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사회성을 나타내는 척도는 바로 인사성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아는 척을 하는 인사의 수준을 넘어서 미안할 때 "미안합니다." 감사할 때는 "감사합니다."라고 표현할 줄 아는 것은 인간성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우리는 살면서 기본도 안된 인간들을 참 많이도 만난다.
특히 사소한 일이라도 고마움을 못 느끼는 사람은 공감능력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로 좀 덜떨어져 보인다.
나는 우리 딸의 3번째 생일을 맞아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우리는 제주도 먹거리를 구경하기 위해 서귀포 시장에 들어섰다. 양쪽으로 가게들이 줄지어 있고 중간에는 사람들이 앉아서 쉬거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벤치들이 있었다.
등받이가 없는 벤치는 성인에게는 폭이 좁고 아동에게는 높았다. 벤치 사이에는 인공 수조로 조경을 해놓아서 그사이로 빠지기라도 하면 위험해 보였다.
저녁때라서 인파가 어찌나 많은지 간식거리를 사러 간 남편은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나는 딸과 함께 벤치에 앉아서 과자로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그때 아이 둘을 데리고 어느 부부가 우리 옆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하나는 돌이 갓 지난 듯 잘 걷지도 못했고 큰애는 우리 딸과 비슷해 보였다. 언뜻 보기에도 여자 혼자서 아이 둘을 케어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남자는 옆에서 입만 나불대는 스타일인 듯했다.
그 여자는 작은 아이를 벤치에 앉히고 큰애를 챙기느라 잠시 한눈을 팔았다. 그때 벤치 위를 이리저리 움직이던 아이가 그만 벤치와 수조 사이에 빠질뻔한 아찔한 상황이 펼쳐졌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어머! 소리를 내며 손으로 덥석 아이의 옷을 잡아챘다. 다행히 아이는 떨어지지 않았고 소리를 듣고 금세 애엄마도 달려와 아이를 잡았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본 애아빠는 버럭 하며
큰소리로 "정신 차려!"라고 외쳤고 매번 듣는 소리인 양 상관없다는 듯 애엄마는 "어머 큰일 날뻔했다!" 라며 상황이 끝나버렸다.
나는 옆에서 황당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보통은 반사적으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타이밍이었다. 근데 어쩐 일인지 나를 마치 투명인간 취급하는 반응에 민망하기까지 했다.
남의 도움 따위는 받은 적도 없다는듯한 두 내외의 행동을 보면서 고맙다는 말을 듣기 위해 한일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아이가 벤치에서 떨어져 수조에 빠지게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부모라면 위험에 처한 다른 아이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상대방이 고마움을 느끼든지 말던지는 그다음 문제였다.
나는 한참 동안 그 부부를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냥 정신이 없어서 그랬겠거니 생각해 봐도 여전히 이해가 안 됐다.
그리고 굉장히 묘하게 기분이 언짢아졌다.
당최 처음 느껴보는 불쾌함에 그날 저녁 내내 그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치 이 세상에 지들밖에 없다는 듯 남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던 무개념 부부.
다시는 상종하고 싶지 않은 부류였다. 그런데 우습게도 다음날 찾은 뽀로로 테마파크에서 그 진상부부와 또 다시 마주쳤다. 나는 단번에 그들을 알아봤고 애엄마도 나와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후훗! 여전히 남편은 입만 나불대고 있었고 애엄마는 정신이 없는 것이 그저 가여워 보였다.
이런 게 바로 세상 이치 아닐까?
이 좁은 세상은 돌고 돌아 언제 어디서 누구와 다시 마주칠지 모르는 것이다. 고로 항상 행실을 조심해야 된다는 사실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