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은 능력이다.

2025년, 내가 가장 크게 배운 것

by Seeed

2025년.
삶에서도, 커리어에서도 다시 오기 쉽지 않은 ONE and ONLY 규모의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World Wide로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힘이 모아진 이 안에서
내가 가장 크게 배운 건 의외로 이것이었다.

친절은 성품이 아니라 역량, 능력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단어를 꺼내어, 나의 태도를 점검해 본다.

20260103_154236 (1).jpg 생각이 머무는 노트

한자를 들여다본다.
‘친절(親切)’.

먼저 ‘친(親)’
네이버 한자사전을 찾아보니 이런 뜻들이 나온다.

아주 가까운 사람
눈에 보이는
직접 마주한


아, 이렇게 이해가 된다.

가까이 보이지 않을 때, 불확실성 속에 있을 때
사람은 쉽게 ‘친’의 태도를 유지하지 못하는구나.

보이지 않으면, 가까워질 수 없다.
보이지 않으면, 친절해지기 어렵다.


그래서 거꾸로 생각해 본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가까이 보이지 않음에도
‘친’의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들.

그건 그 사람들의 역량이겠구나.


친절할 수 없는 사람은
보고 있어도 사실을 보지 못한다.

그러니 이어지는 불안감, 생존 본능으로, 물리적으로 친절해질 수가 없다.

전두엽은 닫히고, 편도체는 신이 난다.


화가 나고
목소리가 올라가고
평소 쓰지 않던 단어가 튀어나오고
말의 톤은 거칠어진다.

이 사람은 지금 ‘보이지 않는 상태’구나.

편도체로 반응하며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는 거구나.


그래서 연민이 생겼다.

저 언어, 저 표정, 저 날 선 톤은
악의가 아니라 생존 반응일 수 있겠구나.

연민으로 바라보니
나의 불편함과 화를 다스리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절(切)’도 살펴 본다.

칼로 자르다.
내리치다.
정확하게.

정확함의 한자다.


그런데 지금은
정확한 타겟을 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늘 하던 방식으로는
그 날카로움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사람이 먼저 날카로워진다.
방법이 무뎌질수록
사람이 대신 날이 선다.


나는 올해 ‘극기복례(克己復禮)’를 감정의 언어로 다시 배웠다.

감정을 억누르는 절제가 아니라, 감정을 알아차리고 태도를 선택하는 자기 규율이었다.

나는 그 역량을 세 가지로 질문해 본다.

첫째, 불편함을 견디고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가?(감정 조절력_EmotionalRegulation)
둘째, 타인의 감정을 읽고, 나의 태도를 지킬 수 있는가? (공감_Empathy × 경계_Boundary)
셋째, 나의 지적 허용 범위를 늘리는 행동을 하고 있는가? (학습 민첩성_ Learning Agility)


"나면서 아는 자는 최고요(생이지지자 / 生而知之者),
배워서 아는 자는 다음이요(학이지지자 / 學而知之者),
통하지 못하는 바가 있어 그것을 배우는 자는 그다음이요,
통하지 못하면서도 배우려 하지 않으면 백성으로서 최하가 된다."
(논어 계씨 9)


타고난 생이지지자는 아니더라도,

학이지지자는 되고자

내가 애써야할 역량은

‘더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친절해지는 것> 이다.


보이지 않을 때도, 가까이 보려는 태도.

불확실성 속에서도, 전두엽을 열어 지키는 나의 무드.


날이 서는 대신
여유를 선택하는 능력.


2025년은 나에게
그걸 몸으로 배우게 한 해였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 경험을 감사함으로 2026년의 나아가야할 길을 세운다.


친절이 나에게 알려준 방향이다.


촌스럽게 화내지 말자.

품격있게 웃자.

#친절 #논어 #자기계발 #리더십 #일의태도








작가의 이전글ME Maker | 생각 시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