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아우내순대길 27
종합 1등 드립니다
"이름이 뭐라고? 알겠어. 고마워."
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갈 일 없는 천안이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멀기도 하고 딱히 가보고 싶을 만한 관광지도 없다. 요즘은 택배도 잘돼서 유명한 집 호두과자쯤은 전화로도 받아 볼 수 있다. 순대? 시골 읍내에도 발견할 수 있는 간판이 '병천 순대'다.
그러다 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생겨 천안 IC를 지났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따뜻한 호두과자와 본토의 병천순대 맛 좀 보자! 하고 마음먹었다. 천안 토박이라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맛집을 물었더니, <아우내 먹거리 순대>라는 이름을 불러준다. 뭘까? 이 휴게소 푸드코트에서나 봤을 법한 성의 없는 작명은. 처음엔 흘려들었지만 딱히 그보다 나은 집을 찾지 못해서 내비게이션을 찍었다. 고백하자면, 식당 바로 옆에 유명한 호두과자 집이 있다는 게 큰 이유기도 했다.
사실 병천순대는 조금 특이한 이름이다. 보통의 유명한 순대는 대체로 이름에 재료를 앞세운다. 오징어순대, 피순대, 막창순대, 야채순대, 이런 식이다. 그런데 병천순대는 지역을 앞세운다. 충청북도 천안의 '병천면'.
병천이란 말은 지리적 특성에서 유래했다. 자밧내와 치랏내 두 개의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 그렇게 냇물이 어우러진다 하여 사람들은 그곳을 아우내라 불렀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행정구역 한자화 사업이 진행되면서 병천(竝川)이 되었다. 순대거리가 조성되기 전에는 장터로 유명했는데, 복작거리며 먹을 것 많은 장터를 떠올려보면 먹거리 순대라는 이름도 그리 이질적인 것은 아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다른 몇몇 식당은 기다리지 않고도 먹을 수 있었지만, 다시없는 기회일지 모르니 일단 기다리기로 한다.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지만 홀이 넓고 서빙이 빨라서 회전율이 높아 생각보다 대기시간이 짧다. 기다리는 일도 고생스럽지 않은 곳이다.
기본찬이 다양하다. 김치와 양념장은 기본으로 제공되고 몇몇 것은 셀프코너에서 취향대로 가져와야 한다.
대파와 양파가 신선하다. 손님 수만큼 소진이 빠르다는 얘기고 묵혀 쓰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 마늘종을 주는데 개인적으로 청양고추 보다 곁들임이 좋다. 개운하고 알싸한 맛, 그러나 국물의 깊이를 헤치지 않는 정도의 통각이다.
다진 마늘과 장을 섞은 양념장이 있다. 추리하자면, 이 집 사장님만의 킥일 수도 있지만, 아마 전국 각지에서 오는 손님들의 취향을 고려한 게 아닐까 싶다. 주로 서울, 경기권은 순대에 소금을 찍고, 전라도는 초장, 강원도는 새우젓, 경상도는 막장을 찍는다. 전국을 대표하는 순대거리인 만큼 지역에 맞춰 다양한 양념장을 준비했을 거라 본다. (참고로 소금은 내가 담아 오지 않았다.)
간혹 맛집이라고 찾아간 국밥집에서 시중 김치를 내주거나 질 안 좋은 고춧가루를 써 입맛을 잃는 경우가 있는데, 아우내 먹거리 순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좋은 재료로 직접 담그는 김치라는 걸 알 수 있다. 판매량이 많아 공장화되었다고 해도 이건 분명 철저한 관리와 정성으로 만들어지는 맛이다. 고춧가루가 조금 매운 편이지만 달지 않고 개운한 맛을 주는 특유의 충청도 김치가 국밥과 정말 잘 어울린다.
국밥은 푸짐하다 못해 넘치는 양이다. 녹진하고 깊은 돼지뼈 국물에 내장과 순대가 가득 담겨있다. 부피만 채우는 비계거리들이 없어 느끼하지 않고 한눈에 보기에도 깨끗해 보이는 손질 잘된 부속물이 포만감을 더한다. 이렇게 푸짐할 줄 알았다면 모둠순대는 시키지 않았을 건데 말입니다. 너스레를 부렸더니 온 김에 배부르게 먹고 가라며 인정 담긴 대답이 돌아왔다.
병천 순대의 특징 중 순대피로 큰창자를 쓴다는 게 있다. 보통 돼지 소창을 사용하는데, 큰창자를 쓰면 더 쫄깃한 식감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내 미각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가득한 소를 품고도 터지지 않는 점, 국밥에서도 모양이 크게 흐트러지지 않는 점을 볼 때 일반 순대와 차이점이 있다.
선지와 찹쌀, 야채가 꽉 들어찬 순대는 부드럽고 담백하다. 새우젓과 먹으면 풍미가 살고 마늘된장 양념장과 먹으면 입맛이 산다. 두껍고 투박하게 썰린 간은 포실포실할 만큼 부드럽다. 그러면 특유의 냄새도 없다. 얼마나 신선하다는 얘긴가?
그간 많은 국밥집을 다니며 인상 깊은 몇몇 곳을 리뷰했다. 유명해도 맛이 없으면, 혹은 지저분하게 느껴지거나 불친절하면 리뷰를 쓰지 않았다. 아우내 먹거리 순대가 그중 몇 번째냐고 묻는다면 순대국밥 중 당연 1등이다. 모든 부분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어느 부분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집에 포장해 온 순대국밥을 아내와 나눠먹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천안을 다시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따끈한 국밥처럼 마음을 채워주는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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