의에서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능력을 묻기 전에 먼저 묻기 때문이다.


“이 사람에게 시간을 맡길 수 있는가?”

사람들은 묻는다.

“왜 김우중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을까?”


답은 단순하다. 그에게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신뢰는 축적되어야 하고, 조직은 훈련되어야 하며, 자본은 시간을 먹고 자란다. 김우중에게는 다시 그 모든 것을 쌓을 시드타임이 남아 있지 않았다. 정주영이라 해도, 이건희라 해도, 완전히 무너진 뒤라면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 역시 다시 시간을 사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기업의 성공도, 부자의 탄생도, 결국 구조는 같다. 정진한 사람에게 운이 닿고, 그 운을 붙잡을 시간이 있었을 때 성공은 현실이 된다. 우리는 성공만 보고 능력의 결과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같은 방향으로 정진했지만 운이 닿지 않았던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 차이는 재능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영웅담은 희망을 준다. 그러나 방향을 속이기도 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정주영이 되지 못했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지금 운이 왔을 때 붙잡을 시간을 쌓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부를 논하는 첫걸음이다.


다음 편에서는 이 ‘시간’이 어떻게 자본으로 변하는지, 그리고 왜 대부분의 사람에게 유일한 시드가 시간일 수밖에 없는지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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